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영어 간판, 안 쓰면 안 될까요?

김혜민 2021. 2. 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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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 잘못된 외래어 ①] 영어편

[김혜민 기자]

코로나19 이후 제대로된 활동을 못 하고는 있지만, 나는 영어권 관광통역안내사다. 관광일이 없다보니 지금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코로나19가 잦아지는 대로 가이드업에 복귀할 생각이다.

남편은 3개 국어에 능통하다. 함께 거닐 때면 습관처럼 영어로 된 간판이나 안내문, 그리고 식당 메뉴판에서도 잘못된 외래어나 이상한 표현을 찾는 슬픈 놀이를 한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어는 훨씬 심하다. 그런 사례를 볼 때마다 프랑스어 초보자인 나에게 사진을 찍어 알려주는데, 이 정도면 철자나 문법이 틀리지 않은 프랑스어 이름이나 문구를 찾는 게 훨씬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틀린 외래어를 신고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공분야 안내에서도 물론 많은 외래어 실수가 보이는데, 이 경우 이렇게 신고하고 수정함으로써 관리가 가능하다는 건 참 다행이다. 하지만 크고 작은 상점에서 틀린 외래어로 된 이름을 커다랗게 써놓고 장사하는 걸 볼 때면 '이름인데 어쩌겠어...' 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설 뿐이다. 

이름에서뿐 아니라 외국인을 위한 안내 문구에 실수가 가득한 걸 볼 때면 정말 이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며,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싶다. 남편은 '이럴 거면 차라리 외국어 안내가 없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번역기를 썼거나, 아니면 전문 번역가가 아닌 사람에게 대충 값싸게 맡겼거나, 또 아니면 성의가 부족했을 터다. 한국인은 외국에 비춰지는 이미지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게 그간 이 나라에 살면서 조금은 싫었던 부분인데, 난무하는 이상한 외래어를 보면 이건 안 창피한가 싶어 갸우뚱하게 된다.

특히 관광업 종사자의 시선에서는 계속 고궁의 모습이나 김치, 케이팝 등 자랑하고 싶은 영상을 만들어서 반복적으로 보여줄 시간에 이런 서비스 부분에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인상적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연애 때부터 남편은 이상한 외래어를 목격하면 내게 항상 사진을 찍어 보내줬는데, 수백 장은 될 거다. 그때마다 나도 웃어넘겼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곳에 다 연락을 해서 이 외래어를 고치시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너무 많다보니, 그리고 섣불리 연락해서 그런 '오지랖 부리는' 사람을 당사자는 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도도 못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지적을 당하기 전에 많은 분들이 스스로 돌아보고 교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외식을 할 때, 영어 메뉴판이 있는 경우 이를 확인하고, 실수 투성이일 경우 양해를 구하고 바로 나와버리는 편이다. 메뉴 이름 하나 제대로 신경 안 쓰고 대충 처리하는 식당은 요리도 대충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차라리 영어 메뉴판이 없는 편이 훨씬 낫다.

반면 어떤 영어든 프랑스어든 실수 없이 구사된 메뉴를 보면 더욱이 그 식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한번은 나와 남편의 기념일에 찾은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말도 안 되는 프랑스어가 가득한 메뉴판을 본 뒤, 자리를 박차고 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 해 그대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예상대로 맛이 정말 별로였다. 반대로 흠 잡을 데 없이 번역이 잘 된 메뉴판을 가진 곳의 음식은 아직까지 모두 '평타' 이상이었다.

제품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문법에 안 맞는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정말 어색한 표현을 갖다 쓰고 있는 경우, 외국인이 그 제품을 사용할 거라고 기대하면서도 번역된 문구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해당 원어민 한 명에게라도 물어볼 성의조차 가지지 않은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이건 물론 나의 편견일 수 있다.)

어쨌거나 정말 어이없는 실수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하니, 웃겨줘서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프랑스어 실수를 보며 남편은 배를 잡고 웃곤 하는데, 그걸 전해듣는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웃긴 건지 직접적인 감이 오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남편이 비교적 최근 보내준 사진을 통해 틀린 외래어의 유형을 구분해봤다. 일단 영어 실수부터 정리해본다.

[유형 ①] 번역기를 돌려서 그대로 옮긴 듯한, 문법 파괴자 
 
 한 돈가스 식당의 이름 아래 impressed pork cutlet. 억지로 의인법을 적용시켜준다 해도 돈가스가 감명을 받는다고 이해하긴 힘들다. impressed를 impressive로 고쳐야 바람직하다.
ⓒ 김혜민
 타일 박스에 있던 주의사항들. 너무나 오류가 많아 무엇 하나 콕 찝어 말할 수가 없다. Beware of cars and cars : 차량, 그리고 차량에 주의하라는 말은 너무나 이상하고 그 아래 You can't get wet은 갑자기 이걸 운반하는 내가 비 맞을까봐 걱정해주니 눈물이 날 노릇이다! 이 밖에 주의사항 아래의 작은 글씨의 영어도 실수 투성이이나 이 정도로 정리하겠다.
ⓒ 김혜민
    
 drainge district라는 구역은 없다, drainage district는 있어도. 또 한 번, 민간 영역에서만 실수가 발생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
ⓒ 김혜민
  
 상품 이름이 The More The Fun인 듯한데 the more the~ 구문에서는 fun을 funner로 비교급을 써주는 게 맞다. Designed Premium Gaming Monitor-Arm도 아주 말끔하지는 않다, 맨 앞의 designed는 굳이 없어도 된다. 세상에 디자인되지 않은 제품이 어디 있겠는가.
ⓒ 김혜민
  
 스테이크 식당에 붙어있던 슬로건. pure and timeless simplicity and honesty(순수하며 변치 않는 소박함, 그리고 정직함)는 한국말로도 힘들다. 한 술 더 떠 insist(고집하다)를 to부정사의 형용사적 용법으로 뒤에 붙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정직을 고집하다(insist)'가 한국어로는 이해될지 몰라도 영어로는 아무 뜻이 없기에 굳이 쓰고 싶다면 We insist on~으로 시작해 완전히 문장 구조를 바꿔서 써야 할 것이다. 영어를 한국식으로 번역한 것인데, 꽤 많은 프랜차이즈 지점을 보유한 식당에서 이렇게 크게 써붙일 슬로건을 만드는 데 이 정도로 신경을 안 쓴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 김혜민
     
 반려동물 매장이었다. "이제 내가 너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게"란 말을 쓴 듯한데, keep your body&heart 다음 be동사는 필요가 없다. keep+목적어+형용사 healthy가 오면 되는 것이다. 꼭 이 말을 이렇게 문법 틀려가면서 영어로 해야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김혜민
 
 한 화장품 업체의 광고문구. 도대체 왜 영어 번역을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실수가 많다. 가장 앞 줄에 studies and care는 같은 주어를 가진 일반동사 두 개가 일치되지 않고 있으며 이 정도의 실수가 매 문장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주 어색한 영어의 향연이다. 대충 번역기를 돌렸거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 번역을 맡겼을 거다.
ⓒ 김혜민
  
 '추천메뉴'를 쓰고싶었던 것 같은데, 메뉴를 추천하라!라는 명령어가 되었다. Recommended menu가 맞다.
ⓒ 김혜민
 
 baby of best. 아마도 best baby를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 김혜민
    
 제품의 카탈로그에 아주 민망한 명칭이 눈에 띈다. 어떤 물건인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으나 ejaculation valve는 절대 아닐 것이다. ejaculation이란... 남자의 사정을 의미한다.
ⓒ 김혜민
 꽤 유명한 콩글리시 사례다. '쓰레기(들)를 낭비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말이 어떻게 "쓰레기를 줄입시다"란 말로 변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김혜민
   
 Be slippery는 "미끄러워져라"라는 명령이다. 미끄럽다고 알려주려면 Slippery라고만 하면 되고, a snowy and rain day도 아주 어색하다. Slippery if snowy or rainy / Slippery when wet 정도로 고쳐줄 수 있다.
ⓒ 김혜민
 
[유형 ②] 철자 실수
 
 여성 티셔츠의 뒷부분에 프린트된 문장, 아마도 ITAM은 ITEM을 뜻하려던 것 같은데, 하필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이라 더욱 낯뜨겁다.
ⓒ 김혜민
 
 FRIDE가 아니라 FRIED. 많은 실수를 접하다보니 이 정도는 그래도 작은 실수로 보인다.
ⓒ 김혜민
    
 처음 이 가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You are stupid(너는 멍청하다)라니? 그런데 stupid가 아닌, 듣도 보도 못 해본 단어 stupiai...그리고 한 술 더 떠 아래 오타와 함께 써있는 best tor you가 참 슬프다.
ⓒ 김혜민
  
 cianatta는 ciabatta가 아니다. 이 정도 실수는 그나마 눈 감아줄 수 있다.
ⓒ 김혜민
   
 오타가 났나보다. Dessefts는 Desserts가 아니다.
ⓒ 김혜민
     
 프리미엄으로 읽을 수는 있겠다, 다만 premium은 primium이 아니다.
ⓒ 김혜민
     
 비스트로가 되고싶었던 음식점, 다만 비스트로는 bistro라고 쓴다, bisrto가 아니라.
ⓒ 김혜민
 
 한 맥주 집에서 보게 된 지도. FRANCE는 FRACE가 아니다.
ⓒ 김혜민
   
 아쉽게도 가게 문 앞에 홍보용으로 크게 거치돼있던 것이다. Franch food가 아니라 French food.
ⓒ 김혜민
   
 콜드브루는 나도 참 좋아하는 음료다. Cold blew는 빼고...
ⓒ 김혜민
 
[유형 ③] 동어 반복형
 
 사실 문법 파괴 + 동어 반복이 결합된 사례다. 한 닭강정 프랜차이즈의 문구인데 첫째, '전통적인'이란 뜻의 형용사 traditional 다음에는 바로 명사가 오는 게 자연스러우나, 전치사 of가 오면서 완전히 이상해졌다. 게다가 traditional 과 original은 거의 비슷한 말이라 동어 반복 느낌이다.
ⓒ 김혜민
 
 elevation facility라는 단어는 원어민은 절대 쓰지 않는 단어다.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칭하는 듯한데 elevator라고 써주면 되고, installation construction이라고 설치/공사 두 가지 단어를 나란히 써주는 게 한자어나 한글에서는 괜찮지만 영어에서는 비슷한 말을 비효율적으로 나란히 써줄 이유 자체가 없다. installation 하나만 쓰면 된다. 개인 상점에서의 실수가 아니라 더 씁쓸하다.
ⓒ 김혜민
 
[유형 ④] 기타 : 영어와 프랑스어의 난데없는 결합
 
 빵오쇼콜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빵 종류다. 그런데 여기서 pain은 프랑스어 빵이 맞는데 chocolate는 영어 초콜릿이다. 프랑스어 쇼콜라는 chocolat가 맞다.
ⓒ 김혜민
 
다시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정말 외국인 손님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확실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맞지도 않는 구글 번역기를 대충 돌려서 나온 문구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간판으로 써붙이고, 안내문에 붙여넣기를 한다는 건 우리 개개인은 얼마나 국제화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어차피 국내 거주자는 대부분 한국인인데 외국인에게 알려줘봐야 뭐하나라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잘 맞지도 않은 영어를 굳이 쓰는지, 쳇바퀴 돌듯 다시금 의문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고 번역 업체에 맡겼더니 엉터리 결과물을 받게 되었다고 억울해할 수는 있겠으나, 그 또한 슬픈 일이 아닌가.

프랑스어 실수는 영어 실수보다 훨씬 많다. 한편 프랑스어 실수가 빈발하는 이유는 잘은 몰라도 많은 사람이 프랑스어로 가게 이름이나 상품 이름을 지으면 좀 더 고급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무래도 프랑스어를 하는 인구가 영어하는 인구보다 현저히 적으니 틀렸다고 지적해주는 이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싶다. 게다가 프랑스어는 성별을 따지기에, 번역기로 돌릴 경우 영어보다도 안 맞는다.

다음 편에는 잘못된 프랑스어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잘못된 영어보다 훨씬 황당하고 웃긴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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