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그날의 여진이 후쿠시마 덮쳤다..공포의 밤 보낸 日

이영희 2021. 2. 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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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다시 덮친 강진
쓰나미 우려 없었지만 고지대에 사람 몰려
후쿠시마 제1원전 5·6호기 수조서 물 흘러
가토, "일본 도착한 화이자 백신은 안전"

"10년 전 그 날의 공포가 스쳐 갔다." "무서워 잠을 잘 수 없어 차를 타고 나왔다." 13일 밤늦게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도호쿠(東北) 지역 주민들은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의 트라우마에 떨며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14일 오후 후쿠시마 고오리마치에서 한 주민이 지진으로 무너진 집을 살피고 있다. 집에는 20년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 지진으로 인한 부상자는 없었다. 윤설영 특파원

14일 오후 후쿠시마현 고오리마치(桑折町)에서 만난 식당 주인 시시도 쓰네오 씨는 전날 밤의 상황이 "10년 전과 거의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스토브 위에 물을 올려놓았는데, 지진의 흔들림으로 물이 쏟아져 발등에 화상을 입었다. 찬장, 책장에서 물건들이 다 쏟아졌다. 정말로 무서웠다"고 했다. 시시도씨는 이날 오전 일찍 식당에 나와 지진으로 엉망이 된 식당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쓰나미(지진 해일) 우려가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많은 주민이 집에 머물지 않고 인근 고지대나 피난소로 향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시의 고지대에는 14일 새벽까지 차를 타고 피신한 주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동일본대지진 때 집이 완전히 망가지는 피해를 입은 한 주부(50)는 "10년 전처럼 위험하다고 생각해 남편, 딸과 함께 가재도구를 차에 싣고 나왔다"며 "당분간 여기서 상황을 살피고 싶다"고 말했다. 이시노마키시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인해 3500명의 사망자가 나온 도시다.


진도 6강, 기어서 움직여야 하는 흔들림
지진은 13일 오후 11시 8분 후쿠시마 현 앞바다 북위 37.7도 동경 141.8도, 깊이 약 60㎞ 지점에서 발생했다. 리히터 규모(magnitude)는 7.3으로 2016년 구마모토(熊本)에서 발생한 강진과 같은 세기였다. 이 지진으로 후쿠시마와 미야기 현 일부 지역에서 최대 '진도 6강(强)'의 흔들림이 관측됐다. 수도인 도쿄(東京)는 진도 4를 기록했다.

14일 후쿠시마 이와키 시립도서관에서 직원이 지진으로 바닥에 떨어진 책을 정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진도'는 일본 기상청이 사용하는 지표로 특정 지역이 지진으로 인해 얼마나 흔들렸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진원에서 측정된 지진의 절대 강도를 의미하는 리히터 규모와는 다른 개념이다. 일본 정부는 진도를 전체 10단계로 구분하는데, 최고 7의 바로 아래 단계인 '6강'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어 바닥을 기어 이동해야 하고 고정되지 않은 가구들이 크게 흔들리며 일부 쓰러질 정도의 세기다.

지진의 규모는 강했지만 바다 깊은 곳에서 발생해, 내륙 활단층에서 일어난 구마모토 강진 등과 비교해 피해는 적었다. 쓰나미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동일본대지진이 약 24km 깊이의 얕은 해저에서 일어나 거대한 쓰나미를 가져온 반면, 이번에는 진원이 지하 깊은 곳에 있어 해일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후쿠시마 현에서 67세 여성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중상을 입는 등 총 1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후쿠시마에서는 산사태로 도로가 차단되거나 가옥이 붕괴했고 미야기 현 공동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기도 했다.

14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역 앞에 운행을 중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진 직후 수도권과 후쿠시마·미야기·이와테(岩手)·니가타(新潟) 현 일대 9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으나 14일 오전 대부분의 지역에서 해소됐다.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도호쿠 신칸센(新幹線) 일부 구역은 15일까지 운행을 중단했다.


스가, 한밤중 기자회견
폐로 작업 중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피해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일본 원자력규제청은 14일 오전까지 원전에서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도통신은 이번 지진의 여파로 제1 원전 5·6호기의 원자로 건물 상부에 있는 사용 후 연료 수조(풀)에서 물이 넘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넘친 물의 양은 소량이며 방사선량도 낮아 안전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원자력규제청은 설명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14일 오전 총리관저에서 지진 상황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비판 받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번 지진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지진 발생 1분 뒤인 오후 11시 9분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대책실 설치를 지시하고, 11시 28분쯤 총리관저에 도착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스가 총리 도착 약 10분 후 총리관저 로비로 뛰어들어갔으며 14일 오전 1시 14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가 총리도 오전 1시 58분 총리관저에 대기 중인 기자들 앞에서 "쓰나미 우려는 없으며 원자력 시설에도 이상이 없다. 인명을 제일로 삼아 확실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4일 오전 9시에는 관계 각료들이 참석한 대책 회의가 총리관저에서 열렸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진인 듯"
후쿠시마 현의 요청을 받은 일본 정부는 복구 및 대피소 지원을 위해 자위대를 파견할 계획이다. 또 재해지에서 코로나19가 퍼지지 않도록 방역 대책을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가토 관방장관은 14일 오전 회견에서 "수도권 등지에 정전이 발생했지만, 국내에 도착해 보관돼있는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일본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의 여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미야기 현 앞바다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은 역대 최고 측정치인 리히터 규모 9.0을 기록했다. 당시 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미야기 현 등의 태평양 연안 마을을 덮치면서 1만5899명이 사망했고 행방불명자도 아직까지 2527명에 달한다.

워낙 강력한 지진이었던 만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3월 11일부터 1년간 이 지역에서는 규모 4.0 이상의 여진이 175회 발생했다.

14일에도 여진은 이어졌다. 이날 오후 4시 31분에는 전날 진원지 인근에서 규모 5.2의 지진이 일어났다.

후쿠시마=윤설영 특파원,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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