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학생 어머니의 눈물
[이동수 기자]
▲ 코로나19로 비대면 졸업식이 진행된 서울의 한 학교 교실 교탁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코로나19로 아이들 없이 원격으로 진행되는 졸업식을 심란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휴대폰 화면에 인근 학교 학생부장의 이름이 떴다. 반갑지 않은 전화다. 분명 학교폭력 건이 생겼나 보다 짐작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학교폭력 건이었다. 신고받은 내용을 들으니 4개월이 넘는 동안 중1 네 명이 같은 학년 아이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한다. 괴롭힌 아이 중 한 명이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 서로 고생하겠다고 위로하고 전화를 끊고 ○○이 담임선생님에게 신고 내용을 이야기한 후 ○○이에 대해 물었다.
담임선생님은 놀라며 가해 학생이 ○○이가 맞냐고 몇 번을 물었다. 비록 코로나19로 등교한 날이 적어 아이를 잘 파악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본 바로는 ○○이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할 아이는 아니라고.
○○이 얘기를 들어봐야 했다. 먼저 ○○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신고받은 내용을 말했다. 어머니는 차분한, 아니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다른 아이 엄마에게 연락받고, ○○이와 이야기해보니 자기는 많이 안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일단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하니 ○○이와 이야기해 봐야겠네요. 전화로는 곤란하고... 어머니, ○○이하고 언제 학교에 오실 수 있으세요?"
"제가 오늘은 곤란하고 내일 오후 두 시에 ○○이하고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마스크 꼭 쓰시고 ○○이하고 같이 본관 3층 학생부실로 오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약간의 불만이 섞인듯한 휴대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통화를 끝내니 습관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편견 없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다음 날 약속 시간에 맞춰 ○○이와 어머니가 왔다. 자리를 권하니 ○○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봤다. 그 모습을 보니 ○○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돼 안쓰러웠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뭔가 '만만해 보이지 않아야지'하는 마음을 먹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확인을 하기 전에 ○○이에게 말했다.
"○○아, 선생님이 지금부터 몇 가지를 물을 거야. 너를 도우려면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해. 그러니 네가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좋겠어. 한 것은 한 대로, 안 한 것은 안 한대로.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 알겠니?
○○아, 너도 잘 알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너의 행동에 따라 미래는 달라져. 네가 한 일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
○○이는 아이들하고 같이 놀다 △△이가 자신을 놀리는 듯해서 네 차례 때린 사실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따지듯 말했다.
"선생님, △△이 말투가 깐죽거리는 투래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많이 때렸는데 ○○이는 참다 참다 그런 거래요."
"어머니, 어머니나 ○○이가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건 제가 뭐라 할 수 없어요. ○○이에게 방금 이야기했듯이 이미 지난 일은 바꿀 수 없어요. 제 경험상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하거나 별거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와 △△이 부모님을 더 화나게 해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에요."
"그래도 ○○이는..."
어머니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아내가 아들에게 실망해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어쩌면 어머니의 차갑고 단단한 표정과 목소리는 자기방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이가 잘못해서 학교에 오신 거 처음이죠?"
"네, 선생님, ○○이가 다른 아이를 때렸다니 전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저 역시도 몇 년 전 아들 문제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의 아들이 그랬다는 게... 자기 아들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고 한참 인정하지 않고... 아들을 미워하기까지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좀 지나니 이게 끝이 아니라 성장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게 보면 이 일이 아들의 인생에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선생님... 감사해요."
"○○아, △△이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해서 밉니?"
"아니요."
"그래 다행이구나. 너도 알지? 얼마 전 인기 연예인이 학교 다닐 때 저지른 학교폭력 건이 알려져서 연예계에서 사라져 버린 거... 선생님 생각엔 △△이가 너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네가 이번 일을 기회로 해서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면 너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네. 선생님."
"○○아, 같이 놀던 아이들에게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마음은 어땠을까? 자기 부모님을 욕하는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기 휴대폰 패턴을 바꿔 알려주지 않는 아이에게 패턴을 알려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이 마음은 어땠을까? △△이는 이런 마음을 넉 달 넘게 버틴 거야. 네가 △△이라면 어땠을까?"
"선생님, 정말 잘못했어요. 저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러고 있었어요. 안 그래야지 했지만..."
"선생님, 저와 ○○이가 △△이와 △△이 부모님을 만나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일단 ○○아, 네가 사과 편지를 쓸래? 어머니 그리고 만나는 건 제가 그 학교 학생부장님을 통해 △△이와 △△이 부모님 의사를 확인해 볼게요. 피해자 쪽에서 원하지 않는 만남은 오히려 상처를 더 심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학교폭력 처리 절차를 안내한 후 SNS, 전화 등 어떤 형태로든 △△이를 욕하거나 서운하다든지 하는 말을 절대 하지 말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으라고 한 후 ○○이와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학교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주관한 트롯 경연대회 참가자의 학교폭력 사건이 이슈가 돼 해당 가수가 경연에서 배제되었다. 그런데 어차피 방송에서 편집될 테니 내가 그만두는 게 맞겠다고 하는 가해자의 모습에서 진정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가수가 배제되는 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낸 방송사가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도 문제지만 방송사는 무슨 생각으로 해당 장면을 내보낸 것일까? 학교폭력 문제를 오직 시청률 소재로만 다루는 것은 아닌지.
며칠 전부터는 쌍둥이 국가대표 선수 자매의 학교폭력 사건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선수들의 영구 자격정지를 청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불과 며칠 만에 수만 명의 동의를 받을 정도로 분노를 사고 있다. 피해자의 글은 분노와 고통이 느껴지는 데 비해 쌍둥이 자매가 썼다는 사과글에서는 어린 시절 철없는 행동으로만 치부하는 듯해서 안타깝다.
사람은 신이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잘못을 한다.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시절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이 아니니까', '아직 어리니까'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의 의사가 존중되는 책임을 질 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지 결코 가해자의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사과했으니 됐어', '나보다 심한 사람도 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땐 다 그랬어'라는 말로 자신의 과거를 감추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피해 학생이 괴롭힘 당할 때, 가해 학생을 피해 산을 넘어 도망갈 때, 칼에 위협당할 때의 마음을 헤아려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학교폭력의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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