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개천용이 가득한 사회를 바란다

2021. 2. 1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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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기재부(기획재정부)의 나라에 살어리랏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건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건 보편적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왜 실패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전역하면 당장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장사를 벌일 궁리를 할 때마다 컴퓨터 실력을 갈고 닦을 생각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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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원래는 ‘기재부(기획재정부)의 나라에 살어리랏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건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건 보편적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왜 실패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어차피 보궐선거가 가까워지면 여야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보편 지급을 추진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낱 서생으로서의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럴 무렵 오래전 군 시절 전우와 반가운 연락이 닿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늦여름 때였다. 여느 신병들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탄 피부에 깡마른 얼굴이었지만 약간은 반항적인 눈빛 때문에 선임병들 사이에서는 긴장감마저 돌았다. 복종이 미덕이었던 군대 환경에서 채 몇 주 지나지 않아 직속 선임과 다툼이 생겨 영창을 가네 마네 하는 해프닝으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백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내무반이 발칵 뒤집혀지기도 했다. 다행히 이 또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의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가정 환경이 불우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런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관심사가 많이 겹쳐 점차 가까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컴퓨터를 무척 잘 다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방 전문대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입대한 그는 전문적으로 컴퓨터를 배운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들을 장난처럼 보여주곤 했다. 행정실 컴퓨터를 통해 국방부 인트라넷에 침투해 맘만 먹으면 큰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전역하면 당장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장사를 벌일 궁리를 할 때마다 컴퓨터 실력을 갈고 닦을 생각이나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5년 이상 흐른 2016년 즈음에 전역 후 처음으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준 사람이라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고, 덕분에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인 게임회사 팀장이 됐다는 그의 이메일을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선임병의 잔소리를 격려로 기억해준 것도 고마웠지만, 흙수저를 들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거쳐야 했을 수많은 고난과 시련의 나날들이 눈앞에 그려져 울컥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능력을 한껏 발휘할 기회를 준 경영진의 결단에 경외감을 표하게 됐다.

꼭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다시 5년이 지났고, 문득 생각이 나서 지난주 연락을 해 보았다. 아직 팀장직을 유지하고만 있어도 그의 성공을 맘껏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자회사 대표가 됐다는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쏟아부었을 노력에, 그리고 그 회사 경영진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지난 몇 년간 책상에 앉아 경제 이론과 지표들에 묻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라는 난제를 풀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던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게 됐다.

어쩌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다. 혁신기업들은 성장하기 위한 길을 알고 실행에 옮긴 지 오래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이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완연히 정착이 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정부는 그저 거들기만 하면 된다. 그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가 수백명, 수천명의 이야기가 돼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가 될 때쯤이면 우리 사회는 다시금 건강해지고 역동적인 성장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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