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야 화끈하게 쓴다 '팬덤의 경제학'

노승욱 2021. 2. 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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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증권가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상장과 동시에 ‘따상(시초가를 공모가 2배로 형성 후 상한가)’하며 방시혁 대표가 단숨에 국내 주식 부호 6위에 진입한 것. 당시 방 대표 지분가치는 3조7000억원을 기록,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보다 수천억원 높았다. 그 배경에는 1억명 넘는 한류 팬과 잘 조직된 BTS 민병연합군 ‘아미(ARMY)’가 있다. 이들은 강력한 팬덤으로 BTS가 수차례 빌보드 1위를 석권케 하고,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이 BTS 팬임을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시작된 팬덤이 이제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 애플 같은 IT 기업이나 유튜버는 물론, 온라인 오픈마켓에 입점해 상품을 파는 평범한 셀러(seller)도 하다못해 수십 명의 팬덤을 거느린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꿈꾼다. 바야흐로 머리보다 가슴이 설레야 지갑을 여는 ‘팬덤 경제’ 시대의 도래다.

종교 같은 비즈니스…뼛속까지 信者로 시장 움직이는 ‘보이는 손’…‘팬더밍’하라

“앞으로 비즈니스 중 대다수는 종교화될 것이다. 돈이 아닌 의미에 공감하게 만들어라. 신자를 모으지 못하면 물건을 팔 수 없다. 이제 사람은 고독해졌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스타 편집자이자 스스로도 100만부 넘게 판 베스트셀러 저자 미노와 고스케가 저서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내린 진단이다. 그는 수천 명의 유료 회원이 가입한 온라인 살롱 ‘미노와 편집실’을 운영하며 월급의 수십 배를 벌어들인다. 전국 서점에는 그가 편집한 책만 모아 놓은 매대가 깔려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돈을 내고서라도 일할 수 있다’는 청년마저 있다. ‘광신도를 모으는 비즈니스를 할 뿐’이라며 깎아내리는 말에도 그는 의연하다. 오히려 기꺼이 “교조(敎祖)가 돼라”며 권장한다.

팬덤이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는 손’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온라인 콘서트 중인 방탄소년단. <빅히트 제공>
팬덤이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는 손’으로 떠올랐다. 그간 스타를 좇던 종속적 존재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의 주체인 ‘팬슈머(Fan+Consumer)’, 더 나아가 혁신의 주체 ‘팬노베이터(Fan+Innovator)’로 진화 중이다.

팬덤을 거느리거나 이용하지 않고서는 브랜드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다.

팬덤 경제는 곳곳에서 수치로 드러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1~8호선의 아이돌과 유명인 광고는 2015년 231건에서 2019년 2166건으로 4년 새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의 굿즈를 제작, 판매하는 ‘마플샵’은 지난해 2월 오픈해 현재 1만5000여명의 크리에이터가 17만개 이상 굿즈를 판매한다. 오픈 초기인 3월 대비 지난해 말 900% 이상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다. BTS 팬들이 운영하는 자선 모금단체 ‘원 인 언 아미(One In An Army)’는 흑인 인권운동 캠페인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 측에 수십억원을 기부했다.

오늘날의 팬덤을 과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팬덤 진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

1세대인 1990년대까지는 스타를 멀리서 좋아하는 ‘빠(팬)’에 그쳤다. 2세대인 2000년대에는 자신의 팬심을 스타에게 적극 표현하는 ‘조공’ 문화로 진화했다. 2010년대 이후 3세대는 스타의 활동이나 콘텐츠 제작 과정에도 ‘참여’를 원한다. 대국민 오디션으로 진행된 ‘프로듀스 101’, 소비자에게 신제품 아이디어를 받아 투표를 거쳐 상품화한 ‘레고 아이디어스’가 대표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팬덤의 참여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이 됐다고 강조한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저자인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 소비자들은 제품과 브랜드 제작에 더욱 참여하려 할 것이다. 아미들이 BTS 주식을 사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상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발맞춰 기업도 팬슈머, 팬노베이터를 적극 발굴, 육성해야 한다. 팬덤이 생기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인 ‘팬더밍(Fandoming)’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승욱·나건웅·김기진·반진욱·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6호 (2021.02.17~2021.0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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