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채 직매입은 전쟁 때나 고려해야"
[조선혜, 이희훈 기자]
▲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이희훈 |
차분한 말투였지만,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어조는 단호했다. 지난 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교수는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국채 매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국채를 발행해도 달러 수요가 많아 계속 사지만 우리 국채는 그렇지 않다"라며 "수요가 없으니 국채 가격이 내려가고 이자율이 오르면 투자가 위축되거나 부채가 많아지고, 국가신인도는 하락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여당 내에서 필요 재원의 규모로 100조원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한은이 화폐 발행의 독점적 권한을 통해 공급하는 통화인) 본원통화가 220조원인데, 국채 직매입을 통해 추가로 100조원을 푼다면 통화량이 갑자기 40%나 급증하는 셈"이라며 "너무 한 번에 급격하게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돈 많은 사람들은 달러와 금 등 실물에 투자하는 반면, 서민은 실물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인플레이션 때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증세와 한은 국채 직매입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따져본다면 증세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이희훈 |
-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매입하는 방식으로 자영업 손실보상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는데.
"한국은행의 국채 직매입은 최근에 나온 얘기라 많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은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달러를 가지려는 사람이 많으니 부담이 적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국제거래에서는 원화가 아닌 달러로 결제된다. 무역 거래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도 그렇다. 외환보유액의 경우도 기축통화로 돼 있다. 채권이든 화폐든 이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후 안전하게 돌려받고 싶다면 달러에 투자한다. 그러다 보니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의 통화 수요와 채권 수요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에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원화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에선 국채를 발행해도 계속 산다. 우리 국채는 살 사람이 없으니 가격이 내려가고 이자율이 오른다. 그러면 투자가 위축되거나 부채가 많아지고, 국가신인도는 하락하게 된다. 기축통화국에 비해 훨씬 더 보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 국채를 한은이 매입한다면 수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한은이 직접 매입해서 정부에 돈을 준다는 것은 화폐를 발행해 지금 필요한 데 쓴다는 의미다. 우선 액수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최근 여당에서 발의된 '코로나19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과 관련해 100조원 가까이 조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엄청난 숫자다. 본원통화량이 220조원이다. 여기에 추가로 100조원을 푼다면, 통화량이 갑자기 40%나 급증하는 셈이다. 너무 한 번에 급격하게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
"저물가? 안심할 상황 아니다"
- 최근 한은은 저물가를 걱정하고 있는데.
"현재 물가상승률이 0%대이긴 하지만, 통화량이 한 번에 40%나 증가하면 물가가 많이 오를 수 있다. 환율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환율이 올라가는데, 환율은 미래의 예상까지 먼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자본 유출이 생기고 외환위기 상황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자영업 손실보상을 위한 한은의 국채 직매입 규모가 작더라도, 이는 한은의 독립성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한은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물가안정이다. 한은에서 국채 직매입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물가를 이야기하는데,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미국도 저물가 상태였는데 최근 돈을 엄청나게 풀었다. 그래서 미국에선 이제 평균물가상승률 목표제 얘기까지 나온다. 물가목표치를 2% 이런 식으로 고정하지 않고 1.5~2.5% 이런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신흥국의 경우에는 거의 100% 인플레이션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원래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은 돈을 풀고 곧바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100조원은 한 번에 풀기엔 꽤 많은 액수다."
- 자영업 손실보상 재원 조달에 대한 다른 대안이 혹시 있을까. 일부에선 부가가치세를 1~2% 정도 인상하는 안도 거론된다.
"제일 좋은 방안은 예산을 전용하는 것이다. 자영업 손실보상은 아주 중요한 이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다른 예산안 중에서 전용할 수 있는, 덜 중요한 부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부가세 인상은 불가능하진 않다고 본다.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추천할 정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한은 국채 직매입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가가치세 인상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이희훈 |
- 증세보다 한은 국채 매입이 더 나쁜 정책이라고 보나.
"증세라고 하면 세금을 누구에게 거두는지 명확하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화폐를 가진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인플레이션 조세다. 이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한다. 돈을 찍어 쓰는 게 공짜가 아니다. 돈을 찍어내면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돈 가진 사람들은 전부 손해를 보게 된다. 이는 정부에 이전되고 정부가 쓰게 된다. 사실상 세금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때 화폐를 찍어내는 것이다. 과거 전쟁이 끝날 때 세금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으로 세금을 거뒀다."
- 차라리 증세가 부작용이 더 적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인플레이션이 오면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되는데, 오히려 서민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의 경우 물가가 높아지면 이에 따라 가치가 올라간다. 돈 많은 사람들은 실물에 투자한다. 달러, 금 등을 사놓는 것이다. 반면 서민은 실물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증세와 한은 국채 직매입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따져본다면, 증세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 한은 국채 직매입은 어떤 경우라도 활용해서는 안되나.
"전시 상황처럼, 정부가 누구에게도 돈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고려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의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경제 상황이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재정을 더 쓰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덜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국채 직매입까지 시행할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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