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파국 맞은 '마약우정'..참혹한 가방 시신 사건 전말

심석용 2021. 2.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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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유기한 혐의를 받는 A씨 등 2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동갑내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비대면이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 통하는 걸 느꼈다. 2018년부터 A(당시 19세)와 B는 직접 만나 일탈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 마약에 손을 댔다. 병원에서 처방받거나 지인을 통해 구한 마약 ‘펜타닐’ 성분의 진통제를 가열해 흡입하는 날이 점점 늘었다. A의 친구였던 C도 동참하면서 셋의 ‘마약 우정’은 더 돈독해졌다.

지난해 7월 우정에 위기가 찾아왔다. 생활고를 겪던 A는 자신들이 즐기던 방식으로 진통제 패치를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패치 1장당 30만원에 팔아 생활비에 보탤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엔 진통제를 잘 처방해주는 병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B가 진통제 처방이 수월한 병원을 소개해달라고 계속 조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A의 단골병원 의사들이 펜타닐을 자주 요구하는 B를 수상하게 여긴 것이다. 용도 외 사용을 의심했고 이 진통제를 더는 처방하지 않았다. 마약 투약은 물론 생계에 위협을 느끼게 된 A는 B에게 앙심을 품게 됐다. 비슷한 상황이던 C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약 집착으로 파국 맞은 ‘마약 우정’
지난해 7월 29일 오전 11시 이들은 서울 마포구 C의 음악연습실에 모였다. 여느 때처럼 마약을 투약하고 이야기를 하던 중 쌓인 앙금이 터졌다. 흥분한 상태에서 B가 던진 가위가 A의 발가락에 맞았다.

화가 난 A의 발길질을 시작으로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전개됐다. B는 청테이프로 묶인 채로 A와 C에게 7시간에 걸쳐 온몸을 구타당했다. A 등은 이날 다른 친구들이 연습실을 찾자 “이거 다 연기”라며 안심시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B는 숨졌다. 사인은 머리부위 둔력 손상이었다.

A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때렸는데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이 시간에 캐리어를 살 곳이 있나, 한국 뜰 거다, 밀항할지 월북할지 모르겠다”며 횡설수설 같은 말을 했다. 그들이 택한 건 시신유기였다. 다음날 오전 훔친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넣은 뒤 인천 중구 잠진도의 컨테이너 뒤 공터에 유기했다.

도피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신을 발견한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이들은 자수했고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재범 가능성 있다고 본 檢
재판과정에서 A는 범행 당시 스테인리스 봉이 아닌 플라스틱 빗자루를 썼고 머리는 때린 적이 없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C도 “어깨와 가슴 등을 밀치듯 때린 적은 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또 “A가 때릴 때 나는 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고도 했다.

검찰은 둘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구형하고 형 집행종료 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청구했다. 살인을 다시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A 등은 폭행한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피해자를 가장해 유족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法,중형 선고…위치추적은 기각

인천지방법원 전경. 심석용기자

법원은 살인의 고의가 없다는 A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의 범행을 ‘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표극창 부장판사)는 A와 C에게 각각 징역 18년과 10년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존귀한 가치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위치추적장치 부착 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들이 다시 살인할 것이라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표 재판장은 ▶성인 재범위험성 평가 결과, A가 높은 수준이 아닌 점 ▶범행 경위를 고려해볼 때 계획 살인으로 보이지 않는 점 ▶상당 기간 징역형 선고로 재범을 막고 교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선고 후 B의 아버지는 “사람을 죽였는데 형량이 그렇냐. 내 아들은 60년 이상 더 살 수 있었다. 가족들의 고통은 모르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재판부는 “유족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법과 양심에 따라 적절한 형을 선고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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