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에서 살아남기] '테슬라 대항마' 패러데이퓨처 드디어 등판하나..4년 만에 스팩 상장 추진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전시회)를 뜨겁게 달군 기업이 있다. 전기차 업체 패러데이퓨처다. SUV 전기차 ‘FF91’ 시제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FF91은 공개 직후 36시간 만에 사전예약 6만대를 돌파했다. 덕분에 패러데이퓨처는 ‘테슬라 대항마’ ‘테슬라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금난을 겪고 자동차 양산에 실패하며 잊혀졌다.
최근 들어 패러데이퓨처가 다시금 주목받는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통해 나스닥 우회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다. 상장을 계기로 다시금 유망주로 떠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패러데이퓨처는 어떤 회사
▷2017년 CES서 전기차 선보이며 화제
패러데이퓨처는 2014년 설립된 전기차 업체.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뒀다. 자웨팅과 토니 나이, 닉 샘슨이 공동 설립했다. 자웨팅은 중국 출신 기업가. ‘중국판 넷플릭스’라 불렸던 러스왕(LeTV)을 설립한 인물이다. 토니 나이는 영국 자동차 업체 로터스의 중국지사 임원 출신이다. 닉 샘슨은 재규어랜드로버, 로터스, 테슬라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패러데이퓨처는 설립 후 캘리포니아 차량관리국(DMV)으로부터 자율주행차 시험주행 면허를 받는 성과를 내고 전기자동차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주목받았다. 그러다 CES 2017에서 FF91을 공개하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FF91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긴 주행 거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패러데이퓨처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FF91은 한 번 충전하면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최대 378마일(약 608㎞), 유럽연비 기준(NEDC) 700㎞를 주행할 수 있다. 빠른 가속력도 장점으로 언급됐다. FF91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59초로 웬만한 슈퍼카에 비해 빠르다.
유망주라 평가받던 패러데이퓨처는 그러나 자금난을 겪으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회사 주요 투자자이자 중국 최대 부동산 디벨로퍼 중 하나인 에버그란데가 2018년 자금 투입을 중단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 네바다주에 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이 취소됐고 자동차 양산, 판매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후 추가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며 자금난이 심화됐다. 2019년 자웨팅이 파산을 신청하고 지난해에는 시제품을 경매에 내놓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핵심 인력 이탈도 이어졌다. 2017년에는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토니 나이가 사임했다. 2018년에는 또 다른 공동 설립자인 닉 샘슨이 회사를 떠났다. 같은 해 글로벌 제품·기술을 총괄하던 피터 새버지언도 회사를 그만뒀다.
▶재도약할까
▷상장으로 재무구조 개선 기대
패러데이퓨처는 재도약할 수 있을까.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측은 스팩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패러데이퓨처는 1월 말 “스팩 프로퍼티솔루션 합병을 통해 약 1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지리자동차와 협력 계약을 맺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설계와 기술 분야에서 협력할 계획이며 지리자동차와 폭스콘이 세운 합작사를 통해 자동차를 OEM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경영진을 재정비했다는 것도 긍정적인 사안이다. 2019년 9월 패러데이퓨처는 카스텐 브라이트필드를 CEO로 영입했다. 브라이트필드 CEO는 패러데이퓨처 합류 전 BMW에서 20년간 근무하며 i8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이후에는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튼에서 의장 겸 CEO로 재직했다. 2019년 11월에는 제너럴모터스 출신 밥 크루즈를 제품 설계·생산 담당 임원으로 스카우트했다. 2020년에도 인재 영입은 이어졌다. 1월에는 BMW에서 30년 넘게 재직한 베네딕트 하트먼을 글로벌 공급망 담당 임원으로, 4월에는 볼보, 제너럴모터스, 포드, 마세라티 등에서 근무한 모리스 가오를 최고마케팅책임자로 선임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전문가를 대거 스카우트한 만큼 경영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장 경쟁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점이 변수다.
그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가 주도해왔다. 2020년 세계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0%로 추산된다. 올해는 독일 베를린에 건설 중인 공장을 가동하며 선두 주자 자리 굳히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수년 내 테슬라 독주 체제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 나온다. 폭스바겐과 GM, 현대차를 비롯한 전통 자동차 업체가 전기차 사업 확대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어서다. 폭스바겐은 2023년까지 전기차 100만대를 생산하고 2029년 전기차 75종을 판매하면서 완전한 전기차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GM은 2035년 이후 전기차만 만들 예정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E-GMP는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전기차 플랫폼으로 1회 충전으로 국내 기준 500㎞ 이상 주행할 수 있다. IT 강자 애플도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며 이르면 2024년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애플은 확고한 팬덤을 보유한 기업인 만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처럼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전력투구하는 상황에서 패러데이퓨처가 소비자와 투자자로부터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패러데이퓨처가 이슈가 된 2017년과 비교해 지금은 시장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단순히 전기차를 선보이기만 해도 찬사를 받던 시절은 지났다. 기술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고 다른 자동차와 차별화되는 포인트, 대량 생산 체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열성 팬을 보유하고 생산 체제를 갖춘 테슬라조차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직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패러데이퓨처가 호평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실적보다 잠재력에 무게를 두고 투자 결정을 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된다는 점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만 해도 국내외 투자 업계에서는 성장 가능성만 있다면 제품 생산능력이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투자자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가능성만으로 투자 판단을 하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는 이런 인식이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니콜라는 수소트럭 부문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가가 급등했다. 2020년 1월 10달러대에 머무르다 6월 70달러대까지 뛰었다. 한화그룹이 니콜라에 투자했고 제너럴모터스, 미국 쓰레기 수거 업체 리퍼블릭서비시스 등이 니콜라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후 기술 사기 논란에 휩싸이고 대규모 납품 계약 대부분이 취소됐다. 주가는 폭락했다. 올해 2월 들어 20달러대에 거래 중이다.
금융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니콜라, 나녹스 등 호평을 받는 스타트업에 투자금을 넣었다 손실을 보는 사례가 발생하며 기술력, 실적 등을 과거에 비해 더 꼼꼼히 따져보고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6호 (2021.02.17~2021.02.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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