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도 시진핑도 '다자주의'..무엇이 다른가
"美, 책임감 있는 강대국 되게 中 압박해야"
시진핑, '美 동맹협력' 노선 비판하며 '포괄성' 강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목소리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미중 대결구도가 외교 전략에서도 반복되는 양상이지만, 양 정상이 추구하는 다자주의 면면에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를 기초로 한 다자주의를 강조해왔다. 이는 대중국 전선에서 '다대일(多對一) 구도'를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거래'적 관점에서 중국과 '일대일 구도'를 형성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는 세계보건기구(WHO)·세계무역기구(WTO)·파리기후협약 등 각종 국제기구·협약 '복귀' 선언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양자관계를 추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능마비, 기능부전을 통해 국제기구를 무효화시켰다"며 다자주의를 추구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개혁해서 미국 입김이 커지게 하고, 미국 담론을 정당화시켜서 다른 국가와 함께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그간 자유민주적 질서를 바탕으로 국제기구를 주도하며, 비민주적 국가들을 국제기구에 편입시켜왔다. 국제기구를 통해 비민주적 국가들이 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기구에서 잇따라 '이탈'하자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틈타 국제기구 내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평가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을 넘어,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국제기구를 이용하고 있다고 미국이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민주적 가치를 중심으로 다자주의를 구체화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모범'이 되는, '책임감 있는 국가'로 변모할 수 있도록 압박해나갈 거란 관측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미국은 지난 10년간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지 못했다"며 "반추해보면 미국이 더 밀어붙이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미국이 한국·일본 같은 동맹과 함께 새롭고 더 공격적인 외교력 발휘해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성' 내세우는 '중국식 다자주의'
정작 분쟁사례에선 '힘의 우위' 강조
"국제사회 호소력 가질지 의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동맹협력과 자유민주적 가치에 기초한 바이든 대통령의 다자주의를 '선택적 다자주의'로 규정하며 보다 포괄적인 '중국식 다자주의'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최근 세계경제포럼(WEF) 아젠다 연설에서 '인류운명공동체' 건설을 위한 다자주의는 소수 강대국이 주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함께 마련한 국제법에 따라 당면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선택적 다자주의에 거듭 우려를 표하며 개방성과 포용성에 기초한 'G20+UN' 거버넌스 체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싱하이밍 한국주재 중국대사 역시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은 그룹'을 만들어 다른 나라를 배제하거나 압박하지 말자는 게 중국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각종 분쟁 사례에 대처해왔다는 점에서 중국식 다자주의는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유현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식 다자주의가 언어적 수사에 불과하고, 중국의 실제 외교행위와는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 연구위원은 △남중국해 문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이 분쟁 사안에 대해 국제법이나 규범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보다는 힘의 우위를 통한 자기중심적 해결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지난해 코로나 국면에서 호주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단행했다"며 "이처럼 자국의 안보·정치적 이익을 위해 다자 경제기구인 WTO 규정을 위반하는 중국이 개방성·포용성에 기초한 다자주의를 실제로 구현할지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은 코로나 중국 기원설을 제기한 호주를 겨냥해 무역 보복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호주는 중국의 무역 보복 문제를 WTO에 제소한 상태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협력과 더불어 국제기구를 통한 전통적 다자주의 외교를 구사할 경우, 겉과 속이 다른 중국식 다자주의가 설 자리는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유 연구위원은 중국식 다자주의에 "중국의 이익이 강하게 투영돼왔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차별화 전략'이 국제사회에 호소력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중국이 미국과의 차별화를 강조하기에 앞서, 향후 중국의 다자외교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국제사회에 먼저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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