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폭언·폭행 당하고 해고까지..'직장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6개월, 갑질은 여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6개월..피해는 그대로
인권위 "가해자 처벌규정 도입해야"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갑질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이 직장에서 괴롭힘이나 갑질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가 오히려 해고당하는 등 2차 피해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가해자 처벌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간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신고 236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은 절반에 가까운 117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중 회사나 고용노동청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사례는 5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고를 했더라도 회사가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12%(6건), 신고자가 해고 통보 등 불이익을 받았다는 응답은 30%(15건)를 차지했다. 신고자 10명 중 3명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피해 사례로는 따돌림·차별·보복이 63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당지시 60건, 모욕·명예훼손 58건, 폭행·폭언 5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만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 비율은 34.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0월 조사 결과(36%)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작지 않은 수치이다.
특히 괴롭힘 경험자 중 37.5%는 괴롭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에도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는 응답은 절반가량인 45.6%를 차지했다.
일각에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해 행위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과 징계 등의 조치를 회사가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는 점을 꼽는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갑질 피해 사례에 따르면, 서울의 한 구청 청소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인 A씨는 입사한 이후부터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업무처리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나이 먹고 이런 것도 못 해?" "당장 그만둬, 개XX야" 등의 폭언을 들었고, 공개적으로 욕설을 듣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맞는 일도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병원에서 우울·불안 증세 진단을 받았고, 회사에 상사에 대한 징계와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상사에게 '경위서 제출'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으며, 오히려 A씨에게 사직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도 가해자 처벌은커녕 피해자가 오히려 해고 통보 등 피해를 입게된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고, 회사가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달리 처벌할 방법이 없어 직장 내 괴롭힘을 실질적으로 예방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보호할 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강 모 씨는 "괴롭힘을 겪어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가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란 것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라며 "'무늬만 갑질금지법'에 그치지 않으려면 피해자에 대한 보호,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직장인 설문조사에서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85.4%가 동의 했으며, '회사의 조치 의무 불이행을 처벌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질문에도 80.2%가 동의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인권위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가해자 처벌 규정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인권위는 작년 7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3자에 의한 괴롭힘으로부터의 노동자 보호 ▲4명 이하 사업장에 대한 적용 확대 ▲행위자(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에 도입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의무화 등 4가지를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또한 지난달 20일 "(노동부에) 관련 규정을 도입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라며 "법 제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어, 정부의 진전된 조치와 국회의 조속한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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