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만료 한 달 전,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이상호 2021. 2. 1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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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재계약의 험난한 여정.. '임대차보호법'에도 불안한 세입자

[이상호 기자]

 
 수도권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이 한국부동산원이 통계를 작성한 2012년 5월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고로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도 새해 들어 3주 연속으로 상승 폭을 키우며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2020년 6월, 집주인에게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본인이 들어와 살고 싶은데 혹시 집을 비워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전세 계약 만료가 8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아이들 유치원 문제도 있고, 2022년 8월에 입주 예정이라 우리의 사정을 말하고 가급적 한 번 더 계약을 해서 그때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집주인은 알겠다고 하면서 대신 전세가 아닌 '전·월세'의 전환을 요구했다. 생각하는 금액을 물었으나 지속적으로 오르는 집값 때문인지 재계약 시점의 시세를 보고, 시세보다는 좀 저렴하게 계약하자고 했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셈을 해봤다. 이사비용이 부대비용 포함하여 대략 300만 원 정도라고 보고, 1년 6개월 사는 동안 그 정도 선에서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월 최대 20만 원 정도는 더 지불하고 그냥 사는 방향으로 정한 후 혹시나 그 이상 터무니없이 부르면 집을 뺄 생각을 했다.

이후 집값이 급속히 오르는 동시에 전세에 관한 법이 바뀌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세 세입자는 총 4년(최초 2년 계약, 2년 계약 연장) 동안 거주가 보장되는데, 계약 갱신 시 보증금 인상은 최대 5%까지만 가능하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우리에게 바뀐 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계약 만기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내 재계약 의사를 밝히고 통화를 해서 계약 연장의 뜻을 전했다.

집주인은 이전 통화에서 나눴던 대화들을 기억하고는 자기도 이미 2022년 8월까지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집 가까이 있는 아이들의 유치원, 어린이집을 신청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전화

그런데 계약기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1월 말, 집주인이 지난번 통화가 무색하게 월세로 30만 원을 올려주던가 아니면 자신이 들어가 살아야겠으니 집을 비우든지 선택하라고 연락을 해왔다. 30만 원 인상이 시세보다 덜 요구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현행법상 최소 2개월 전에 계약 변경을 요구해야 한다.)

2년 전 우리는 이 아파트가 처음 분양해 입주할 때 전세로 들어왔다. 30평 아파트를 1억 7500만 원에 2년 계약을 하고 살기 시작했다. 그 후 대전에도 부동산 광풍이 매섭게 불었고, 2억 5천에 산 집이 5억 정도로 뛰었다. 

집주인은 앉은 자리에서 두 배를 번 셈이다. 만 2년 새 벌어진 일이다. 매매 5억, 전세 4억이니 월세 30만 원을 올려달라고 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게 어디 정상인가?

이전 통화에서 식당일 하신다는 소리를 들어서 물어보았다.

"식당 하시면 아시겠지만, 상가도 한 번에 30만 원씩 올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식당 주인이 아니라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머리가 띵! 일단 가족과 상의를 하고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집주인이 현행법상 우리에게 이런 식의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으나, 아내와 함께 확인의 확인을 거치고 부동산을 하는 지인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했다. (11월 통화, 이날의 통화 모두 녹취해 놓은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집주인은 현재 세입자인 우리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었다. 굳이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계약이 자동 갱신된 것이어서 우리는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한 이틀 심란하게 보내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도 그사이 부동산을 통해 좀 더 알아보았는지 본인이 요구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는 걸 안다고 했다. 다행히 막무가내는 아니었고, 우리도 5%는 인상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법의 테두리 내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집주인은 처음에 좀 더 요구했으나, 따로 문서를 작성해도 우리가 나중에 법을 근거로 반환을 요구하면 어차피 토해내야 한다고 하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쩌겠어요. 법이 바뀌었는데..."

다행히 집주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통화 시, 법이 바뀐 전후 뭔가 조치를 취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엊그제 전화를 한 것도 부동산에서 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연락해 보라고 해서 한 모양이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 것'이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전세금을 5% 인상해 재계약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다행히 어제처럼 30만 원 인상이 아니면 집을 비워달라느니 하는 상황은 벗어났고, 통화도 불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사실 그냥 뭉개도 되는 계약이었다.

그럼에도 법이 바뀌기 전 재계약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감안해 계약은 자동연장으로 두고, 일시금 50만 원을 주는 것으로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전세금 1000만 원 올려봐야 그 이자로는 부동산 중개료도 낼 수 없고, 하루 공치는 것까지 생각하면 나쁜 제안이 아니어서 집주인도 흔쾌히 수긍했다.

50만 원을 송금한 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드렸더니 집주인도 따뜻하게 화답해 주었다. 
    
내가 집주인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이 공식 공포된 2020년 7월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으로 비어있다.
ⓒ 연합뉴스
 
집주인은 나쁜 분이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인 것이다. 순박하게 살아오면서 집 한 칸 마련한 게 대박이 났고, 그저 그 오른 값에 맞게 임대료를 요구한 이분이 나쁜 분인가?

그런데 화가 난다. 월 30만 원, 1년이면 360만 원. 내겐 한 달 꼬박 벌어도 부족한 돈이다. 집주인은 분식집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360만 원을 벌까? 연 360만 원이라는 수입은 한 달을 꼬박 일해 버는 노동의 대가보다 얼마나 달콤할까? 그 달콤함을 위해 누군가는 지출을 10% 이상 줄여야 하거나 짠 내 나게 뭐라도 일을 더 해야 하는데 말이다.

왜 우리는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이 땀 없이 발생하는 돈에 열광할까? 그런데 이 열광에 나는 과연 자유로울까? 만약 내가 집주인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다행히 돈으로 갑질하고 살아올 형편이 못 되었음이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집주인은 현 정부에서 두 배가 뛴 집값을 먼저 생각할까? 아니면 법을 불리하게 만들었다며 욕할까? 일부 언론에선 이미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물고 뜯고 난리인 상황이다. 집 있는 사람에게도, 집 없는 사람에게도 욕을 먹는 정권이 참 답답하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값이 '억억'하고 올라 숨이 턱턱 막히는 세상을 만들었으니, 현 정부는 뼈저리게 반성하고 철저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법정의와 검찰개혁을 부르짖지만, 그 정의에 서민들의 '의식주' 정의는 빠져 있다는 것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계산기를 멀리하며 살아와서 비록 이런 신세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서 이래저래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은혜인가? 나는 이번 기회에 돈보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에 좀 더 가치를 두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동산에 눈먼 도시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단편 중 하나다. 열렬한 헨리 조지의 지지자였던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외출길 열차 칸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설파했다고 한다. 이 단편은 그가 누구나 쉽게 '토지 정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작품으로, 그의 사상이 깃든 단편 중에서도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글이라 하겠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이 대부분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기에 이 작품의 줄거리도 아주 간단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의 돈으로 땅을 사려는 농부에게 땅 주인은 해가 떠서 지기 전까지 걸어서 돌아온 면적의 땅을 주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농부는 먹고 싸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온종일 죽어라 걷고 또 걷다가 그만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게 되었다. 결국 그에게 돌아간 땅은 한 평 남짓, 자신이 묻힐 땅이라는 내용이다. 욕심부려봐야 다 헛되다는 얘기다. 톨스토이는 거대한 땅을 소유한 대지주들이 농사지을 땅 한 평 없는 사람들을 소작으로 부리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그 불합리한 구조를 비판했던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악하다고 부르짖는 사람도,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한 줌 자신의 부동산 가치가 오를 때 미소 짓는다. 우리는 하나같이 스스로 족쇄를 차고 있다.
  
▲ 부동산이 점령한 아파트 상가 상가 전면 7곳의 매장 중 5곳이 부동산이다. 입주 때 일시적으로 있다 빠지는 게 아니라 분양 후 2년인 아파트의 모습이다.
ⓒ 이상호
 
이 글과 함께 올린 사진은 이런 일이 있기 얼마 전 찍은 우리 아파트 상가 사진이다. 입주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다양한 가게들은 자취를 감추고, 전면에 부동산 중개업소만 즐비하다.

부동산에 눈먼 도시를 떠나 어디 한적한 곳에 사람 좋은 사람들 몇몇과 이웃하며 땅도 일구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그렇게 살면 딱 좋겠다는 오랜 상상이 오늘따라 더욱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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