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지나도 마음은 불편..부모-자식간 관계 개선하는 '대화의 기술'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설 명절을 지냈지만 내심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보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언쟁 등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남긴 채 일상으로 복귀한 경우가 그렇다. 어쩌면 명절을 비롯해 오랜만에 보는 부모 자식 사이를 망치는 건 코로나19가 아니라 ‘잘못된 대화법’일지 모른다.
1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모(30·남)씨는 이번 설을 혼자 보냈다고 했다. 연말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 중인데 부모님으로부터 ‘(취업준비가)어떻게 돼 가냐’ ‘올해는 꼭 직장을 구해야 한다’ ‘너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등의 말을 들을 게 뻔해 피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그는 “경험상 부모님과 밥을 먹든 TV를 보든 숨이 턱턱 막히는 얘기만 나오고 서로 기분 상하는 게 무한반복”이라면서도 “(뵙지 못해)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서로 그립고 아끼는 마음은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떻게 하면 서로의 진심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첫째, ‘너’보다 ‘나’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게 좋다. 대화를 시작할 때 부모들은 ‘요즘 뭐하고 사니’ ‘회사생활은 어떠니’ 등 자식에 대한 사항을 묻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실은 ‘요즘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낸다’ ‘며칠 전에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었는데 참 좋았다’ ‘요즘 TV에서 이 프로그램을 즐겨본다’등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러면 그에 대해 상대방이 반응할 거리가 생기고 공감과 정보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내용보다 감정에 대해 먼저 묻는다. 일례로 ‘대출금이 얼마냐’ ‘취직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 계획을 말해봐라’등은 전형적으로 내용을 원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재밌는 일 있었어?’ ‘운동을 시작하니까 기분이 어때?’ ‘아이가 아파서 얼마나 힘들었니?’ 등 감정을 묻는다면 훨씬 더 답하기가 편하고 상대가 나와 공감하려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날씨·드라마·음식·운동 등 누구나 부담없는 소소한 일상의 주제들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다.
셋째, 답답해도 들어야 한다. 가끔 지하철이나 등산로 등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데 서로 각자의 얘기만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이건 대화가 아니고 누구도 만족스럽지 않은 활동이다. 특히 ‘그게 아니다’라며 상대의 말을 끊어버리고 본인의 말로 덮어버리는 건 상대가 아무리 상대가 자식이라 해도 관계를 망치기 십상인 대화법이다.
넷째, 대화는 경쟁이 아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대화는 ‘누가 이기나’라는 경쟁이나 싸움으로 흐르곤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내 생각과 서로 조정하는 게 대화인데, 약점을 찌르고 상대를 당황하게 하면서 내 의견은 결코 변하지 않는, 그래서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걸 대화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를 나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이런 얘기를 할 때 상대가 어떤 느낌을 받을지 짐작해 보는 배려의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다섯째,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있다. 결혼·취직·연봉·자녀계획·재무상황 등이 대표적인 예다. 어르신 중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것도 못 물어보냐. 내가 낳은 자식인데 그런 걸 기분 나쁘다고 하면 기가 막힌다”는 사람들이 많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문화가 발달해 60대 이상 기성세대는 자식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내 소유, 내 결정을 따르는 객체로 보는 시각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임 교수는 “과거엔 해도 됐지만, 이제는 부모라도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며 “기성세대들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30세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개인주의와 자율성 존중을 꼽았다.
여섯째, 피할 것만 피해가도 된다. 송인한 교수는 “좋은 대화는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갑자기 대화를 잘하긴 어려워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몇 가지만 조절해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가 꼽는 ‘피해야 할 대화법’은 ▶현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만 의거한 충고 ▶‘원래 다 그런거야’ 등의 무책임한 위로 ▶ ‘그러니까 평소에 잘 준비하지 그랬어’ 등 책임 묻기 등이다.
한국은 유례없이 빠른 경제발전과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의 확산으로 그 어느 나라보다 세대 간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과거엔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의 세대 차이를 아버지·어머니가 매웠다면 지금은 그 완충지대가 사라져 부모 자식 간에도 격차가 커지고 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임명호 교수는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과거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고 힘들어도 미래 세대에 맞춰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젊은 세대도 본인들도 나이가 들면 기성세대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고, 개인적이거나 곤란한 질문을 받더라도 이해하며 받아넘기거나 지혜롭게 피할 수 있는 여유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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