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전 앙상했던 그 사자..대구 동물원 찾아 생닭 줬더니
몸의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던 사자, 짝을 잃고 외로워했던 수달, 오랜만에 관람객이 오자 기뻐서 재롱을 부렸던 긴팔원숭이….
지난해 4월 대구 수성구에 있는 동물원 ‘아이니테마파크’에 살던 동물들의 모습이다. 당시 아이니테마파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를 덮치는 바람에 관람객이 줄어 동물원 운영이 어려워졌다. 대출까지 받았지만 동물들의 먹이를 줄여야 했던 상황. 동물들은 말라갔고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떠나갔다.
중앙일보는 지난 14일 다시 아이니테마파크를 찾았다. 상황은 달라졌을까. 다행히 암사자는 전보다는 살이 올랐다. 10개월 전 기력 없이 누워만 있던 수사자는 사람이 오자 눈을 맞추기도 했다. 사자 먹이로 동물원에서 구입한 생닭다리를 먹이 입구로 넣어주자 수사자는 조심스레 다가왔다. 생닭다리를 먹은 뒤에도 수사자는 배가 차지 않았는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손명희 아이니테마파크 과장은 “동물들 상태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된 건 아니다”라면서도 “먹이 양이 전보다 늘어나 동물들이 기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사이 새 생명도 탄생했다.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국제적 보호조류인 가면올빼미 부부가 새끼 4마리를 낳았다. 사막여우 새끼도 관람객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미어캣도 새끼 2마리를 낳았다.
구성본 아이니테마파크 본부장은 “가면올빼미는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종인데 이렇게 힘든 시기에 새끼를 낳아줘서 너무 고맙다”며 “부족해 보일 순 있겠지만 최대한 동물들이 먹고 살며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기본 환경을 뒷받침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니테마파크에 따르면 현재 관람객은 평년의 10분의 1수준이다. 지난해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했을 때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구 본부장은 “지난해 동물원 소식을 듣고 시민들이 말라가는 사자를 위해 생닭을 보내줘 감사했다”며 “하지만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큰 만큼 빨리 코로나19가 끝나서 동물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렵게나마 유지가 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직원들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라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동물원의 딱한 사정이 중앙일보 등을 통해 알려진 뒤 많은 시민들이 동물 먹이를 기부해와서다. 지난해 4월 유튜버 ‘정브르’가 생닭 100마리를 담은 트럭을 끌고 와 기부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로도 생닭 400여 마리, 과일 등의 지원이 이어졌다.
동물원 측은 일시적으로 상황이 나아지는 동안 대책을 고심했다. 관람객을 상대로 먹이 주기 세트를 판매해 동물들에게 관람객이 먹이를 주며 교감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내놨다. 5000원이면 먹이 주기 세트를 구매해 동물들에게 생닭다리, 당근, 밀웜 등을 줄 수 있다.
이날 찾아간 동물원에서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입구에서 먹이 주기 세트를 구매해 입장했다. 시민 최익영(33·중구)씨는 “지난해부터 동물원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해 들었다”며 “조카와 함께 먹이 주기 체험을 하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동물원의 재정은 지금도 열악한 상태다. 직원 급여가 밀리면서 이미 체불임금과 관련한 벌금이 500만원으로 불어났다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구 본부장은 “직원들이 거의 일 년간 급여를 받지 못해 막막한 마음에 시청을 찾아갔는데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현재로선 코로나19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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