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아동 그룹홈의 설..82%가 가족 못 만났다

학대 피해 아동들 공동생활 공간
조부모 학대로 아빠가 맡긴 아이
"밥 한번" 연락에 아빠는 번호 바꿔
코로나로 후원 줄고 식비 더 나가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설 명절이지만 학대 피해 아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학대 등의 이유로 보호시설에 맡겨진 아동 10명 중 8명은 올 설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시설에서 보냈다.

오지 않는 부모의 ‘재회 약속’을 믿으며 수년째 외로운 명절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조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A양은 초등학교 3학년인 2017년 아빠 손에 이끌려 그룹홈에 들어왔다. 아동 그룹홈은 학대, 방임, 가정해체, 빈곤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보호하는 ‘공동생활가정’이다. 당시 A양의 아빠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떠났다. A양은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지만, 아직 아빠는 감감무소식이다.

A양을 돌보는 시설 관계자는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명절 때라도 이곳에 와서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어달라고 연락했지만, A양 아빠는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며 “아이가 이제 우리(교사) 앞에서는 아빠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아마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러 갈 거다. 그 마음을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이 가운데 81.8%(144명)는 ‘원가정’에 가지 못하고 그룹홈에서 설을 맞는다.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9.1%(16명)뿐이었다. 원가정과 그룹홈을 오가며 설을 보내는 경우가 4.5%(8명), 나들이를 가거나 종사자의 가정에서 지내는 경우가 3.4%(6명)였다.

이재욱 그룹홈협의회 기획팀장은 “일부 아이는 원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내지만 대부분은 그룹홈에서 설을 맞는다”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집콕’한 시간이 길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그룹홈을 운영하는 유모 원장은 몇 달간 월급에서 빼 돈을 따로 모았다. “집에 못 가는 아이들에게 세뱃돈이라도 주려면 내 돈이라도 모아야죠.” 유 원장의 안타까운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분기마다 아이 1명당 3만2000원의 특별위로금을 주지만 명절을 보내기엔 부족하다. 유 원장은 “1분기는 설 명절, 2분기는 어린이집, 3분기는 추석, 4분기는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으로 쓴다”며 “초·중·고교에 새로 입학하는 아이라도 있으면 선물을 주고 싶어 사비를 모은다”고 말했다.

“코로나에 그룹홈서 세 끼 다 해결 … 지출 늘고 교사 업무강도 2배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6명이다. 6살부터 대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 중 1명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다. 가방이라도 사주고 싶지만,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며 후원금이 줄어든 탓이다.

그룹홈 운영 6년 차인 유 원장은 “지난 명절보다 20% 정도는 후원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아동학대 그룹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는 학대 아동에게 더 가혹했다. ‘천안 가방학대 사건’ ‘정인이 사건’ 등 흉악한 아동 학대 범죄가 이어진 지난해였지만 올해도 지원은 충분치 않았다. 그룹홈협의회가 지난 2~4일 전국 420개 회원기관 대상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한 176곳 가운데 61.9%(109곳)가 코로나19로 인해 후원이 ‘줄었다’고 답했다. ‘큰 차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5%(36곳), ‘늘었다’는 17.6%(31곳)이었다.

반면에 아이들을 돌보는 데 들이는 생계비는 오히려 더 늘었다. 설문 결과 84.7%(149곳)는 지난해 생계비 지출이 전년보다 늘었다고 답했다. 큰 차이 없다는 응답은 14.2%(25곳), 줄었다는 0.6%(1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지출이 늘어난 이유도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그룹홈 관계자는 “먹성 좋은 남자아이 5명과 생활하는데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나 보육기관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 집에서 세 끼를 다 해먹다 보니 지출은 늘고 교사의 업무 강도는 2배가 됐다”고 말했다.

그룹홈 관계자들은 가장 도움이 되는 지원으로 현금·상품권을 꼽았다. 전체의 45.5%(80곳)였다. 다음은 식료품 20.5%(36곳), 생필품(가전제품, 의류 등) 15.3%(27곳), 마스크 등 방역물품 4.0%(7곳) 순이었다.

아동의 문화체험, 주거환경 개선, 학습 지원 사업 등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