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평양작전 3년만에 살아나나..'홍길동 부대'가 뜬다
1950년 10월 19일. 인천상륙 작전으로 6ㆍ25전쟁의 흐름을 바꾼 유엔군은 쾌속으로 전진하는 가운데 국군 제1사단이 평양에 입성했다.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김일성과 북한 지휘부, 주력부대 대부분이 평양에서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거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양 후방에 공수부대를 떨어뜨려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지휘부를 사로잡는 작전을 구상했다. 덤으로 유엔군 포로 3000명을 구출하는 걸 노렸다.
김포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국 육군 제187 공수연대 전투단이 그해 10월 20일 수송기 123대에 나눠 타 평안남도 숙천과 순천에 강하했다. 숙천 공수작전이었다. 북한군은 난데없이 나타난 미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전과는 크지 않았다. 김일성은 멀리 도망간 상태였고, 북한군 주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숙천 공수작전은 한반도에서 공수 작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리고 71년이 지난 1월 1일. 한국 최초의 공수사단인 육군 제2 신속대응사단이 창설됐다. 이 부대는 두 발이나 차량이 아니라 헬기와 수송기로 이동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 부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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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바그다드 점령 미군처럼”
신속대응 사단의 아이디어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냈다. 그가 취임한 2017년 7월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기가 한반도에 짙게 드리웠떤 때다.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개전 20일 만에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점령한 사실에 주목했다.
송영무 전 장관은 유사시 공중에선 공정사단이, 지상에선 기동군단이, 해상에선 해병대가 동시에 공격해 평양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공세적 작전’을 짜놓으라고 국방부와 합참에 지시했다. 그래서 공정사단 창설 작업이 바로 이뤄졌다.
한국형 공정사단의 롤모델은 미국 육군의 제82 공수사단, 제101 공수사단, 제75 레인저 연대다. 82사단과 101사단은 미 육군의 제18 공수군단의 원투펀치다. 82사단은 수송기에서 뛰어내리는 낙하산 부대다. 101사단은 헬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 부대다.
75연대는 미 특수전사령부(SOCOM) 소속이지만, 편제는 일반 보병부대와 같다. 이 부대의 주요 임무는 치고 빠지는 비정규전이 아니라, 적의 공항이나 시설을 점령하는 정규전이다.
그러나….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때 힘을 받던 공세적 작전은 이제 북한을 자극한다며 눈칫밥을 먹게 됐다. 그래서 ‘입체 기동 작전’이라고 이름을 바꾼 뒤 국방개혁 2.0의 연구 과제로 남겨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공정사단이라는 명칭이 너무 공격적이며, 입체 기동 작전에 따라 만들 것도 아니기에 부대명이 ‘신속대응 사단’으로 바뀌었다”며 “창설 작업의 동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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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 작전 ‘2사단’ 전통 이어간다
남북관계의 변화에도 신속기동 사단은 여러 사항을 고려해 휴지통에 버려지지 않았다.
노도(怒濤)부대라고 불리는 제2 보병사단은 ‘메이커 사단’이다. 건군기부터 6ㆍ25전쟁 사이 만들어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9개 사단 중 하나다. 인천 상륙작전, 파로호 전투, 저격능선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등을 치렀다.
그런데 2사단이 국방개혁 2.0에 따라 사라질 운명에 놓이자, 군 안팎에서 반발이 컸다. 새로운 부대로 대체하더라도, 2사단의 역사를 이어갈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후방 지역을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부 예하 2개 특공여단은 전시 임무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단 한 명의 병력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국방개혁 2.0의 취지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였다.
그래서 당초 목표했던 공정사단은 아니더라도 신속대응 사단을 창설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또 현실적 어려움이 따랐다. 신속대응 사단을 미군 82사단처럼 낙하산 부대로 만들려면 수송기 전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그러나, 대형 수송기 도입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미군은 유사시 수송기를 빌려주기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군 당국은 미군 101사단과 같이 헬기로 공수하는 부대의 창설로 목표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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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대로 태어날까? 앞으로 준비하기 나름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국방개혁 2.0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신속대응 사단 창설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속대응사단 창설 준비단이 꾸려지고, 편제ㆍ교리ㆍ장비ㆍ인원ㆍ작전계획ㆍ훈련 등을 검토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 사단 창설식이 조용하게 열렸다.
막상 사단이 만들어졌지만, 신속대응 사단이 현재 가진 것은 거의 없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사단 본부에 지휘부를 비롯한 본부 병력이 있을 뿐이다. 장비는커녕 작전계획도 백지상태란다. 한마디로 ‘개문발차(開門發車ㆍ문이 열린 상태에서 차가 출발)’ 신세다.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부대를 창설하려면 최소 5년 전부터 예산을 마련하고 준비 작업을 거치는데, 신속대응 사단은 기본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지휘자만 있고 연주자는 단 한 명도 없는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방개혁 2.0으로 줄어든 별자리 한 개(사단장)를 지키려는 꼼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군 당국은 “급하게 준비했지만, 계획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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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로 점령·퇴로 차단 등 결정적 역할
신속대응 사단의 임무는 평시 후방지역에서의 테러, 재난 등 비전통 위협, 국지도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전시 임무는 미군과 협의해서 만들기로 했다.
신속대응 사단은 일단 기계화부대로만 이뤄진 ‘북진선봉’ 제7 기동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목을 미리 점령해 기동군단의 진로를 열어주고, 적의 증원을 차단하고, 퇴로를 끊는 것이다.
입체기동 작전에서의 공정사단과 같이 최단 시간 적지 중심 지역 깊숙이 침투한 뒤 지휘부를 점령하는 임무는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덧붙여질 가능성이 있다.
신속대응 사단은 정규전을 수행하는 공수부대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수부대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공수특전여단과 같은 특수부대뿐이었다. 특수부대는 소규모 팀으로 이뤄져 정찰ㆍ타격ㆍ첩보 등 정규전이 하기 어려운 특수 작전을 펴는 부대다.
신속대응 사단 예하 여단은 지금의 특공여단보다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 헬기로 강습하는 부대 위주로 꾸려지지만, 일부 는 낙하산 강하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포병ㆍ공병ㆍ정보통신ㆍ화생방ㆍ보급ㆍ수송ㆍ정비ㆍ의무 등 지원병력도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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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장포·드론·장갑차 들고 뛰어든다
신속대응 사단의 펀치도 당연히 세진다. 특공여단이나 공수특전여단은 기본적으로 소화기와 유탄발사기ㆍ기관총 등 지원화기가 전부였다. 빠르게 치고 빠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신속대응 사단은 적 후방에서 기계화부대와 같은 적 정규군과 교전을 벌이며 거점을 지켜낼 능력이 필요하다.
신속대응 사단은 3가지 히든카드를 갖추려 한다.
우선 소형 다연장포. KH178 105㎜ 곡사포는 현재 K105A1 자주포로 바뀌고 있다. 군 당국은 더 강한 화력을 쏟아붓는 데다 정밀타격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소형 다연장포가 신속대응 사단에 더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소형 다연장포는 한화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게 있다. K311 트럭에 70㎜ 로켓을 단 모델이다. 육군이 채택하지 않아 현재 사업이 중단됐다. 소형 다연장포는 고폭탄ㆍ열압력폭탄ㆍ유도 로켓 등 다양한 탄종을 쏠 수 있다. K311 트럭 대신 한국형 험비라 불리는 K151 신형전술차량을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히든카드는 공격용 드론이다.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있고, 하늘에 띄운 뒤 정찰을 하다 목표를 발견하면 돌진해 폭파하는 드론이다. 방위사업청은 민간 신기술을 이용해 공격용 드론을 개발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방사청이 목표한 공격용 드론은 미리 표적을 지정하면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타격하는 기능을 갖출 계획이다.
신속대응 사단은 독일의 비젤(Wiesel) 2와 같은 경장갑차도 보유하려고 한다. 독일 연방군 육군은 한국의 신속대응 사단과 비슷한 신속군 사단(DSK)이 있다. 이 부대의 비젤 2는 길이 4.78m, 높이 1.81m, 폭 1.87m, 무게 4.78t의 경장갑차다. 최대 속력은 시속 70㎞다.
비젤 2는 소총탄이나 파편을 간신히 막는 수준의 방어력을 갖췄다. 그러나, 수송 헬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게 강점이다. 2명의 승무원에 뒤 칸에 최대 4명까지 태울 수 있다. 방공ㆍ앰뷸런스ㆍ지휘ㆍ정찰 등 다양한 파생형이 있다. 기관총부터 대전차미사일,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 무장을 달 수 있다.
비젤 2는 각종 무장으로 선공을 날린 뒤 적의 공격을 빠르게 피할 수 있다. 경장갑차가 신속대응 사단의 히든펀치로 더할 나위 없다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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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도 대응하는 부대가 되어야
신속대응 사단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부대 창설을 마쳤다. 사실 미군이 아니면 이처럼 기동력과 공격력을 모두 갖춘 부대를 운용하는 게 쉽지 않다. 군대는 언제나 최악의 위기를 대비한다. 남북 관계에서 훈풍이 삭풍으로 바뀔 것이라 전망해도 무리수는 아니다. 어떤 상황에도 대응이 가능한 부대로 성장해야 할 필요성이다.
군 당국은 최근 국방백서를 펴내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면 누구라도 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신속대응 사단을 두려워하는 건 북한군만 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성장해야 한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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