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대신 종이 포장? 그래도 친환경이 아닙니다"
[류승연 기자]
▲ 오은경 작가는 지난해 11월 아모레퍼시픽이 '친환경 사업'으로 홍보하고 있던 화장품 리필 스테이션이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는 제보를 받고 SNS에 공유했다. |
ⓒ 오은경 작가 인스타그램 |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삶 '제로 웨이스트'를 소개한 책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의 공동 저자 오은경 작가는 약 3년 전 자신의 SNS 계정으로 처음 '무포장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업체들 제품을 널리 알리고 친환경 소비를 독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제보자 대다수가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제품을 홍보하고 있지만 실은 친환경적이지 않은 사례를 제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친환경을 강조할수록 소비자를 현혹하는 '그린 워싱'도 늘어가고 있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세탁을 뜻하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를 합친 그린 워싱은 실제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지만 마치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마케팅 수법을 가리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경 위기에 관심이 많아진 소비자들이 그린슈머(Greensumer,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소비자를 가리키는 '컨슈머'의 합성어)로 변신하면서 '친환경 마케팅'은 효과를 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환경부가 발급한 환경표지 인증을 받은 956개 기업 중 852개(89.1%) 기업 매출이 평균 20.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오 작가와 화상 통화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그린 워싱 사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모레 리필 스테이션은 그린 워싱"
- 3년 전부터 무포장 제보를 받기 시작했어요.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플라스틱 제품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건 그보다 오래됐어요. 직업이 번역가라 한국과 독일을 오갈 일이 많았는데 바로 비교가 되더라고요. 한때 일회용 잔에 맥주를 받아먹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한 맥주 회사가 연남동에 팝업스토어를 열면서 일회용 잔에 맥주를 담아 팔았거든요. 그때부터 다른 맥주집들도 유리컵 대신 일회용컵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어느 날은 맥주집에 가서 맥주를 유리잔에 달라고 했는데 유리컵이 아예 없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독일에선 보증금 있는 유리컵에 음료를 먹는 게 흔한 일이었거든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일상에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처음 무포장 제보를 받게 됐어요."
- 최근 제보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가 봐요.
"정말 많죠. 기업들이 잘 하고 있는 것보다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는 제보들을 더 많이 받아요. 그중 하나가 아모레퍼시픽의 리필 스테이션이에요. '친환경'이라고 워낙 많이 홍보되다 보니 처음엔 저도 좋은 의도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구독자로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보를 받고 보니 문제가 정말 많은 거예요. 정말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그렇게 진행을 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어요."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0월 '아모레스토어 광교' 내 화장품 리필 스테이션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샴푸나 바디워시 등 내용물을 기존 동일 용량 가격의 반값에 사갈 수 있도록 해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리필 스테이션이라고 한다면 소비자들이 본인의 용기를 들고 와서 리필해 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6000원짜리 전용 리필 용기를 사야 하더라고요. 아무리 용기 성분이 코코넛 껍질을 함유했다고 해도 그 용기가 결국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이 친환경 사업을 하기 위해 또 다른 플라스틱을 만들어낸 거예요."
-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인 만큼, 화장품법에 따라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전용 용기를 쓴다고 들었는데요.
▲ 책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
ⓒ 자그마치북스 |
- 또 다른 그린 워싱 사례가 있을까요?
"새벽 배송의 대표 주자인 마켓컬리가 내세운 올 페이퍼 챌린지(All paper challenge)도 마찬가지예요. 포장에 사용되는 모든 플라스틱을 종이로 대체하겠다는 내용의 캠페인이죠. 그런데 '우리는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플라스틱 비닐이 처음 발명된 건 종이봉투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면서 얼마나 많은 물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걸까요. 문제는 일회용의 오남용이지 소재의 문제가 아닙니다."
- 마켓컬리가 '친환경'이라고 홍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또 다른 새벽 배송 업체인 헬로네이처에서 갖추고 있는 '더 그린 박스' 시스템을 들여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헬로네이처에서는 보냉 기능이 포함된 박스 자체를 재사용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상품을 주문하면, 개별 포장 없이 박스 안에 한 번에 넣어 보내줘요. 내용물만 받고 박스를 내놓으면 수거해가고요."
기업들이 '그린 워싱' 오명 피하려면
- 그린 워싱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환경이 마케팅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환경을 앞세우면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좋잖아요. 막상 본질적으로 환경에 접근하려다 보면 그건 복잡하니까 '그런 척'을 하는 거죠. 비닐을 살짝 섞어두고 우리는 종이를 쓰니 친환경이라는 식으로 홍보해요."
- 언제 환경이 마케팅으로 이용 당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지구의 날에 각종 SNS에 들어가면 수많은 브랜드가 갑자기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환경 메시지를 내요. 이벤트도 많이 하고요. 씁쓸한 기분이 들죠. 일회성으로 끝날 분야가 아닌데 하루만 반짝 이벤트하고 마는 업체들이 많으니까요. 한 번은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매일 매일이 지구의 날'이라며 일침도 가했더라고요."
-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쓰는 게 가장 친환경적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사실 생산 자체가 지구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니에요. 생산을 줄이고 기존 자원과 물자를 재활용하는 게 중요하죠. 생산-제작-폐기로 이어지는 3단계 중에서 어느 한쪽이 환경에 나은 영향을 미친다고 '친환경'을 자랑할 게 아니에요. 3단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죠. 유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리 역시 친환경의 대체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플라스틱이 안 들어가는 데다 재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파손 위험이 굉장히 높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배송하면서 망가지지 않게 수많은 플라스틱 완충재가 사용되죠. 그게 과연 친환경이냐는 거예요."
- 그런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을까요?
"필리핀 마닐라에서 묵었던 호텔이 떠오르네요. 호텔은 웰컴 드링크로 페트병에 생수를 담아주잖아요. 그런데 여긴 유리병에 주더라고요. 알고 보니, 호텔에 물을 납품하는 생수 업체가 직접 손님이 먹은 유리병을 수거해 세척한 뒤 재공급하고 있더라고요. 유리병에는 파손이나 분실 방지를 위해 보증금이 걸려 있었고요. 좋은 기업간거래(B2B)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요즘 배달의민족에서 주문할 때, 일회용 수저를 빼달라는 옵션이 있잖아요. 좋다고 봐요. 그런데 캐나다에서 글로벌 기업 우버이츠(UberEats)는 그 반대로 하고 있더라고요. 일회용 수저를 필요할 때만 요청할 수 있게 해뒀어요. 획기적이라고 봐요. 기업들이 생각의 전환을 한다면 수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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