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의 남은 이야기] 이제 언론개혁이라고요?
가짜뉴스 공장 차려놓고 심판도 하나
춘풍추상(春風秋霜) 아직도 유효한가
2002년 12월, 대선을 3주가량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미선·효순양 추모 집회가 시작됐다. 좌파 인터넷신문 기자가 독자로 둔갑해 추모 집회를 제안하는 글을 실은 것이 신호였다. 3년 전 동두천지역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치여 숨진 것은 도로교통법상 단순 교통 사망사고였다. 유족과 미군 측은 보상까지 진작 끝낸 터였다. 전국으로 번진 반미 열기가 노무현 당선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그해 대선정국에서 민주당이 창안한 ‘병풍(兵風)’은 베스트 상품이었다. 민주당 사람들은 사기, 강간, 수사관 사칭 등 전과 8범의 김대업을 포섭해 선거판을 지속해서 흔들어 댔다. 이회창의 두 아들이 돈을 주고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시비였다. “의인이고 강직하며 사명감을 가진 사람” “병무 비리 전문가이자 공로자” “용기 있고 의연한 시민”…. 대선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뒤 노무현 당선의 1등 공신 김대업은 무고죄 등으로 2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2008년 5월 초 광화문광장에서 촛불문화제 미명으로 불을 지핀 광우병 시위는 거의 민중봉기였다.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재개에 반기를 들고 석 달 넘게 벌어진 시위는 거짓 선동과 폭력의 대명사가 됐다. TV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광우병과는 전혀 무관하게 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한국인에게 사실상 발병 우려 제로의 광우병 공포는 끝도없이 퍼졌다.
무분별한 보도에 호흡을 맞춘 좌파의 기세는 무적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가(假)똑똑이들까지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미친 소 급식을 먹은 뒤 죽어서 대운하에 뿌려지게 될 것이다” “미국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털어 넣겠다”는 식이었다. TV마다 함량 미달의 저질 패널들을 경쟁적으로 불러 있는 말 없는 말 마구 털어놓게 한 결과였다.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광란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집권 초기 동력을 상실했다. 광우병 피해자는 당연히 없다.
‘탄핵 오적’ 국회 노조 언론 특검 헌재
2016년 가을 광화문에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구속 촉구 촛불시위는 이듬해 봄 대선 때까지 전국을 강타했다. 세월호 침몰을 고리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미국 잠수함 고의 침몰, 구조 고의지연 등 유언비어가 무차별 생산됐다. 박근혜의 호텔 밀회, 성형수술, 숨겨진 딸(정유라), 300조원 재산 해외은닉도 그 일부다. 세월호는 일찍이 산으로 갔다. 기약 없는 진상조사는 여태 꼬리를 문다.
반년 동안 광화문광장은 박근혜 하야․구속을 외치는 그들만의 무대였다. ‘이게 나라냐’ ‘타도 박근혜’ 피켓을 흔들며 열광하는 군중 속에 야권의 알 만한 면면은 다 있었다. 민주노총은 횃불로, 언론은 무한경쟁으로 ‘촛불혁명’에 가세했다. 언론 보도에 좌·우, 진보·보수, 온·오프, 대․소 매체 구분은 없었다. 제각기 상상력 닿는 데까지 무한대의 보도에 매진했다. 특검은 언론의 요긴한 파트너였다. 흘려 주면 쓰고 보도하면 수사하는 패턴으로 공생했다.
국회 탄핵소추에는 집권당 의원 41명(32%)도 가담했다. 그 망동의 어처구니없음은 ‘문재인 시대’가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 만장일치 탄핵을 완성한 헌재 재판관 8명 중 절반은 박근혜가 천거했던 인물이다. 박근혜는 탐욕과 배반, 모함, 모욕을 총동원한 세력에 포박됐다.
이제 언론개혁이라고 한다. 정부 국회 법원 검찰에 이어 그들 식(式) 개혁의 완결 수순에 들어선 느낌이다. 가짜뉴스 방지를 앞세워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담은 6개 언론개혁법안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언론사와 포털, 유튜브를 겨냥해 SNS와 댓글까지 전방위적으로 대상을 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금도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보와 허위 왜곡 보도를 막겠다는 걸 나무랄 일도 아니다. 왜 언론개혁을 들고나왔을까를 의심하는 것이다. 언뜻 봐도 비판언론을 재갈 물리고 독자와 시청자, 유튜버 나아가 이용자들까지 거슬리기만 하면 숨통을 틀어막겠다는 속내가 보인다. 숫제 가짜뉴스 공장들까지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가짜뉴스 전문가 집단이 엄히 다스리기까지 하면 더 말해 뭣하겠는가.
헛말과 거짓말은 가짜뉴스 아닌가
아무리 가짜 세상이기로서니 누가 누구를 손보겠다는 건가.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만 해도 그렇지 그들은 가짜뉴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가짜뉴스의 원조이자 최대 수혜자라고 해서 틀리지 않는다. 여전히 허언(虛言)과 거짓말도 끊이지 않는다. 거짓말은 가짜뉴스가 아닌가.
검찰개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면 안다. 언론개혁의 예고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 가치와 정치 중립, 법치주의를 지키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평등하게 수사하겠다는 검찰총장 의지가 여권의 집중포화를 맞은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권력에 휘둘리지도,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던 주문은 그럼 뭔가.
“국민 모두의 대통령,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공정한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고,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고,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대통령 취임사 중 일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꿈꿨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쯤 언론은 가짜뉴스를 보도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에게 봄바람과 같이 따뜻하고 스스로에게 가을 서릿발과 같이 엄정하여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신영복이 썼고 청와대 비서실 방마다 걸어 놨다는 그 액자들은 아직 있는지 궁금하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 보유국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한지도 그렇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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