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도 힘든 다이어트..로잔 콩쿨 여성 1위 윤서정

전수진 2021. 2. 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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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로잔발레콩쿠르 여성 1위인 서울예고 윤서정 양이 9일 학교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의 18세 발레리나 윤서정 양이 지난 6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전 세계 여성 참가자 중 1위다. 로잔 콩쿠르는 올해 49회를 맞은 유서 깊은 대회로, 전 세계 14~18세 발레 무용수들의 스타 등용문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박세은 파리오페라발레단 프르미에르 당쇠즈(1급 무용수)가 로잔을 통해 이름을 처음 알렸다. 현재 서울예술고등학교 2학년인 윤 양을 합격 직후인 지난 9일 학교 연습실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공중에 자기 키보다 높이 떠서 그랑주떼 점프를 하는 윤서정 학생. 발의 턴아웃과 포앵트 모두 완벽하다. 이것이 로잔발레콩쿠르 여성 1위의 위엄. [윤서정 학생 제공]


윤 양은 “수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파이널리스트까지만 가자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입상까지 하게 된 건 선생님과 엄마 덕”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마음을 예쁘게 먹지 않으면 발레 동작도 예쁘지 않다”며 “성격이 춤에 다 드러나는 만큼, 최선을 다하되 즐기며 추고 싶다”고 말했다.

윤 양이 발레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다. 워킹맘인 어머니 임성심 씨가 바빴던 덕분. 어머니 귀가 시간까지 학원을 하나 더 다녀야 했는데, 선택지인 태권도와 발레 중 후자를 택했다. 어머니는 윤 양을 학원에 보낸 뒤 얼마 안 돼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재능이 있네요. 더 큰 학교로 가서 배우셔야겠습니다.” 이후 윤 양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재원에 합격했고 서울예고로 진학했다. 경기도 파주시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2시간 통학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발레를 처음 췄던 순간, 어땠나요.
A : “처음엔 그냥 음악이 좋았어요. 음악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춤이 나오는 듯했어요. 예전엔 끼 부리면서 춤을 췄는데, 커서는 끼만으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작품을 많이 찾아보고 연구해요.”

Q : 아무리 영재라고 해도 힘들 때가 있을 텐데요.
A : “많아요! 안 되는 테크닉이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될 때요. 턴이라든지, 작품의 느낌이 안 나올 때 저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거든요.”

Q : 그럴 때 어떻게 하나요.
A : “좌절하면 정신을 더 차리게 되는 거 같아요. 가족을 생각하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게 있어요. 쉽지 않았던 시절을 보냈기에 오히려 지금 조금이나마 수월한 거 같아요.”

Q : 안 될 땐 그냥 계속하나요, 일단 쉬나요.
A : “저는 안 될 때는 일단 좀 쉬어줘요. 안 되는 데 계속하면 더 안 되고 힘만 빠지거든요. 무용수들에게도 쉼이 필요해요. 몸은 쉬어도 머리로 생각한 뒤 연습하면 저는 더 잘 되는 거 같아요.”

Q : 콤플렉스가 혹시 있나요.
A : “제가 다른 무용수들보다 팔다리가 길지 않은 편이고 키도 좀 작아요. 선생님들이 그래서 팔 쓰는 법, 다리 쓰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제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을 땐 소화를 못 했어요.”

Q : 특히 힘들었던 땐 어떻게 극복했나요.
A : “한예종 때, 4개월 동안 연습을 하는 데도 안 되던 작품이 있었어요. 혼도 많이 나고 힘들었죠. 울면서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았어요. 계속 찾아 나갔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되어 있더라고요. 공연을 성공적으로 올린 뒤 칭찬받았을 때 뿌듯했어요.”

Q : 질투도 많이 받았을 텐데요.
A : “(잠시 생각하다) 나한테 왜 그럴까 싶다가도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남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내 몸에 신경을 더 쓰자고 마음먹었죠. 마음이 안 예쁘면 발레 동작도 안 예쁘게 나와요. 인성이 제일 중요해요. 선생님들이 그러시거든요. ‘네 성격이 춤에 다 드러난다’라고요.”


로잔 콩쿠르엔 매년 수백명의 발레 꿈나무가 지원한다. 그중 올해엔 78명을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추렸고, 발레의 기본인 바(barre) 워크 연습부터 클래식 및 현대 무용 레퍼토리 등 약 1주일간의 심사가 이어졌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영상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20명의 파이널리스트 중 한국이 3명, 일본이 3명이다. 윤 양을 포함한 한국인 참가자가 모두 서울예고 출신이다.

서울예고 교복을 입고 토슈즈를 든 윤서정 학생. 김상선 기자


윤서정 학생이 학교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서정 학생의 장기 중 하나는 풍부한 표현력이다. 김상선 기자

콩쿠르 진행자는 윤 양의 공연 영상 뒤 “동작 연결성이 뛰어나고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높게 평가했다. 윤 양은 여러 작품 중에서 ‘돈키호테’의 여주인공 키트리의 톡톡 튀는 솔로와 현대무용 중에선 유려한 흐름과 절도있는 동작이 인상적인 ‘트레이시즈(Traces)’를 골랐다. 원래 윤 양은 ‘봄의 제전’을 하려 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골랐고, 정답이었다.


윤 양의 지도자인 안윤희 서울예고 발레 담당 교사는 “서정이는 재능과 개성이 뚜렷한 학생”이라며 “테크닉 훈련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게 한국 발레 교육의 현실이지만, 그 너머의 것이 진짜가 아닌가 하는데, 서정이가 바로 그 너머의 것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무용 평론가인 한정호 에투알 클래식 대표는 “올해 로잔 콩쿠르는 비디오 심사라는 점에서도 시사점이 컸는데, 윤 양이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의 정형화된 단정한 바가노바(러시아의 엄격한 테크닉 중심 발레 교육) 외에 자신의 해석을 입힌 부분이 좋았다”고 평했다.

이런 윤 양이지만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슬럼프였다고 한다. 다이어트도 고민이었다는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코로나19 때문에) 연습을 많이 못 하니 잘 안 늘고, 살도 쪘어요. 거울 속에 저를 보는 데, 너무 안 예쁜 거예요. 그러니 연습도 하기 싫어지고, 악순환이었죠. 그러다 ‘살부터 빼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공복으로 연습을 했더니 식욕이 다스려졌어요. 대신 한 끼는 맛있게 먹었죠. 9월에 선생님께서 ‘로잔 나가야지’ 하신 뒤 자극이 더 됐죠.”
그런 그가 발레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윤 양은 “발레를 안 하고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었겠지만, 발레를 해서 더 행복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못해도 계속하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며 “많은 분이 저에게 비결을 물어보시는데 그런 건 없고, 그저 포기하지 않는 게 정답인 거 같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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