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40억 퇴짜후 홀로 국산콩 지켰다..그 교수에 벌어진 일

진창일 2021. 2.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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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까지 온도 치솟아 속썩이던 보관시설부터 연구실 등 제안

“이제 후세대 연구자들도 걱정없이 우리 콩 연구에 뛰어들 길이 생긴 거죠.”

해외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수십억 원에 달하는 콩 종자 연구실적 매각 제안을 뿌리치고 홀로 한국 야생·토종 콩을 연구해왔던 정규화(68) 전남대학교 교수에게 국내 대기업과 지역 기업들로부터 연구 지원 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비를 들여 7000여 점이 넘는 종자를 보관하고 있지만, 습도 조절조차 어려워 언제 콩 종자가 죽을까 걱정하던 노(老)교수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여러 기업에서 콩 연구 지원 문의”

지난 10일 정규화 전남대학교 교수가 전남대 여수캠퍼스에 마련된 자신의 콩 종자 보관실에서 연구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30년 동안 7000여 점의 한국 야생·토종 콩을 보존해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정 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아직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국내 굴지의 콩 관련 대기업과 여수·순천 지역의 또 다른 기업에서 야생·토종 콩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외딴 섬, 깊은 산 곳곳을 떠돌며 7000여 점의 야생·토종 콩 종자를 모았다. 제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해 준 경남 진주시의 3600㎡(1100평) 규모 밭에서 매년 300여 개의 콩 종자를 심은 뒤 거둬들이고 사비를 들여 수집한 콩 종자를 보존 중이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세계 굴지의 종자 관련 다국적기업으로부터 그가 가진 아시아·한국의 콩 종자를 넘기면 해당 종자에서 나온 전 세계 매출액의 1%를 주기적으로 주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정 교수는 “40억원 정도 가치가 있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장사꾼이 아닌 연구자이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했다.

한국인이 많이 먹는 청양고추가 외국계 회사 소유 품종이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콩은 ‘주곡’(主穀)이기 때문에 양념인 고추보다 식량 주권과 더욱 직결돼 자본의 논리로 넘길 수 없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콩 종자 보관시설 등 제안”

정규화 전남대학교 교수가 지난 30년 동안 모은 7000여 점의 한국 야생·토종 콩 종자 보관실. 프리랜서 장정필

연구비 지원도 해외 비중이 크다. 정 교수는 공동연구 조건으로 홍콩 중문대학으로부터 연구비 6000만원, 한국 야생·토종 콩을 증식하는 조건으로 농촌진흥청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아 매년 콩밭을 일군다.

홍콩과 함께하는 한국 콩 연구과제 비중이 3분의 2 이상이기 때문에 미래에 일군 종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해 11월 중앙일보를 통해 정 교수의 연구가 알려진 뒤 국내 기업들로부터 지원 제의가 들어와 근심을 덜게 됐다.

정 교수는 “연구소 부지 위치나 지원 금액 등 조건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일부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제안을 보면 콩 종자 증식에 필요한 밭과 연구시설, 모아둔 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조건이 언급됐다”고 했다.


“진정성 있는 제안 받았다”

지난 11일 정규화 전남대학교 교수가 올해 수확한 콩 종자들을 비교하며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여러 기업이 제시한 지원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관계자 여럿이 만나 구체적인 조건을 논의할 수 상황이 마련되기 어려워 빠른 진척이 되진 않고 있지만, 정 교수는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고 한다.

정 교수의 한국 토종·야생 콩 종자 연구에 가장 시급한 시설 중 하나는 콩 종자 보관시설이다. 정 교수가 사비를 들여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에 마련한 콩 종자 보관시설이 지난해 여름 온도·습도 유지장치가 고장 나 40도까지 온도가 치솟았다. 콩 종자 보관 적정 온도는 약 4도, 습도는 30%다.

최근에는 경남 진주에 마련한 콩 종자 보관시설 습도가 50%까지 올라 애를 먹었다. 정 교수는 “온도가 40도까지 오르면 보관 종자 중 30%는 죽는다고 봐야 한다”며 “종자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기간도 약 5년인데 예산 한계 때문에 매년 300개밖에 심지 못하던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그가 온도·습도 걱정 없이 보관할 수 있는 시설에 더해 매년 1000~1500개의 콩 종자를 심고 거둘 수 있는 부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제안해 온 기업 중 일부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국제 공동연구도 진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논의되는 지원대로면 해외 유수의 연구소에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연구와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더 중요한 점은 지금 기반을 잘 닦아두면 후세대 연구자들이 어려운 야생·토종 콩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여수=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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