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떠난 봉화에 '백두산 호랑이'와 함께 봄이 온다
[홍성식 기자]
▲ 경북 봉화군 백두대간수목원의 너른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백두산 호랑이.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경상북도의 오지(奧地) 중 오지'로 불리는 봉화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봉화는 한적한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피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의 며칠'을 꿈꾸던 관광객들은 봉화군의 피할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부산과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인구가 최대 1000만 명에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에게 겨우 몇 만의 주민들이 1970~1980년대의 따스한 공동체적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봉화군은 그 자체로 신비한 공간이다.
접촉과 대면을 가능하면 줄이자는 게 여행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지난해와 올해.
봉화군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언택트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국립 백두대간수목원'과 '분천역 산타 마을'이 자리한다.
▲ 봉화군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의 겨울 풍경.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 백두대간수목원의 봄 풍경.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선물 받는 즐거움과 치유의 시간
사람들 상상의 영역을 훌쩍 비껴난 5179ha의 광대한 땅에 22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7년의 시간을 들여 조성한 백두대간수목원은 누가 뭐래도 봉화군을 대표하는 관광지.
"2008년 9월 대통령 주재 국토균형발전위원회의 결정으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산림·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백두대간수목원 조성의 역사가 시작됐다.
기후대별·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기후 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보전,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게 바로 백두대간수목원. 이는 국가 광역 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문화·생태·관광기반 조성의 핵심 사업이기도 하다.
다가올 2030년엔 아시아 최고의 수목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여러 가지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광활한 땅'에 세련되게 조성된 각종 숲과 정원, 거기에 식물원과 휴게 공간까지 들어선 백두대간수목원은 편안하게 트램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에게 작지 않은 만족감을 선물한다.
백두산 호랑이, 기다림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행복감
▲ 백두대간수목원의 ‘인기 스타’인 백두산 호랑이들.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게다가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나는 호랑이는 몸집이 작고 볼품없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호랑이가 아닌 '백두산 호랑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여타 호랑이와 어떻게 다르냐고? <시사상식사전>을 펼쳐보자. 이런 설명이 나온다.
"한국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범·시베리아 호랑이·아무르 호랑이·동북호라고도 불린다. 백두산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 둥근 머리, 작고 동그란 귀가 특징. 앞발과 어깨의 근육이 매우 발달했으며 힘이 세다. 19세기 중엽 동북아시아 일대의 사냥꾼들은 백두산 호랑이를 가장 용맹하다고 증언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총기를 이용한 사냥이 보편화되었고, 다른 야생동물처럼 감소세를 보였다. 현재 백두산 지역·자강도 와갈봉·강원도 고산군 일대 호랑이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소규모 동물원 창살 안에 고양이처럼 웅크린 호랑이가 아닌 널찍한 평지에서 사방 백 리를 장악하며 포효하는 호랑이를 본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였다. 지난번 봉화 여행에선 1시간 넘게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를 지켜봤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 와중에 40년 전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호랑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런 것이다.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영남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다.
"이거는 내가 동네 아지매한테 들은 이야긴데... 일제시대 때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사가꼬(고용해서), 오만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부산으로 갔다카대. 그란데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산을 넘어가는데 호래이(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기라. 스무 명도 넘는 장골(성인 남성)이 모조리 바지에 오줌을 지맀다카더만. 그날 딱 여섯 명이 죽었는데, 모조리 왜놈들인기라. 조선 사람들은 하나도 안 죽있다카데. 그 호래이가... 조선 호래이는 다 아는 기라. 냄새만 맡아도 안다. 왜놈인지 조선 사람인지."
조모는 1915년에 태어났다.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호랑이가 마지막으로 포획된 게 1924년 강원도에서라고 하니, 이 땅에서 호랑이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 말에는 신뢰성이 담긴 게 아닐까? 어쨌건.
한 가지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이동로 확장과 보수를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니, 호랑이와의 재회는 4월 1일이 될 듯하다"는 게 백두대간수목원측의 설명.
▲ 눈 쌓인 분천역 산타마을 풍경이 낭만적이다.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 분천역에 정차해 있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즐거움 넘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분천역 산타마을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맛봤다면, 이제 발길을 분천역 산타마을로 옮길 시간이다. 여기선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너나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선물이 가득 든 커다란 자루를 멘 흰 수염 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 때문일 터.
여기에 눈까지 내리는 날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 풍경이 봉화군에서도 그대로 연출된다. 눈싸움을 하며 뛰어다니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산타마을 방문을 권하는 봉화군 관계자의 자랑을 들어보자.
"백두대간 협곡열차, 낙동강 세평하늘길, 분천역 인근 빼어난 경치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 목적으로 2014년 조성이 시작됐다. 산타열차와 눈썰매장, 레일바이크와 산타우체국 등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 겨울이면 정말 많은 분이 찾아줬다. 그 결과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고, 2015~2016년 한국지역진흥재단의 겨울 여행지 선호도 조사에서 2위에 올랐다. 또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지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빨리 진정 국면에 들어서서 그런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내가 봉화군을 여행한 때는 2019년 늦여름. 그때도 분천역 산타마을은 '여름 무더위를 이기게 해줄 산타마을의 겨울 풍경'이란 콘셉트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서 '겨울이 오면 또 한 번 분천역을 찾아 산타마을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동행한 선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은 여름과 겨울 구분 없이 가족과 연인이 즐거움과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광지다.
최근 봉화군은 산타마을을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더욱 많은 곳으로 진화시키려는 청사진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앞으로 3년간 2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분천역 산타마을을 '한국의 겨울왕국'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게 봉화군의 계획. 이를 위해 올해는 산타의 집,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의 길, 순환산책로 등의 시설이 들어선다.
이어 다양한 세대의 입맛을 고려한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하고, 기념품 가게를 포함한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될 예정. 여기에 더해 "가상현실 체험관이 신설되고, 주차장도 넓힐 것"이란 게 봉화군청의 설명이다.
보다 편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봉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광 관련 인프라는 오늘도 진화 중이다. 봉화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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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도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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