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교 교장의 성추행.. 피해자, 2차가해와 트라우마 시달려
[신나리 기자]
2019년 12월 20일, 딸이 학교에 출근하기 싫다며 울먹거렸다. 엄마 박정화(가명)씨는 딸을 달래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발달장애인(중증 지적장애)인 딸은 자기가 더러워졌다고 울부짖었다. 딸은 "얼마 전부터 학교교장이 몸을 만진다"라고 말했다. 딸이 성추행했다고 지목한 교장은 지역에서 10여 년간 장애인교육을 해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피해자진술서·피해자 변호인의 의견서에 따르면, 경기도 포천시에서 장애인들을 교육하는 A학교의 당시 교장인 이규화(가명·75)씨는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김미은(가명·24)씨를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
이씨는 김씨를 따로 불러 학교에서 개최하는 시 낭송에서 1등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김씨를 데려와 무릎에 앉히고 끌어안았다. 이를 목격한 이씨의 아내는 김씨에게 "유부남을 꼬드긴다, 꽃뱀이냐"라며 "일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소리쳤다. 울고 있는 김씨에게 이씨는 "엄마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라며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김씨의 가슴을 만지는 등 이후에도 성추행을 반복했다. 2019년 9월부터 12월 사이 벌어진 일이다.
경기도 포천시의 A학교는 2010년 만들어진 비영리단체·교육기관으로 장애인에게 검정고시·예체능 교육을 제공하는 장애인 평생교육기관이다. 김씨는 포천시의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지원해 2019년 1월, A학교에 배치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수업 전·후 교실을 청소하거나 수업준비를 도왔다.
▲ 이씨는 박씨와의 문자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라고 했지만, 이후 성추행을 전면부인했다. |
ⓒ 박씨 제공 |
딸의 이야기를 들은 박씨는 장애인단체의 관계자와 함께 딸을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로 데려갔다. 2020년 1월 5일, 김씨는 경찰조사관에게 그동안의 일을 털어놨다. 그는 비교적 상세히 이씨의 성추행 사실을 진술했다. 변호사에게 A학교 구조를 직접 그리며, 교장 이씨의 자리와 성추행당한 장소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후 김씨의 성추행 피해가 지역사회에 알려졌다. 이후 박씨와 김씨는 '2차 가해'에 시달렸다. 박씨는 "이씨와 같은 모임을 한다는 지인이 내게 '문제를 제기해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서 잊고 살라고 했다"면서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우리 딸이 이씨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거짓 신고를 했다는 말도 들었다"라고 흐느꼈다.
이씨와 A학교에서 행정실장을 맡았던 그의 딸이 밤중에 집으로 찾아온 적도 있다. 박씨는 "두 사람이 집 앞에 찾아와 공포에 떨었다"라며 "일방적으로 찾아온 후에 이씨는 사과하고 싶어 그랬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이씨에게) 딸에게 꽃뱀이라고 한 이씨의 아내까지 사과하라고 했더니 답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집 앞에 온 이후 김씨의 자학은 강도가 세졌다. 벽에 머리를 박아 2020년 5월 수술을 받기도 했다. 박씨는 "이씨 연배의 나이든 아저씨가 텔레비전에만 나와도 딸이 경기를 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포천시 "성추행은 개인적인 일"
김씨는 애초 포천시가 시행한 장애인일자리사업을 통해 A학교에서 일했다.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장애인복지법 제21조(직업),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13조의2(장애인일자리사업 실시)에 근거해, 장애인에게 사회참여 확대·소득보장 지원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의 재정지원을 받은 시·도가 장애인일자리사업을 직접 수행하거나 민간위탁사업 수행기관에 맡길 수 있다. 포천시의 경우 A학교에 일부 사업 수행을 맡겼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포천시는 김씨의 피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건을 알고 나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씨는 교장에서 사퇴해 '평생교육시설의 설립자가 부적격한 일을 저질렀을 경우 (평생교육시설을) 폐쇄할 수 있다'는 내부 처벌조항에서 빠져나갔다.
포천시 관계자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일자리사업과 관련 포천시에서 점검을 나가긴 하지만, 당시에 성추행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개인적인 일까지 알 수 없다, 시에서 이씨의 범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포천시와 함께 A학교에 재정지원을 하는 포천교육지원청도 교장인 이씨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포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교육지원청은) 1년에 2번 A학교 등 평생학교에 지도점검을 나간다, 이때 설립자·교장에 대한 결격여부를 따지는데 부적격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학교를 폐쇄조치 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씨가 지난해(2020년) 3월 자진사퇴해 현재 교장은 다른 사람이다. A학교의 운영에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는 일자리사업을 관할하는 포천시와 포천교육지원청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일자리사업은 장애인의 일자리 배치부터 수행여부까지 평가해야 한다. 시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건 당연하다"라며 포천시와 포천교육지원청의 대응을 비판했다.
한편, 이씨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무릎에 앉힌 건 김씨의 자존감을 키워주느라 교육하는 과정에서 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가 장애인교육에 10년 동안 봉사한 사람인데 성추행을 했겠냐"라면서 "다만, 김씨를 무릎에 앉힌건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나도 억울한게 많다. 아내는 김씨에게 꽃뱀이라고 한 적 없다"라고 강조했다.
A학교 교장에서 사퇴한 것을 두고는 "괜한 일에 휘말려서 학교의 명예에 누가 될까 사퇴한 것이다, 제대로 교육도 못받은 장애인들 교육하다 별일을 다 겪는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지난해(2020년) 5월, 의정부지방검찰청은 이씨가 김씨를 성추행했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검은 이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장애인강제추행)'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지난 1월 마지막 변론에서도 성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16일, 해당 사건(2020고합184호) 1심을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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