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일째 '사드철거' 투쟁 중, 소성리 주민들을 만나다
[교사J(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늘 생각만 하던 소성리... 드디어 가게 됐다
지난해 11월 27일, 문재인 정부가 사드 기지에 물품 반입을 강행하며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는 사드 반대 측과 경찰 간 마찰이 있었습니다. 길바닥에 나앉은 주민들의 모습과 앞사람을 밀어내는 경찰들, 그 뒤로 지나가는 트럭의 모습... 사진으로 접한 소성리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관련 기사: 국방부, 성주 사드기지에 공사자재 반입하려다 충돌).
▲ 2020년 11월 27일 오후 국방부가 경북 성주군 소성리 사드 기지에 공사자재를 반입하려 하자 주민들이 막아선 가운데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
ⓒ 사드철회평화회의 |
"여기 앉아서 드셔" 할머님이 주신 컵라면
1시 즈음 소성리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에 예정된 '평화 행동' 시작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았습니다. 때마침 마을 회관 앞에 앉아계시는 주민분들 모습이 보였습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는 할머님들께 다가가 인사를 드리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맞아주셨습니다.
"점심들은 드셨는가, 아이고... 컵라면밖에 줄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여기 커피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셔."
▲ 회관 옆에서 할머님들과 이야기 나눈 천막 회관 옆에서 할머님들과 이야기 나눈 천막 |
ⓒ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
식사를 마치고 둘러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확히는 주민분들께서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날도 아침부터 사드 기지 앞 길목 천막에 있다가 왔는데, 곧 또 평화 행동을 가고, 저녁에 다시 천막을 지키러 간다며 종일 사드 투쟁에 매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그때 마침 우리 머리 위로 커다란 군용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갔습니다. 프로펠러도 두 개나 달린 그 헬기는 사드 기지에 생필품이나 유류, 사람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트럭이 아닌 헬기로 나르는가 하니, 주민분들께서 군인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사드 기지로 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얘기를 해주시던 할머님은 "전 세계에서 미군이 못 지나다니는 길은 여기밖에 없어"라면서 웃으십니다. 담소를 나누는 김에 마을 회관 앞, 왠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현대식 건물의 정체도 여쭈어보았습니다. 그 건물은 사드 부지가 과거 골프장일 때 숙소로 사용하던 것인데, 지금은 군 간부와 경찰이 쓰는 중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들은 이 사람들이 "허튼짓하려 하면" 숙소 앞까지 쫓아가 아주 혼쭐을 낸다고 하셨습니다. 연세도 많고 몸집도 작은 분들이셨지만, 호탕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군인들이 꼼짝 못 할만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재미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소성리엔 마을 회관 앞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강아지는 경찰차만 지나가면 크게 짖었습니다. 처음 보는 우리가 지나갈 때는 한 번도 짖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할머님들과 함께 '저 녀석도 사드가 싫은가보다'라며 웃었습니다.
▲ 마을 회관 앞 도로, 회관 맞은편 담벼락. 마을 회관 앞 도로, 회관 맞은편 담벼락. |
ⓒ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
주민들 앞 총들고 선 군인... '저 사람 한국군일까, 미군일까'
어느새 오후 2시가 가까워졌습니다. 차를 타고 올라간 평화 행동 장소는 우리가 짐작한 것처럼 마을 입구가 아니었습니다. 입구부터 계곡을 옆에 끼고 훨씬 올라가면 나오는 사드 기지 코앞이 평화 행동 장소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님이 말씀을 시작하시는 도중, 또다시 헬기가 사드 기지로 향했습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하루 서너 번씩 헬기가 드나든다고 합니다.
기지 담벼락 때문에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정말 가까운 곳에 헬기가 착륙했습니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코앞에서 태연히 물자를 나르는 모습을 보자니 머리에서 열이 치솟는 듯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평화 행동을 시작하자 기지 앞 초소에서 웬 군인이 총까지 들고나와 선 채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국군일까 미군일까?' 궁금했습니다.
내심 '한국군이 설마 미군기지 경비까지 서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 설마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연로한 주민들이 기지에 맨몸으로 쳐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가정해 미군 기지를 수호해주는 군의 모습은 한미동맹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떠올려보면 사드 기지에 물품을 반입하기 위해 사람들을 밀어내며 다치게 한 것도 이 나라 대한민국 경찰이었습니다.
▲ 평화행동 진행 중 날아가는 헬기를 보는 참가자들. 평화행동 진행 중 날아가는 헬기를 보는 참가자들. |
ⓒ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
깨어진 일상... 그래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주민들
평화 행동이 끝나고, 상황실 지킴이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주민분들 삶에 대한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곳 상주는 원래 참외가 유명한 지역이라 과거 주민들은 낮이면 밭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면 집에서 가족들과 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같이 평화 행동을 하고 얇은 비닐로 만든 천막을 지키느라 참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 성주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 이종희님, 소성리 부녀회장 겸 대책위 부위원장 임순분님. 성주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 이종희님, 소성리 부녀회장 겸 대책위 부위원장 임순분님. |
ⓒ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
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님, 주민대책위 부위원장 겸 부녀회장님 말씀도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성리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도시로 나가셨다가 10년 전에 돌아오셨다는 위원장님은 "현재 정부가 (미국의) 주권침해, 또 주민들을 침탈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미국 패권에 맞서는 데 있어 정권에 거는 기대는 잊는 게 낫겠다. 온갖 술수로 주민 분열 책동을 하더라도 그게 통용되지 않는 게 우리 소성리"라고 하십니다.
젊은 시절 결혼 뒤 소성리로 오셔서 43년째 살고 계신다는 부위원장님은 "우리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우리 손자들이, 내 자식들이 살아갈 이 마을에 우리 조상들이 묻혀있는 이 산천에 사드가 있으면 앞으로 누가 오겠나. 나도 누가 시켜서 했으면 지쳐서 이렇게 못 싸웠을 거다.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민분들은 깨어진 일상 와중에도, 그게 힘들다는 말씀보다는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아, 소성리는 늘 전쟁터였구나
이 후기를 작성하면서 인터뷰 영상을 돌려보는데 문득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소성리를 갈까 말까' 고민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물론 사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는 서울에서 지내며 소성리에 사건이 터지고서야 관심을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소성리는 사건이 있을 때만 싸움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2월 3일, 소성리는 1426일째 사드 철거 투쟁 중이었으며 요즘은 매일같이 평화 행동을 진행하신다고 합니다(2월 15일 현재 1438일째). 그곳은 늘 전쟁터였는데 제가 그것을 놓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대 활동으로 느낀 점들이 많아 꼭 교실의 학생들과 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드 배치는 분명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언론은 그 위험성이나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는 과정에서의 위법한 과정을 잘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사드의 문제점,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알려주며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경북 초전면 소성리 주민들의 삶과 모습에 대해서 전해주고 싶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이번 방학에 참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라고 하면서요. 언젠가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면, 사드 없고 미군 없는 소성리에 찾아가 주민분들이 손수 키운, 노랗게 익은 참외를 학생들과 함께 웃으며 나눠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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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연구·실천모임인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소속 교사 J씨가 작성했습니다.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은 역사의 진실과 정의,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미래 세대에 가르치기 위해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교사·예비 교사·시민들 모임입니다. 이 기사는 단체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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