프로 스포츠 구단'이 돈이 된다고?
‘모기업 애물단지, 오너의 애완견, 대기업 홍보 수단, 적자 산업’.
지금까지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을 바라보는 재계 인식은 이랬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적자 산업’이다. 프로 스포츠 구단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형 가치인 ‘광고 효과’를 제외하면 국내 프로 스포츠 산업 구조상 재정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유가 있다. 프로 야구를 중심으로 한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은 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참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 야구는 수많은 기업의 부침과 궤를 같이해왔다. 모기업이 일정 부분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 같은 측면에서 살펴보면 SK 와이번스 매각은 여러 시사점이 있다.
SK 와이번스 매각을 계기로 프로 스포츠 구단 운영 방식이 새롭게 바뀔지 관심을 모은다.
▶프로 야구 6번째 매각 SK 와이번스
▷40년 역사상 가장 높은 매각 가격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는 1월 26일 SK텔레콤이 보유한 SK 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금액은 1352억8000만원. 인수 가격 중 주식은 1000억원, 야구 연습장 등 토지와 건물 352억8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한국 프로 야구 역사를 보면 팀이 매각된 사례는 종종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 1985년 청보가 약 70억원에 인수했다. 삼미를 인수한 청보는 1988년 태평양에 매각됐다. 매각 가격은 약 50억원. 태평양은 1996년 현대에 470억원에 매각했다. SK 와이번스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매각 가격이다. LG는 1990년 150억원을 들여 MBC 청룡을 손에 넣었다. 기아는 2001년 해태 타이거즈를 가입금 포함해 210억원에 인수했다. 프로 야구 40년 역사상 6번 발생했으니 6~7년에 한 번꼴이다.
하지만 이번 매각은 기존 매각과 결이 다르다.
먼저 야구단을 매각한 배경이다.
지금까지 과거의 프로 야구단 매각 이유는 하나같이 모기업 경영난 때문이었다. 모기업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구단 운영에 영향을 줬고 결국 새로운 기업이 팀을 인수했다.
SK 와이번스 지분 100%를 소유했던 SK텔레콤은 경영난과 거리가 먼 기업이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SK텔레콤 영업이익은 1조349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SK텔레콤은 매각 배경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관련 업계는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의 일환으로 SK와이번스 매각을 진행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두 번째는 SK텔레콤이 야구단을 매각하면서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1990년대 후반 쌍방울이 외환위기로 법정관리 될 무렵 쌍방울 레이더스를 200억원에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가 2000년 1월 KBO에서 퇴출되면서 SK텔레콤은 레이더스 소속 선수단만 인수하는 방식으로 재창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SK 와이번스다. 즉, 구단 인수를 위해 별다른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SK 와이번스가 연고지를 인천으로 옮기면서 ‘연고 침해 보상 비용’ 54억원을 지불한 것이 전부다.
2000년부터 SK 와이번스는 20년 이상 구단을 운영했다. 매년 수십억원 운영 비용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투자 비용을 어느 정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구단 더 이상 홍보 수단 아니다
▷자체 수익 창출해 경쟁력 갖출 때
국내 주요 기업은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이른바 ‘4대 프로 스포츠’를 중심으로 복수 구단을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SK 와이번스 매각이 스포츠 구단을 바라보는 기업 시각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까지는 소위 말하는 ‘홍보 효과’만 노리고 모기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단순히 홍보 수단으로 구단을 운영하기에는 구단 덩치가 너무 커졌다.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각 구단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신경 쓸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그룹 역시 프로 야구단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신세계는 몇 년 전부터 프로 야구단 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왔다. 프로 야구 관중 핵심을 이루는 20∼30대와 최근 증가하는 여성 관중이 모두 유통업 핵심 고객과 겹친다는 점 때문이다. 신세계는 기존 영업 체계와 야구단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항상 유통산업 변화에 주목해왔다. 그는 “앞으로 유통업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유통업은 이제 단순히 상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시간을 뺏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정 부회장 생각이다. 향후 신세계가 야구단을 어떻게 운영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이미 국내외에서 스포츠 구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는 여럿 있다.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 중 ‘자생’이 가능할 정도로 흑자를 낸 곳은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다. 롯데 자이언츠는 2008년 13억5900만원 수익을 올리며 ‘프로 구단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다만 한계도 뚜렷하다. 체계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온 수익이 아니었다. 야구 열기가 높은 부산 팬들의 인기에 기댄 ‘일시적’ 매출 상승이었다. 또 광고 수입으로 처리한 그룹 지원금 110억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적자였다는 평가도 있다.
모기업 도움 없이 구단 자체 노력으로 흑자를 낸 사례는 2016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가 최초다. ‘네이밍 스폰서’ ‘신구장 고척돔 효과’ ‘육성 성공’ 3가지 호재가 겹치면서 히어로즈 구단은 창단 처음으로 200억원 흑자를 냈다. 모기업이 없는 히어로즈 구단은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구단을 후원할 기업을 찾는다. 당시 히어로즈 덕분에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넥센타이어 측에서 광고비를 대폭 올려 재계약을 맺었다. 덕분에 2016년 히어로즈 구단 광고 수입은 2015년 167억원에서 2016년 231억원으로 증가했다. 또 규모가 작은 목동야구장에서 고척돔으로 옮기면서 관중 수 증가도 흑자전환에 한몫했다. 연간 관중 수가 27만명 가까이 늘며 입장 수입이 대폭 늘었다. 구단에서 육성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하며 얻은 ‘포스팅 비용’은 매출 증대에 영향을 줬다. 당시 박병호를 영입한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가 히어로즈에 140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히어로즈는 2018년, 2019년 잇따라 흑자를 내고 있다.
해외에서는 수익을 내는 구단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 프로 야구(NPB)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대표적인 흑자 구단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홈구장을 구단 ‘소유’로 하고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프로 스포츠에서 경기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구단은 임차인으로 들어간다.
경기장 건설·유지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후쿠오카 ‘PayPay돔’ 소유권을 갖고 있다. 야구 경기 외에 광고료부터 콘서트 대관 등 경기장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독차지한다. 연평균 200억엔(약 2100억원) 매출을 낸다.
미국에서는 MLB나 NFL(미식축구리그) 등 구단 대부분이 흑자를 낸다. 아예 스포츠 구단을 묶어 하나의 ‘그룹’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를 가진 ‘팬웨이 스포츠 그룹(FSG)’이 대표적인 예다. FSG는 단순 흑자 경영을 넘어 공개 상장을 시도하고 있다. 상장으로 더 많은 투자금을 끌어모아 구단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스포츠 구단 자생을 위한 과제
▷시장 키우고 규모의 경제 실현
여러 해외 사례처럼 국내 구단이 모기업 지원 없이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프로 스포츠 구단이 돈을 버는 구조를 살펴보자.
스포츠 구단은 티켓 수입, 스폰서십, 중계권, 기타 물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거둔다. 국내 스포츠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야구 연매출은 10개 구단을 합쳐 대략 5000억원. 한국 인구를 감안해도 다른 국가 스포츠와 비교하면 매출이 적은 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스폰서십 역시 제대로 된 시장가치가 형성돼 있지 않다. 대부분 모기업 계열사가 경쟁 없이 구단의 부족한 매출을 메꾸는 식이다. 모기업 의존도가 높아 스폰서 가격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중계권료 또한 시장 규모 대비 턱없이 낮은 편이다. 축구에서 EPL의 1년 중계권료는 수조원에 이른다. 일본 프로 축구인 J리그의 구단 숫자나 시장 규모는 K리그 약 2배다. 하지만 연 중계권료 규모는 약 2200억원. K리그 36배에 이른다.
한국 프로 야구는 아시아에서 규모가 꽤 큰 스포츠 시장이다. 그럼에도 중계권료는 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국내 스포츠 구단이 모기업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스포츠 구단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까지 스포츠 구단은 오너십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구단주 한마디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 어느 누구도 구단을 ‘하나의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포츠 구단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춰 운영할 필요가 있다. 투자 유치를 위한 지배구조 변화(박스 참조)도 생각해볼 일이다.
스포츠 구단을 통해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경기 시합뿐 아니라 경기 외적으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요구된다. IP(지적재산권)가 가치 있는 시대다.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구단 경쟁 상대는 다른 스포츠 구단을 넘어 넷플릭스, 유튜브 등이 될 수 있다. 스포츠 구단만이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 IP 확보가 중요하다.
요즘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대기업은 콘텐츠 IP를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수천억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다른 콘텐츠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스포츠 구단은 지명도 측면에서 월등히 우위에 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IP를 개발한다면 구단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작업도 필수. 요즘은 데이터가 돈이다. 구단은 물론 협회 차원에서도 스포츠 경기를 통해 발생하는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할 시점이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한국체육학회장)는 “한국 스포츠 산업이 발전하려면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팀 자체가 비즈니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며 “스포츠 구단이 스스로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정동섭 딜로이트안진 유통소비재혁신 그룹장(전무)
스포츠 구단도 기업…외부 투자 유치로 자생력 확보
Q.SK 와이번스 매각 후 프로 스포츠 구단 운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A 이번 매각은 국내 스포츠 구단의 독자생존 움직임을 위한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은 약 40년 전 대기업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어떤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특히 KBO(한국 프로 야구)에서는 대부분 모기업이 구단 운영을 위해 매년 200억원 가까이 보조금을 준다.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팬이 아닌 보조금을 지급하는 모기업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팬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Q.국내 스포츠 구단이 자생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A 스포츠 구단에 대한 인식 문제가 크다. 아직도 구단을 어쩔 수 없이 운영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구단은 다른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업’이다.
기업은 결국 이윤 창출이 목적이다. 구단은 이윤 창출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병행해야 한다. 스포츠 구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어떤 사업자가 돼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모기업에서 ‘계륵’ 취급을 받고 팬들마저 외면하는 프로 구단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지분구조 다각화가 필수다.
Q.지분 구조 다각화는 어떤 의미인가.
A 지금은 모기업이 구단 지분 100%를 소유하는 구조다. 지분구조를 다변화해 외부 투자를 유도하고 보조금을 줄여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Q.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분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A 모기업이 기업 이름을 버리고 서울 트윈스, 부산 자이언츠 등 연고지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모기업 지분과 보조금을 줄이고 외부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팬층이 두껍고 마케팅이 활발한 프로 야구 구단은 상장도 가능하다. 구단이 상장하면 기관 투자자는 물론 소액이라도 팬심을 담아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가 생길 것이다. 스포츠 구단 주식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때 구단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 모기업 역시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고 주주를 다각화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투자 회수(엑시트)가 가능해진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6호 (2021.02.17~2021.0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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