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이 콜센터 상담사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이유
[장귀연 기자]
▲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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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바깥나들이로 인천국제공항 노동자들과 만남을 선택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열 명 중 팔구 명은 용역,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노동자들을 만나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약속하며 함께 환히 웃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해 7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했다. 모두 3단계에서 걸쳐서 진행하기로 했고, 1단계 정부 부처, 공공기관, 지자체의 용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2단계는 공공기관 자회사, 출자·출연기관 등을, 3단계는 민간위탁을 대상으로 한다고 방침을 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이전 정부들과 달랐던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공공기관의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2년 계약직으로 일한 후 무기계약직(현 명칭은 공무직)으로 전환되고 있다. 물론 그것은 2006년 법제화된 이른바 '비정규직법' 때문이기도 했다.
사기업들에서는 2년이 되기 직전 계약해지를 하는 꼼수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기간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을 강화했지만, 적어도 정부기관에서는 노골적으로 탈법 행위를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기관이 사용하면서도 사실상 사용자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던 용역·하청 방식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2017년 1단계 시작, 2018년 2단계 시작, 2019년 드디어 3단계 민간위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시작될 차례였다. 2019년 2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민간위탁 정책 추진 방향'(아래 '민간위탁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정부가 일괄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고 각 기관의 자율적 결정에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차례를 손꼽아 기다리던 민간위탁 노동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정규직 전환을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각 기관이 민간위탁 업무에 대해서 민간위탁이 꼭 필요한지 타당성을 판단하고, 특히 콜센터 등 논란이 있는 사무에 대해서는 협의기구를 구성해 철저히 검토하여, 직접고용으로 정규직 전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안 할 수도 있다'는 것.
정부가 지시를 내린 1단계와 2단계에서도 이리 빼고 저리 핑계 대던 공공기관들이 수두룩했는데,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니 대부분의 기관은 옳다구나 나 몰라라, 제대로 된 검토는커녕 아예 생각도 않고 젖혀놓았다.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실컷 희망고문만 받다가 결국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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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걸 안 하니, 우리가 직접 타당성 검토를 해보자. 지금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건강보험공단 콜센터는 민간위탁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공단이 직접 운영해야 하는 업무인가?
무엇보다 콜센터는 공단의 고유 업무를 다루고 있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건강보험 자격 문제, 징수 과정, 지급 문제, 노인요양보험,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까지 건강보험과 관련한 모든 내용에 대해서 문의를 받고 상담을 해주고 처리를 하고 있다. 당연히 건강보험공단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정책의 모든 내용과 절차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에는 전 국민이 가입해 있다. 내가 피부양자 자격이 되는지, 도대체 어떻게 내 보험료가 책정되는 건지, 어떤 것은 보험급여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지, 매우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고, 콜센터의 상담사들은 이 모든 것들을 다 설명해 준다. 만약 누군가 전화를 안 하고 직접 건강보험공단 지사로 찾아갔다면 당연하게 공단 직원이 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콜센터에서 단순히 상담과 설명만 하는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 관련 변경 신고를 처리하고 절차에 따라 보험료를 조정하고 증명서나 확인서를 발급하기도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직접 공단 지사를 찾아가도 되는 일이고 공단 직원들이 하는 일이다. 즉 상담사들은 단지 공단 직원들의 일을 분담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사무실로 출근하면 공단 직원이고 콜센터로 출근하면 공단 직원이 아니다. 이것이 타당한가?
정부는 '민간위탁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민간위탁은 공공서비스 전달체계의 하나로서 민간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간위탁을 통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더 잘 활용하여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적어도 콜센터는 아니다.
수탁업체들은 건강보험에 대한 전문성과는 완전히 무관한 기업이다. 사기업 공기업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콜센터들을 외주 받아 운영하는 아웃소싱 전문 회사들일 뿐이다. 물론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공단 직원 못지않게 건강보험 정책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공부하고 시험을 본다. 그런 전문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남아 있지도 못한다. 따라서 수탁업체가 바뀌어도 상담사들은 소속만 바뀔 뿐 자연스럽게 고용승계가 된다.
고용승계가 되지 않고 건강보험 정책에 정통한 상담사들이 다 나가버린다면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공단일 것이다. 즉 전문성을 지닌 것은 상담사들이지 수탁업체가 아니다. 오히려 민간위탁 업체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서비스의 질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생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내용이 바뀌었는데 콜센터에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혼선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운다. 공공기관에 제기되는 민원들을 전화 한 통으로 접수에서 처리까지 완료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원스톱 서비스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콜센터에서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직접 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간업체의 직원이 이런 공공 업무를 처리한다면 공공기관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침범하는 월권이 될 것이다.(사실 건강보험공단 콜센터는 현재 상당 부분 이런 월권을 하는 셈이기도 하다.) 결국 공공서비스를 더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콜센터의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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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후 국민들과의 첫 약속,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은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 것 같다. 1, 2단계부터 삐걱거리더니 3단계 민간위탁에 이르자 정부는 자율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놓아 버렸다.
정부는 1, 2단계와는 달리 3단계는 민간위탁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기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 2단계에 해당하는 용역과 3단계인 민간위탁을 구별하는 기준조차 기관마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콜센터나 CCTV관제센터 등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떤 곳은 이미 1, 2단계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했고 어떤 곳에서는 민간위탁으로 간주해 노동자들이 기다렸다가 배신만 맛보았다. 건강보험공단 콜센터는 여전히 위탁업체 소속이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던 국민연금공단 콜센터나 근로복지공단 콜센터는 이미 1단계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되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콜센터는 외주화가 아니라 직접 운영하는 것이 훨씬 나은 부문이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안정을 위해서도 물론 그러하다. 파업에 들어간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도 배제된 다른 콜센터 노동자들과 민간위탁 노동자들을 대표해 끝까지 약속을 지키라고 외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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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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