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의 '이유 있는 선택'일까, '눈치 보기'일까

박정훈 2021. 2. 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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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 65세 이상 접종 연기 논란] 안전성 확보됐지만 국민 수용성이 관건

[박정훈 기자]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장을 맡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2~3월 예방접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질병관리청이 만 65세 이상의 고령층에는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 백신 접종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장)은 15일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 브리핑에서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백신의 효능에 대한 통계적인 유의성 입증이 부족하고, 식약처 품목허가 시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 사용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기재"된 것을 근거로 고령층 접종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연령층에 대해서는 3월 말로 예상되는 백신의 유효성에 대한 추가 임상정보를 확인한 후 접종 방안을 확정하게 된다.

하지만 통계적인 유의성이나 식약처의 주의사항 기재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됐던 부분은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낮다는 점이었다. 화이자 95%, 모더나 94.1%에 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예방효과는 62%로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일명 '물백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65세 미만에만 접종 권고를 하며, 고령층 효과에 대해 논란이 많은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고령층에 대한 백신 효능 논란은 국민과 의료인의 백신 수용성을 떨어뜨려 접종률을 저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정 청장의 위 발언이 사실상 '고령층 접종 연기'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되도록 논란을 피해서 안정적으로 백신 접종을 하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그러나 가장 고위험군인 고령층에 정작 백신 접종을 못 한다는 점, 2~3월에 코백스퍼실리티를 통해 들어올 화이자 백신 5만 8500명분과 3월 말에 들어올 50만 명 분의 화이자 백신은 냉동백신이기 때문에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나가서 접종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질병청마저 너무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 비판 목소리도... "접종 연기, 백신 신뢰 떨어트린다"
 
 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에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모의훈련에서 참가자들이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재훈 가천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65세 이상 접종 연기가 오히려 백신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린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미 한 차례 고령층에게 접종이 연기된 백신을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접종을 권고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스럽다"라며 "어차피 지금의 백신도 변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업데이트나 추가 접종이 필요해지는 상황이다. '안전하고 효과적이지만 근거가 모자라서 접종을 연기한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발표는 결정을 내렸다기보다 결정을 미루고 문제를 피해간 것"이라며 "정부의 결정은 백신의 효과성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안전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미룸'이 백신의 신뢰에는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스트라제네카 고령층 접종 연기 결정이 정부 측에서 밝히듯 '효과를 입증하기에는 임상시험 참가자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마치 효과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65세 미만 접종 근거는 있느냐"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특히 정 교수는 다가올 4차 유행을 백신 없이 다가오는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백신은 감염예방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증화 방지에 있어서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백신 접종 없이 3월 중에 대유행이 일어날 경우 65세 이상 중증 환자가 급증해 의료체계가 흔들리는 비상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 또한 "백신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65세 이상에도 접종하는 게 코로나19를 예방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정부에서는 계속 백신 확보를 한다고 하니까 상황을 좀 두고 봐야겠다"라고 밝혔다. 

백신 접종 '신뢰' 쌓는 설계의 일환?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질병청이 '두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효과성이나 안전성만을 믿고 밀어붙이기에는 여론이 부정적이므로, 일단 65세 미만부터 맞으면서 국민들에게 백신을 익숙하게 만든 후, 확실한 임상시험 결과까지 보여주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을 택했다는 해석이다.

특히 질병청은 지난 인플루엔자 백신의 콜드체인 관리에서 일부 실수가 드러난 이후,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독감접종 후 사망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실시간 뉴스로 올라오는 등 '백신 부작용' 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백신 관련성이 입증된 경우는 없었지만, 하나의 실수가 백신 접종 사업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사건이었다. 

만에 하나 현 상황에서 고령층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백신 연관성이 없더라도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한국역학회 회장)는 "백신 접종은 사회적 과정이라서 접종률을 높이고 수용성이 높아져야 한다"라며 "노인층들 같은 경우는 여전히 백신에 대한 우려가 있고,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지켜보다 맞겠다'는 비율이 꽤 높았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방역당국은 백신 수용성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논란에 접근한 게 아닐까 싶다"라며 "3월 말이면 추가 임상시험 자료가 나오기 때문에, 아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증명될 것 같기 때문에 그때 시작을 하는 게 약간 늦어도 결과적으로는 접종률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은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탯리서치와 함께 2월 5∼7일 성인남녀 1068명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관한 설문조사(표집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포인트)를 했다. 이 조사에서 '정부의 백신 접종 일정'에 관한 질문에 '접종 시기나 순서를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는 답은 26.8%, '접종을 거절할 것'이라는 답도 4.9%가 나왔다. 약 30%가 백신을 당장 맞고 싶지 않거나 거부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셈이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오히려 과학적으로 불충분한 근거를 갖고 정책 판단을 하는게 부적절하고 그것이야 말로 '방역의 정치화'다"라며 "상황이 시급하니까 백신 접종의 이익이 더 크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 또한 연구를 통해서 이야기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백신 접종은 '화약고'와도 같다. 유럽의 경우 백신 접종을 안 맞겠다는 국민들이 많은 걸 보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건지 잘 설계해야 한다"라며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국민의 신뢰를 얻고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신중하게 가야 한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질병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65세 이상 데이터는 부족하다. 그래서 데이터가 쌓이고 과학적 검증을 제대로 한 후에 접종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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