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항에서 덕포진까지, 김포의 역사를 따라가 볼까

운민 2021. 2. 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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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별곡] 김포 2편

경기도의 31개 도시 하나 하나를 새롭게 조명하고 여행의 매력을 새롭게 알아가보자 합니다. 김포를 시작으로 파주, 연천, 고양, 강화도, 시흥, 안산, 부천, 의정부, 양주 지역을 현재 취재 중입니다. <기자말>

[운민 기자]

"김포에서 북한이 이렇게 가까웠었어?" 많은 사람들이 김포가 북한과 접경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열에 아홉은 무척 놀라면서, 어떨 땐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필자도 김포에 온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과 군시설물들 때문이었다. 

용화사에서 한강의 풍경은 가릴 것 없이 확 트여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밑을 관찰해보면 철조망도 촘촘히 박혀 있고, 100m마다 서 있는 망루가 군사적 긴장감을 만들어 왠지 모르게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을 따라 평화누리길이 조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 주변의 명소들이 다시금 주목받게 되는 선순환 구조의 사례가 됐다. 평화누리길은 2010년 5월 8일 개장된 DMZ 접경지역인 김포, 고양, 파주, 연천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걷는 길이고, 무려 총 12개 코스 189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길이다.

다 돌아볼 염두는 나지 않았고 김포에 있는 3개 코스 중 일부 포인트 위주로 맛만 보기로 했다. 김포에서 출발하는 코스라 그런지 1코스부터 3코스까지가 김포를 거쳐 가게 되는데, 김포의 유명한 명소 포인트를 거쳐 가니까 김포 여행도 덤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라 그런지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자전거나 도보로 지나가는 여행자들도 종종 보았고, 온라인상에 카페 등을 통해 수시로 최신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무기가 바다를 향해 굽이쳐 있는 곳, 대명항
 
▲ 김포를 대표하는 항구 대명항 규모가 크지 않지만 많은 방문객들로 항상 항구는 북적거린다.
ⓒ 이민주
 
우선 출발지인 대명항으로 먼저 가보기로 한다. 때는 가을이라 김장에 쓰일 새우젓을 사러 오는 사람으로 항구 입구부터 차로 북적였다. 김포를 대표하는 항구이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철마다 새우를 먹으러, 꽃게를 사러 오는 곳이다. 마을이 대망(이무기)처럼 바다를 향해 굽이쳐 있다고 해서 대명항으로 불리는 곳이다.

규모가 큰 항구는 아니지만 수많은 어선과 바로 건너편 강화도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건너편에는 "여기는 전방에서 가깝습니다"라고 속삭이 듯한 군함들이 모여있는 함상공원도 있다.

조금 긴장감이 들었지만 어디선가 새우를 튀기는 고소한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대명항 원조 맛집! 수철이네 본점입니다." 유명하다는 문구에서부터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졌고, 원조라는 말을 쓴 것을 보니 유사품이 성행하거나 프랜차이즈업을 하고 있다는 걸 유추해볼 수 있었다.

검색창에 가게 상호명을 쳐보니 역시나 경기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가게가 있는 프랜차이즈라는 걸 알고는 조금 실망도 했다. 하지만 이런 조그만 한구석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분점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맛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냉큼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는 가게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평범했지만 뭔가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는 느낌이다.

나는 주로 식당에 갈 때 간판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간판이 뭔가 낡았어도 조금 관리가 된 것을 보면 최소 주인이 음식에 대해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 떡볶이에 새우튀김 세트를 주로 팔고 있는데 맛은 특별한지 잘 모르겠지만 기본에 충실했고, 대명항에서 시작한 스토리가 있어서 이야기의 맛까지 더해지니 어느새 떡볶이와 새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수철이네 왕 새우 튀김 김포의 대명항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인 체인점으로 자리잡은 수철이네 왕 새우 튀김
ⓒ 이민주
 
배를 든든하게 채우니 출발도 하기 전에 졸음기가 밀려온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시 다음 목적지인 덕포진을 향해 항구를 벗어나니 차도 다니기 힘든 시골길이 나타난다. 강화도를 마주 보면서 철책길을 따라 행군하니 다시 군 복무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파란색 실선을 따라가며 다음 목적지로 천천히 걸어가본다.

철조만 너머에 있는 강화 사이의 해안가는 마치 강처럼 폭이 넓지 않기에 염하(鹽河)라고 불리기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이 좁은 해협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피해 이 바다를 방어막 삼아서 항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에서 오는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기도 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군대 주군지 돈대가 물길을 따라서 산재해 있는데 크기에 따라 진(鎭)과 보(堡)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위치해 있다. 그중 바로 김포에 위치한 돈대가 바로 지금 가고 있는 덕포진이다.
 
▲ 덕포진 포대의 위용 김포와 강화사이의 해협 염하를 지키는 포대로 많은 서양열강들이 이곳을 침략하였다
ⓒ 이민주
 
바로 건너편의 강화에 있는 초지진을 마주 보면서 수많은 서양세력의 침입에 대항한 치열한 전투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위치 자체가 서울로 넘어가는 주요한 거점에 있기도 하고, 여기가 함락되면 서울까지 별다른 장애물이 없기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 것 같다.

이미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철조망을 볼 때마다 '아직도 전쟁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 나, 다 군으로 이루어진 포대와 파 수청터, 손돌 묘까지 한 번에 돌아보는 트레킹 코스로 되어 있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돈대로 올라가 본다.

언덕에 오르니 싱그러운 풀의 향기가 밀려오고, 사방에는 수많은 여치와 메뚜기들이 뛰어놀면서 나를 반겨준다. 어느덧 흙으로 덮여서 잘 보이지 않았던 포대의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안타까운 사연이 서려있는 손돌묘
 
▲ 덕포진에서 바라보는 강화도 풍경 덕포진에서 강화도를 건너보면 멀리 초지진이 아른거린다
ⓒ 이민주
 
강화도 쪽에 위치한 돈대들이 돌로 된 두터운 성벽으로 만들어진 데 반해서 덕포진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라 밖에서 보면 눈에 띄지도 않고 위압적인 위세도 전혀 없다. 하지만 토성 안의 12개의 포대에 의지해서 조상들이 그 무서운 프랑스, 미국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정말 놀랍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1980년 포대·돈대 및 파수청(把守廳) 터의 발굴 조사에서 1874년에 만든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화폐인 상평통보 및 주춧돌과 화덕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풀밭으로 덮인 땅속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다시 햇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미국과 벌인 전투인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에 대해서는 강화도를 가면서 자세히 보기로 하고 위쪽으로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앞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나를 붙잡고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상상을 해본다.

"여보소 젊은이... 억울한 노인네의 얘기 한번 들어볼 텐가? 나는 손돌이란 뱃사공인데 지금으로부터 어연 천 년 전의 사람이지."

무언의 끄덕임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나는 원래 여기에서 초지(강화도 초지진 부근)까지 사람들은 싣고 나르는 뱃사공이었다네. 육지에서 섬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지만 물살이 세고 거칠어서 건너기가 쉬운 편은 아니라네...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신하들이 어찌나 급하게 내려오던지 말도 말게 허허허.

이 늙은이는 그저 전하와 나으리들을 물길을 따라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을 뿐인데 몽골의 앞잡이(첩자)로 오해받아 죽게 되었다네. 흑흑. 후에 나의 충정을 인정받아 임금이 이렇게 무덤도 만들어주고 제사도 지내고 한다네. 나야 그냥 흘러가는 민초로 살다 갔지만 자네는 자네만의 길을 잘 걸어가 보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다음 고개를 드니 어느새 노인의 형상은 사라지고 청초한 봉분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도 손돌처럼 한 사람의 민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바람이 불면 먼저 흔들리고, 아예 드러누울 수도 있다. 손돌을 죽였던 왕은 강화섬에서 끝내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산자락 한 구석에 묻혀 있지만 손돌의 묘는 높은 곳에서 강화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가 지나다녔던 해협은 지금까지 손돌목이라는 지명으로 살아남아 민초의 끈질김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손돌의 묘 앞에 서서 절을 올리고는 천천히 철책선을 따라 길을 나섰다. 철조망이 있고, 흙길이라 먼지가 풀풀 흩날리기도 하지만 건너편 염하(鹽河)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기가 김포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잔잔하고 고요했다. 들리는 것은 새의 울음과 나의 숨소리 발걸음뿐, 어느덧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연의 소리에 좀 더 집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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