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체육계는 아직도 쌍팔년이다
지금도 여전한 국가중심 엘리트 체육..사회체육으로 패러다임 바꿔야
1.
배구계 학폭 사태를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취재 당시 기억이 새롭습니다.
‘메달을 딴 한국선수들은 왜 우느냐?’
외국인들이 많이 물어왔습니다. 메달을 땄으면 즐거워해야 하는데..왜 한국선수들은 우는가.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면 왜 죄송하다고 하느냐?’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메달을 땄으면 자랑스러워해야지..왜 죄송해 하느냐.
2.
창피해 말은 못했지만..당시 정답은 ‘국위선양’입니다.
금메달을 따면 ‘국위선양’했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못따면 실패했기에 울었습니다.
전두환 군부정권은 ‘빵과 서커스’라는 전형적인 우민화정책에 힘을 쏟았습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대표 이벤트입니다.
이를 위해 ‘국민체육진흥법’1조에 ‘체육을 통하여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명시했습니다.
3.
군부정권은 올림픽 메달따기 전투에 온나라를 동원했습니다.
선수들은 국위선양, 독재홍보 도구로 취급됐습니다.
선수촌에 몰아넣고 기계처럼 돌렸습니다. 국위선양을 위해,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그리고 그에 따른 당근으로 제공되는 연금과 포상금을 위해..
당시 소련과 동독 같은 공산국가들이나 하던 국가주의 엘리트체육입니다.
이게 바로 문제가 된 쌍둥이(이재영 이다영) 선수의 어머니(김경희)가 국가대표선수로 뛰던 88년입니다.
4.
학폭 사태를 보니..체육계는 속칭 ‘쌍팔년(88년)’당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쌍둥이가 속한 구단(흥국생명) 내부의 갈등이었습니다.
쌍둥이가 자기네끼리 공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팀 수퍼스타 김연경을 따돌렸나 봅니다. 학폭 피해자 부모의 주장에 따르면..이런 쌍둥이의 행태는 ‘중학교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라고 하네요.
선배 김연경이 참고지나갈 사람이 아니죠. 지적했겠죠.
그러자 이다영이 SNS에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죽고싶다’며 원망의 글을 올렸습니다.
5.
바로 이 글이 ‘진짜 학폭 피해자’ 4명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학폭 가해자인 쌍둥이가 마치 피해자인양, 김연경의 지적을 마치 폭력인양 힐난하는 가식에 폭발했습니다.
설상가상 쌍둥이는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쌍둥이의 착하고 행복한 모습이 피해자에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정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6.
사태를 악화시킨 건 쌍둥이 소속 구단(흥국생명)과 감독의 미온적인 대응입니다.
‘징계도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내려야한다’는 구단관계자의 말은 사태를 뭉개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또다른 피해자가 ‘너무 화가 나 더는 안되겠다’며 등장했습니다. 이미 분노는 일파만파 겉잡을 수 없게 퍼져갔습니다.
뒤늦은 결론은 ‘무기한 출전 정지와 국가대표 자격정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퇴출’을 요구하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7.
달라진 세상, 이런 태풍의 와중에도 체육계 인사들은 여전히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학폭 선수는 누군가 글 올릴지 모른다는 걱정에 부담감이 클 것 같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장병철 한전감독)
선수출신 감독의 솔직한 심경일 겁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 폭력인지 감수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구단의 성적만 생각합니다.
8.
체육계 폭력근절을 위한 논의나 방안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작년 7월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의 비극 이후 ‘국민체육진흥법’의 ‘국위선양’은 삭제됐습니다. 새로운 진흥법(최숙현법)이 2월19일 시행됩니다.
인권침해와 비리를 즉시 신고해야하는 의무를 조항도 만들고 전담창구(스포츠윤리센터)도 만들었습니다.
9.
그 정도로는 미흡합니다.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엘리트 중심 체육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올림픽 메달이나 순위 따위에 매달리면 안됩니다. 그건 국위선양도 아니고 국민통합도 아닙니다. 선수촌도 병력특혜도 필요없습니다.
엘리트스포츠에서 사회체육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체육계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거긴 아직 쌍팔년이니까요..
〈칼럼니스트〉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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