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인척 초딩방 슬쩍 낀 성폭행범..폰엔 오픈채팅 200개
“도대체 초등학생이 왜 오픈 채팅을….” SNS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초등학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30대 남성에 관한 사건에 붙은 댓글이다.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요새 아이들 오픈 채팅으로 만난다. 무서운 것도 모르고, 아이들 교육 잘 시켜야 한다"는 등의 댓글도 눈에 띄었다. 오픈 채팅을 사용한 아이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과 그 가족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비판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B양의 어머니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08년이라는 명칭을 새겨놓고 친구들과의 대화방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이 30대 후반의 가해자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오픈 채팅방은 자신의 실체를 숨긴 범죄자들에게도 오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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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휴대전화에 200개 넘는 오픈 채팅방"
문제의 사건에서도 성폭행범 A는 지난 6일 오전, 오픈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B양을 유인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것으로 조사됐다. A는 오픈 채팅방에서 '보고 싶다', '만나자', '주소 좀 불러줄래'라며 B양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소를 확인하자 바로 B양이 사는 도시로 내려갔고 차량 공유업체에서 빌린 차량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B양은 A의 휴대전화에서 200개가 넘는 오픈 채팅방을 봤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벌어진 SNS 오픈 채팅방 메인 화면에 들어가 보니 실제로 청소년 사용자가 주를 이뤘다. 인기 있는 오픈 채팅방 목록 중 '08년생 수다방'이라는 제목의 방에는 200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초딩들만의 수다방'에는 199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신분을 속인 범죄자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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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그루밍 방지법 만들어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일부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유해 매체물로 지정 고시를 하고 성인인증 절차를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이용된 SNS 오픈 채팅과 같은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있다.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관계자는 "아동, 청소년에게 접근해 성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성적인 행위를 하도록 유인·권유하는 것, 즉 ‘온라인 그루밍’ 자체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현재 발의돼있고 올해 통과시키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그루밍은 채팅 앱과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후 약점을 잡아 성적으로 해를 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온라인 그루밍 방지법과 함께 잠입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잠입수사관들이 랜덤 채팅앱 등에 깔려있다는 이런 인식을 주는 게 필요하다"며 "(가해 의도가 있는 사람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셈"이라고 말했다.
잠입수사 방식에 대해서는 "경찰이 아동인 척 잠입수사를 하다가 상대가 유인하는 순간 캡처하는 등 증거를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잠입수사에 관한 개정안은 여러 부처마다 입장이 달라 논의 단계에 그쳤다고 한다. 이 교수는 "기회제공형 수사, 예를 들어 마약 같은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잠입수사를 허용하지만, 온라인 그루밍에는 아직 잠입수사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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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항상 켜라고 알려줘야"
아이들과 부모의 경각심도 중요하다. 문성은 자주스쿨 성교육 전문가는 "요즘 아이들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지 않아 하기 때문에 무작정 '(오픈 채팅)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중 위험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 구분할 수 있도록 레이더를 항상 켜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아이들의 경우에는 상대가 지속해서 잘 해주면 마음을 여는데 이때 아이를 탓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상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내달라든지, 개인정보를 알려달라든지 아이가 위험에 빠질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는 "평상시에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요즘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를 계속 공유해야 나중에 아이가 '나 오픈 채팅에서 이런 사람들 만났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아이를 다그치면 안 되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본 뒤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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