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 "김명수 대법원장 진심어린 사과하라".. 판사 실명 비판 이어질지 주목(종합)
'김 대법원장 사표 수리 거부는 불가피한 선택' 입장 밝혀
임성근 부장판사 주장도 반박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14일 법원 내부망을 통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나눈 대화 내용과 거짓 해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4일 임 부장판사의 녹취파일 공개 이후 판사들의 외부 익명게시판에는 다수의 비판글이 이어졌지만,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한 탓인지 법원 내부망에는 같은 날 정욱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지금 누가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 외에는 별다른 실명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녹취파일이 공개돼 김 대법원장이 사과한지 열흘 만에 현직 부장판사의 실명 비판글이 올라오면서 법원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오후 법원 내부망에 올린 실명 게시글을 통해 김 대법원장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송 판사는 게시글 서두에서 “얼마 전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이 있었다”며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짧은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보겠다”고 밝혔다.
사표 수리 거부 불가피… ‘사실조사 필요·전체 법관 위축 의도’ 임성근 판사 주장 반박먼저 그는 임 부장판사의 탄핵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사유를 나열한 뒤 ‘국회법에 따른 사실조사가 선행되기를 희망하며, 이번 탄핵 추진은 전체 법관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의심된다’는 임 부장판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송 부장판사는 ‘사실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임 부장판사의 주장에 대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한 탄핵소추안에 의하건대 앞선 탄핵소추 사유를 적시한 외에 탄핵소추안 말미에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로 서울고등법원 2020노471호 관련 형사기록, 재판기록 등 총 8건의 자료가 첨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확인이 이뤄져 형사기록과 재판기록에 담겨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어 송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법상 구두변론과 증인신문 등 절차에 관한 규정들을 나열하며 “위와 같은 구두변론을 거쳐 파면결정의 선고 여부를 위한 사실조사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으로, 탄핵소추의 발의가 전체 법관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정치적인 의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미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당시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의 행위에 대해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고 의결했던 만큼 법관 사회 내부의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취지다.
이어 송 부장판사는 국회의 탄핵 추진을 이유로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김 대법원장의 처신과 녹취파일에 담긴 김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위와 같이 탄핵소추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대법원장도 제3의 헌법기관인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를 존중함이 마땅하다”며 “앞서 본 것처럼 이 사건 탄핵소추는 임성근 판사에 대한 제1심 형사판결 등에서 행위의 위헌성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이고, 그와 같은 경우 대법원장이 임성근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 대상자로 논의되고 있던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것은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
“김 대법원장 대화 내용·거짓 해명 충격적, 비판받아 마땅”‥ “진심어린 사과해야”송 부장판사는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 표결을 앞두고 공개된 대법원장과 임성근 판사의 대화 내용 중 일부 내용과 이에 대한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은 어떠한 경위나 이유에도 불문하고 신중하지 못하며 그 내용도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공적 공간인 집무실에서 면담을 온 후배 법관에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탄핵을 하자고 설친다’고 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탄핵사유가 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며 “위 발언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적 고려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의 발언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임성근 판사와의 대화에서 탄핵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거나 녹취파일의 공개 이후 약 9개월 전의 일로 기억이 불분명하여 거짓 해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발언 역시 정의를 상징해야 할 사법부 수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송 부장판사는 “지금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바로 대법원장 본인”이라며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 전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사과에는 헌정사상 법관에 대한 첫 탄핵소추에 대한 반성과 유감 표시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며 “전임 대법원장 시절 있었던 일로 나와는 무관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전임 대법원장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였기 때문”이라며 “비록 전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재판 관여와 법관독립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적정한 징계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현 대법원장의 책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송 부장판사는 “따라서 대법원장의 사과는 솔직하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법부와 대법원장에 대해 실망하고 나아가 배신감까지 느낀 국민들의 마음을 보듬어 드릴 수 있는 진정하고 울림 있는 사과여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사과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과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사법농단 사태의 처리를 책임감 있게 마무리해야 한다”며 사법진실화해위원회의 구성을 통한 사법농단백서의 발간 및 사법농단 판결 관련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와 피해회복을 제안했다.
정치의 사법화·사법의 과잉화 우려돼… “법관의 독립·정치적 중립 더욱 강조돼야”송 부장판사는 법관의 독립과 사법개혁에 대한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법관의 독립, 정치적 중립도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과잉화가 일상화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송 부장판사는 “정치적 사건은 쉴 새 없이 법원으로 밀려들어오고 그 사법적 결론에 대해서 양측 진영 중 어느 쪽은 진영논리로 불복하고 반대한다”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하는 판결과 법관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과 힐책은 법관의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헌법적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이로 인한 분열과 갈등은 극심해지고 그 결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엄청난 후퇴를 가져 올 것”이라며 “이런 상황일수록 법관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의 말미 송 부장판사는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며 “시간은 지났지만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잘못은 사과하고 과오는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대법원장을 향해 “다시 분발하여 사법농단의 청산과 사법개혁의 완수를 통하여 법원을 국민들에게 돌려 드리는 일, 그 일만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 그 것만이 사법행정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리고 나서 대법원장께서, 춘천에서 버스타고, 지하철을 내려서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걸어서 도착하던 그 때처럼, 퇴임하시는 날은 최고 법원의 수장이었다는 명예와 자긍심만 가지고 홀가분하게 내려오실 것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 글로 물꼬 트여 건강한 토론 이어지길…”마지막으로 송 부장판사는 자신의 게시글이 물꼬가 돼 이번 사태에 대한 동료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 제시가 이어지길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고,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이 글로 물꼬가 트여 법원 내부의 건강한 토론도 계속 이어지기를 그리고 이 위기를 우리 스스로의 역량으로 극복해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송 부장판사는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소집됐던 임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공보간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후 2018년 정식으로 출범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공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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