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갈비탕""알래스카"..與 기본소득 전쟁, 별난 말싸움
더불어민주당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의 판이 커지고 있다.
이낙연 당 대표, 정세균 총리에 이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반(反) 기본소득 전선에 합류하면서다. 범친문 주자들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다대일 구도다.
14일 임 전 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은 같다”면서도 “소득과 상관없이 균등하게 지급하자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복지제도를 모두 통폐합해도 (1인당) 월 20만원을 지급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라면 기본소득은 여권 차기 대선 주자들 간 정책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확고한 기본소득론자인 이 지사가 지지율 1위로 치고 나가면서 다른 주자들이 입장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경선이 본격화되면 논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범친문 주자들의 반(反)기본소득 공세는 주로 재원 조달의 현실성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맞선 이 지사는 지난 7일 자신의 단계적 기본소득 실행 계획을 공개하며 실현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단기적으론 예산 조정을 통해 1인당 연 50만원씩 지급하고, 이후 조세감면 축소와 증세를 통해 1인당 월 50만원씩 확대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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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 김종인 ‘빵’ vs 이재명 ‘갈비탕’
주변부 정책 이슈로 취급되던 기본소득이 중앙 정치 어젠더로 커진 실마리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마련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3일 당내 초선의원 대상 강연에서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를 언급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강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본소득에 국한해서 이야기한 건 아니다. 재원 확보가 어려우면 아무리 공감대가 형성돼도 실행이 쉽지 않다”고 했으나, 이 지사가 곧바로 “기본소득은 증세 없이 가능한 수준에서 시작해서 연차적으로 추가 재원을 마련해 가며 증액하면 된다”(지난해 6월 8일)고 맞받아치며 정치권 첫 논쟁이 시작됐다.
이 지사는 지난 10일에도 자신의 기본소득론은 국민의힘이 ‘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인 정책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빵 비유를 갈비탕으로 맞받아쳤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갈비 없는 갈비탕처럼 형용모순”이란 지적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의 핵심개념은 ‘모두에게 공평하게’인데 국민의힘은 차등과 선별을 중심에 두고 있다. 기본 없는 기본소득으로 국민을 기만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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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 홍남기 ‘3불가론’ vs 이재명 “기술관료 한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본소득 반대론자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6월 강연에서 “의료 등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을 다 없애고 전 국민 빵값으로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이 더 맞냐”며 “기본소득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기본소득 ‘3불가론’도 꺼내 들었다. 홍 부총리는 “1인당 30만원씩만 줘도 200조원이 들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어려운 계층에 더 많은 돈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이며,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정식 도입한 국가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이 지사는 홍 부총리를 향해 수차례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해 10월엔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냐. 기재부는 국민을 위해 무한충성하는 대리인이자 머슴이다. 정해진 예산 총량에 맞춰 국민의 삶 개선은 뒷전인 전형적인 탁상공론 재정 정책만 고수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고, 12월엔 홍 부총리를 향해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자린고비”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지난 9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인용해 “기술관료 패러다임이 이번 위기나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들에 대응하는 데 있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정부가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당시 급진적으로 지탄받았다”면서 “이 시각에도 많은 국가들이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책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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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운드 = 이낙연 “알래스카 빼고 없다” vs 이재명 “사대주의 열패의식”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올해 들어 기본소득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연설에선 18세 이하 아동수당과 전 국민 상병수당 등 기존 복지제도를 두텁게 강화하는 ‘신(新) 복지’ 구상을 발표했고, 연설 직후엔 “(기본소득은) 알래스카 빼고 하는 곳이 없다”는 말로 이 지사를 저격했다. 14일 방송 인터뷰에선 “기본소득은 시간을 두고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제가 주장하는) 신복지제도는 시차를 두고 급한 것부터 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당내 비판에 대해 이 지사는 “사대주의 열패의식”이란 표현을 꺼내들며 맞섰다.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BTS의 세계 음악 시장 제패도, 기생충이 세계 최고 영화제를 석권한 것도 현실이 되기 전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치이고, 가능한 일을 하는 것은 행정이다”고 적으면서다.
당분간 여권 내 기본소득 논쟁은 ‘범친문 대 이재명’ 구도로 전개될 모양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일 “지구상에서 일반적인 기본소득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나라는 없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는 실패할 것”이라며 기본소득 비판에 가세했다. 친문 제3후보로 거론되는 이광재 의원도 이날 “기본소득 주장을 하려면 얼마를 줄 수 있고, 돈은 어디서 걷거나 아끼고, 어떤 방법으로 줄지 대안을 뚜렷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당내 비판론과 결을 같이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임 전 실장도 연일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여전히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고 정의롭냐는 문제의식을 떨칠 수가 없다”(지난 8일)는 게 임 전 실장의 기본 생각이다. 임 전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 올린 글을 “건강한 토론을 기대한다”는 말로 끝맺었다. 이제 논쟁이 시작이란 걸 암시하는 표현이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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