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경쟁 속 한국의 '생존 전략'은?
韓, 협력체 '4대 기준' 제시..쿼드 거리두기
"쿼드 확대 가능성 높아..선제 대응 필요"
EU·아세안 등과의 연대 필요성도 제기돼
미국과 중국이 다자주의를 앞세워 외교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가 미중 '최대 격전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혈맹 미국과 경제적 파트너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해온 한국에게 '선택의 순간'이 임박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만큼, 보다 구체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취임 당일이었던 지난 9일 △투명성 △개방성 △포용성 △국제 규범의 준수 등 '4대 기준'을 제시하며 "어떠한 지역협력체 또는 구성과도 적극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중 대립구도와 무관하게 한국이 견지할 입장을 사실상 공개한 것이지만, 쿼드(Quad)에 대한 '거리두기' 의향도 담겨있다는 평가다. 정 장관이 협력체와 관련해 개방성·포용성 등을 거론한 것은 '중국 배제'를 전제한 쿼드에 대한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쿼드는 미국이 일본·호주·인도와 함께 꾸린 '반중 군사전선'으로,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협력체이기도 하다. 미국은 쿼드를 한국·베트남 등으로 확장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 장관은 "보건협력과 세계 경제 회복은 물론 기후변화, 민주주의와 인권, 비전통 안보 분야에서의 국제사회 노력에도 적극 동참해 나가야 한다"며 "미중 간에 이익이 합치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기후 변화, 방역, 한반도에서 평화 구축 등의 분야에서 미중 간 신뢰 구축 역할을 (한국이) 담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적 가치에 방점을 두되 미중이 대립하는 이슈보다 협력할 수 있는 이슈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가입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민감해하는 군사적 이슈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하면서 협력할 부분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쿼드가 아시아 전략 기초"…韓 부담 늘 듯
'이슈별 협력체' 구성해 中 압박할 수도
하지만 미국이 안보전략 핵심으로 '힘의 우위'를 강조하며 쿼드를 아시아 정책의 '기초'로 언급한 것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라는 평가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쿼드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정책을 실질적으로 구축해 나갈 기초"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신성호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이미 미국의 주요한 동맹이기 때문에 대중 견제 동참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역시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쿼드의 확대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향후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선제적으로 입장을 정리·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조야에선 한국의 역내 역할 확대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한국이 역내 경제 및 안보 환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아시아 전역에서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역할 확대를 어느 선까지 주문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일례로 백악관은 한미 정상 간 통화 이후 발표한 자료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인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약속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호주·인도 정상과 통화한 뒤에는 '인도태평양' 표현이 담긴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역내 핵심 동맹 및 파트너 국가 중 한국에만 '동북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 비중을 낮게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는 한국에 대한 쿼드 동참 압박이 예상보다 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대중국 전략과 관련해 '이슈별 협력체(ad hoc bodies focused on individual problems)'를 언급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라는 평가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는 캠벨 조정관이 기고문을 통해 "영역적으로 모든 이슈에 각국의 헌신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협력체별 역할 분담 가능성을 시사한 해당 기고문에 "EU는 '기술·인권 분야에선 얼마든지 미국과 연대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미국이 (총체적) 반중전선이 아니라 이슈별 협력체 구성에 나선다면 우리에겐 부담이 덜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들파워 국가들과 협력해 신냉전 막아야"
독일·프랑스, 미중 대립각에 우려 표해
같은 맥락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가들과 연대를 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원적·중층적 소다자주의'를 통해 미중 대립구도의 '완충망'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부담과 저항이 적은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협력이 쉽고 성과 도출이 용이한 사안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내 행위자들과 다원적·중층적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 간의 교집합을 지속 확장해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다자 협력 네트워크로 발전 시켜 나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성호 교수는 "미중만 볼 게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EU·아세안 등과의 전략적 교류 및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에 대한 집단반대는 비생산적이다" "이쪽은 미국, 저쪽은 중국이라며 어느 한쪽으로 집단을 이루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미중 대결구도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역시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과 가까우면서 우리보다 강한 영국·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캐나다·일본 등의 미들파워(middle-power) 국가들과 협력해 미중이 신냉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데일리안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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