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한국 언론, 신뢰도 꼴찌"란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용될 위험 커
정치인 거짓말부터 막는 게 급선무
권력은 틈만 나면 허튼 명분으로 정략적 술수를 정당화한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현 정권의 행태가 딱 그렇다. 언론 개혁을 외치는 인사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세계 꼴찌”라는 주장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지난해 조사 결과 언론 신뢰도에서 한국이 40개국 중 최하위였다는 거다. 이는 한국 언론이 얼마나 못 믿을 존재며, 언론 개혁이 얼마나 절실한지 웅변하는 증거로 회자돼 왔다.
가짜뉴스다. 정확한 질문은 이랬다. “당신은 거의 항상 대부분의 뉴스를 믿을 수 있나(You can trust most news most of the time)”였다. 어디보다 이념적 편 가르기가 심한 한국이다. 보수든, 진보든 이들 눈에는 대척점에 선 언론의 편파 보도가 난무하는데 어떻게 “그렇다”고 답하겠는가. “당신이 보는 뉴스를 믿는가”라고 물었다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다.
연구소 진단도 같았다. “분열된 사회일수록 언론을 덜 신뢰하는 듯하다. 이는 반드시 언론이 더 나빠서가 아니다. … 뉴스 매체들이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많은 관점을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같은 질문의 답변에 가중치를 줬더니 결과가 놀라웠다. 연구소는 ‘전혀 동의하지 않음-동의하지 않음-중립-동의함-적극 동의함’이란 응답에 1~5점씩을 줬다. 그런 뒤 순위를 다시 매겼더니 한국은 36위였다. 한데 점수가 더 낮은 네 나라가 의외였다. 영국이 근소한 차로 37위, 이 뒤를 이어 프랑스·미국·칠레 순이었다. 현 정권 해석대로라면 최고의 신문·방송을 자랑하는 미국·영국·프랑스의 언론 신뢰도가 최악이라는 얘기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다른 나라처럼 한국에서도 가짜뉴스의 최대 진원지로 정치인이 꼽혔다는 대목이다. ‘허위 정보의 최대 출처’는 정치인이라는 응답이 32%를 차지해 언론사·기자(23%)와 일반 대중(20%)을 앞질렀다. 가짜뉴스를 없애려면 정치인부터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최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고도 무사했다. 그는 아들의 특혜 휴가 논란과 관련, “보좌관에게 부대에 전화하도록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수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청문 대상자의 위증도 그냥 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데도 의원들의 비협조로 아직 처벌 규정이 없다. 그러니 이런 허점부터 메꾸는 게 우선 아닌가.
언론사의 탐욕과 기자의 나태 및 악의에 의해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았다면 구제받아 마땅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하지만 정권이 이를 빌미로 언론을 탄압한다면 이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최근 탄핵 발언 관련,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태를 보라. 녹취가 없었다면 그는 끝까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면서 발언 의혹을 보도한 언론을 제소했을 수 있다.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게 있다. 비판적 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무조건 소송을 거는 행태를 뜻한다. 국가 및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은 얼마든지 예산을 쓸 수 있는 반면, 제소를 당한 언론사와 기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진실 여부를 떠나 보도 과정에서의 실수 또는 취재원의 변심 등으로 언론사가 막대한 부담을 져야 한다. 이런 위험이 커지면 언론으로서는 합리적 의혹 제기조차 망설이게 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 개인 간, 국가 기관 등에 대한 신뢰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불필요한 비용이 막대한 ‘저(低)신뢰 사회’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신뢰를 포함한 사회적 자산 순위에서 167개국 중 139위였다. 이런 판에 검찰·법원에 이어 언론에 대한 불신까지 정권이 부추기면 남은 건 공멸밖에 없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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