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땐 '삼바' 꼴 난다? 쿠팡이 미국 간 진짜 이유

염지현 2021. 2.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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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잠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국내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추진하자 이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적자 기업은 상장이 어렵다” “금융 규제를 피해 해외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쿠팡의 미국행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팩트 체크해봤다.


①쿠팡은 한국 증시 상장이 어렵다?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를 택한 이유 중 하나로 ‘까다로운 국내 증시 상장 요건’이 지목된다. 만년 적자인 쿠팡이 상장 심사를 뚫기 어려울 것이란 논리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회(SEC)에 제출한 상장 신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누적 적자 규모는 41억1800만 달러(약 4조538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쌓인 ‘적자’가 한국 증시 상장의 걸림돌은 아니다. 2017년 1월부터 적자기업이어도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테슬라 요건'이 생겼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카페24가 테슬라 요건에 따라 처음 상장됐다.

코스피의 경우 '테슬라 요건'은 없지만 이에 준하는 성장성 기준이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을 위한 요건은 경영성과와 성장성 두 가지다. 경영성과 요건은 최근 연간 매출액이 1000억원(3년 평균 700억원) 이상이어야 하고, 최근 사업연도 세전 이익 30억원(3년 합계 60억원) 등을 충족해야 한다.

적자 규모가 큰 쿠팡은 경영성과 대신 성장성 요건을 택하면 된다. 2015년 11월 도입한 성장성 요건은 ‘미래 성장성’ 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기준은 ‘시가총액 2000억원ㆍ매출액 1000억원’, ‘시가총액 6000억원ㆍ자기자본 2000억원’, '시가총액 2000억원·영업이익 50억원' 세 가지 중 하나만 충족하면 상장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이 성장성 요건을 충족해 상장했다.

쿠팡 역시 지난해 매출(약 13조원)과 시가총액(기업가치 약 55조원)을 무기로 거뜬히 국내 증시에 입성할 수 있다. 신병철 한국거래소 상장부장은 “성장성 요건을 통하면 쿠팡 같은 회사는 얼마든지 상장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상장 문턱은 더 낮아진다. 금융위원회는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으면 시총만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경로도 도입할 계획이다.

세간의 이야기와 달리 오히려 국내 증시보다 미국 증시 입성이 더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쿠팡이 도전장을 낸 NYSE는 나스닥보다는 상장 요건이 더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실질적인 상장 문턱은 미국이 더 높다”며 “뉴욕 상장을 꿈꾸는 기업들도 까다로운 상장 심사와 높은 비용에 도전하기도 전에 좌절하기 일쑤”라고 했다. 상장 이후에도 공시 의무 등 규정이 더 많고, 어길 경우에도 과태료 부과 등 제재 강도가 더 센 만큼 뉴욕 증시 상장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②차등의결권은 뉴욕 증시만 있나

뉴욕증권거래소(NYSE). 중앙포토

국내에는 없는 차등의결권이 쿠팡의 미국행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을 잃을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가진 클래스B 주식 1주는 일반 주식 29주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갖는다.

하지만 차등의결권은 미국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인도 등에서도 차등의결권을 허용한다. 2014년 알리바바가 홍콩 대신 뉴욕 증시를 택한 뒤 2018년 홍콩과 싱가포르에도 도입됐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차등의결권은 최근 3년간 동아시아로 확산했는데, 테크 기업의 미국행을 막고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대응책 측면이 강했다”고 말했다.


③까다로운 절차, 고비용에도 왜 미국행?

쿠팡매출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쿠팡의 뉴욕행은 차등의결권은 물론 자금조달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 국내보다 기업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고 투자자금(투자자)을 더 끌어모을 수 있어서다. NYSE가 혁신기업이나 특허기업의 가치를 더 제대로 잘 평가하는 만큼 자금 조달에 있어 유리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쿠팡의 기업가치가 500억 달러(약 55조1100억원)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대형 유통업체인 이마트 시가총액(4조9619억원)보다 11배 높은 몸값이다. ‘만년 ‘적자’라는 꼬리표보다 미래 성장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결과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5배 안팎으로 뉴욕(25배)보다 저평가돼 있다”며 “쿠팡이 미국행을 선택한 데는 더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NYSE 입성으로 글로벌 시장의 인정을 받으면서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것도 뉴욕 증시로 직행한 이유로 풀이된다.


④금융당국 ‘규제’ 피한 우회 전략?

쿠팡맨. 중앙포토.

쿠팡은 여러 차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2019년 금융감독원 전자금융업 검사에서 ‘경영유의’ 경고 조치를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금융업자의 자기자본 기준(20% 이상)에 미달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금감원은 유상증자 등 경영개선계획을 세워 이행 실적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또 현금을 충전하면 쿠팡캐시로 지급하는 ‘로켓머니’ 마케팅은 불법인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상장심사가 더 까다롭지만 한국에 상장되는 것보다 금융당국의 규제를 덜 받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쿠팡은 상장 신청서에 ‘규제’를 상장 리스크(위험)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에서 사업하니 한국 법규의 적용을 받아 비용과 벌칙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학습효과'도 쿠팡의 미국행에 영향을 줬다는 시각도 있다.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뒀지만 금융당국의 권유 등으로 2016년 코스피 상장한 뒤 기업 가치 평가가 적정했는지에 대한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염지현·황의영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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