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혁신학교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보고서를 냈다고?

김용 2021. 2. 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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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울혁신교육 정책 10년 연구' 책임자 김용 교수의 반박

[김용 기자]

 
 15일 자 <조선일보> '"혁신학교, 예산 줄이고 확대정책 폐기하라"' 기사
ⓒ 조선일보PDF
  
최근 몇몇 언론에서 "혁신학교를 버려야 서울교육이 산다"거나 "혁신학교 확대 정책 폐기하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의 혁신학교 정책을 실패로 단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몇몇 언론, 자극적인 보도로 오해 유발

정책연구 결과를 인용한 보도였는데, 필자는 해당 정책연구의 책임자였다. 본 연구에서 서울시 혁신학교 정책을 실패로 단정한 사실이 없다. 연구 말미에 혁신학교에 관하여 짧게 제언하였는데, 맥락 없이 그 내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여 오해를 유발하고 있어서, 내용을 바로잡고자 한다.

혁신학교는 10여 년 전에 정책화하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국가학업성취도 평가를 매개로 학교교육을 전통적인 학력 경쟁에 붙들어두었다. 또 고교 다양화 300(자율형사립고 100개, 기숙형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정책을 필두로 학생을 조기 선별하기 시작했다. 

개혁은 매우 권위주의적이었다. 교실은 문제풀이 공간으로 전락하고, 적지 않은 학생들이 배움에서 도망가고, 많은 교육자가 무력감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아래로부터 거대한 개혁운동으로 출현한 것이 혁신학교이고, 주민 직선으로 등장한 교육감이 그것을 정책으로 수용한 것이 혁신교육이었다.

'혁신'이라는 말은 큰 변화 또는 긴급하고 심각한 수준의 변화를 의미한다. 혁신학교는 무력한 학교교육을 일신해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작명이었다. 그러나 혁신학교 역시 진공 상태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한국 교육의 성취를 바탕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확실하게 바꿔보고자 한 시도였다.

혁신은 교육 내용과 방법 그리고 학교 운영 등 면에서 전반적으로 전개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혁신학교가 성취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혁신학교가 이룬 중요한 변화를 몇 가지 살펴보자.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는 기후위기, 생태위기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알려주었다. 디지털 혁명은 인간 노동의 미래에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엘리트와 전문직 등 기득 집단의 행태는 지금까지의 정책 결정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를 새삼 환기해주었다.

국어, 수학, 영어와 같은 전통적 교과 학습만으로 젊은 세대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민주시민교육과 생태환경교육, 세계시민교육과 노동교육, 전통적 교과에서 미처 포괄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래 사회에서 빛을 발할 역량을 길러주고 있는 곳이 혁신학교다. 

아울러 토론교육, 독서토론교육, 사회논쟁형 토론 수업, 프로젝트 학습은 OECD 등에서 미래역량으로 함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로 그 역량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의 학생들은 곧 사라질 지식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말을 신주 모시듯 암송하면서도 정작 '암기식 지식교육'을 넘어 미래형 공교육을 만들고자 하는 혁신학교에 대해 편견에 가까운 비판을 제기한다.

혁신학교는 학교 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동등한 것은 아니었다. 교장에 비하여 교사의 목소리는 작았다. 전문가인 교사에 비하여 비전문가인 학부모는 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일은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로 여겨질 뿐이었다.

교장, 전문가, 성인만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내용이 그들 시각에서 편협하게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험 점수로 학생을 호명했을 뿐, 누구도 한 사람의 성장에 온당하게 주목하지 않았다. 학생 인권을 입에 올리는 일조차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혁신학교는 그동안 기울어진 상태에 있던 것들을 바로잡는 일을 진행했다. 학교 운영에서 소외되었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진작하였다.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권을 가진 시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서는 교사들이 토론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문화를 갖추어갔다. 이런 노력이 모여 학교를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널리 불러일으킨 것이야말로 혁신학교가 거둔 성취이다.

학력저하? 근거 빈약
 
 2020년 12월 8일,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학교 주변에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 윤근혁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혁신학교가 제물이 되는 일이 있었다. 혁신학교에 학력이 낮은 학교라는 딱지를 붙이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특정 시점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이웃 학교에 비하여 높다는 자료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학교의 교육력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면 입학 시점과 졸업 시점을 비교하여 학생의 성장 폭을 확인해야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충분히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학업에서 멀어져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학교야말로, 학생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분석하여 학교 효과를 설명해야 한다. 

혁신학교에 관한 많은 실증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혁신학교의 교육력을 입증해주고 있다. 과거 평준화 정책을 공격할 때, 학력 하향을 평준화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대규모 실증 연구는 그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었다.

평준화 정책으로 인지적 성취가 낮아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정의적 차원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혁신학교에 관한 학력 논쟁은 과거 평준화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학력 저하라는 이름으로 평준화를 반대했던, 지금은 정확히 과거가 된 그 반론과 다를 것이 없다. 

또, 근래 서울 지역에서 몇몇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고자 하자 주민들이 반대한 일이 있었다. 이를 혁신학교 실패의 근거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 사안에서 우리가 주목할 문제는 반대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그 근거는 타당한 것이었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학력이 낮아진다거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지만, 두 주장 모두 근거가 빈약하다. 오히려 교직원들의 생명과 신체를 위협하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여 학교 구성원들의 정당한 결정을 뒤집으려 하는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혁신학교도 성장하고 진화했다. 이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학교도 있고,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은 혁신학교도 있다. 혁신학교와 비혁신학교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혁신학교에서의 성과가 많은 학교로 전파되고, 혁신 분위기와 의지가 전체적으로 확산하는 국면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혁신학교의 수를 늘리거나, 예산을 확대하는 일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하는 국면에 있다. 이것이 혁신학교 정책 제안의 배경이었다.

모든 일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지난 십 년은 오랫동안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추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시간이었다. 이 일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도된 대서특필, 평준화 공격 때와 다르지 않아

그러나 성과의 이면에서 또 다른 지양의 과제를 만나고 있다. 기초학력을 튼튼하게 다진 뒤에 높은 수준의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더 많은 자율권을 가지게 된 교사들이 이제 더 높은 수준에서 책임을 행사해야 한다. 민주적 학교 운영의 토대는 교사들에게 있지만, 학교장의 리더십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지난 10년 혁신교육의 성과 위에서 향후 십 년의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일부 언론은 혁신학교 10년의 성과를 다룬 보고서에서 끝부분에 적은 보완해가야 할 지점'만'을 뽑아내 대서특필했을 뿐이다. 오해를 유발하는 맥락 없는 보도였다.
 
 한국교원대학교 김용 교수
ⓒ 김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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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교원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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