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의 결혼식은 이렇습니다
[이설아 기자]
▲ 1990년대생 부부답게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모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 |
ⓒ 법원 |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결혼을 했다는 글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우리는 왜 관습을 타파하는 결혼식을 하고자 했는지 설명하는 '이상결혼' 시리즈를 5회차에 걸쳐 연재해 보고자 한다. (관련 기사: 혼인신고서 작성하다 깜짝... 우리 부부가 '비정상'인가요?)
이 이상결혼은 '이상한' 결혼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이상적인' 결혼일 수도 있다. "이렇게 결혼하는 부부도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통해 집안과 집안 간 만남이라는 결혼이 그저 주체적인 '개인 간 만남'으로 거듭나길, 누군가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결혼식의 의미
우리는 결혼을 '온택트'(Ontact·온라인을 통해 대면하는 방식)로 진행하기로 했다. 주된 생각은 결혼이라는 관례가 '생각을 나누는 과정'으로 재정립됐으면 하고 소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 결혼은 신랑 혹은 신부 한 측의 손님으로 결혼식을 가게 되면 지인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박수만 치다 돌아온다. 이러한 결혼식이 과연 '대면'의 본질을 잘 살리는 것인가? 오히려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된 까닭과 서로가 가진 가치관 등을 주변에 소개하는 것이 더욱 더 '대면'적인 것 아닐까?
2020년 12월 2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구청 문이 열리자마자'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우리는 이로부터 정확히 180일 뒤인 2021년 5월 30일, 화려한 결혼식장을 대관하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행위가 아닌 유튜브로 '시민결합선언식'을 생중계하기로 했다.
다음은 2021년 1월 4일 오후 9시, 결혼식까지 146일이 남은 상황에서 우리 부부와 우리의 친구인 '진구' 셋이서 나눈 대담이다.
▲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통해 내가 결혼할 사람과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교류했는지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
ⓒ unsplash |
진구: "우선 자기 소개를 해줘."
동현: "나는 1991년생 동현이야. 대학생 때 학생자치단체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가치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그러다가 25살에 문화예술인들의 기본소득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로 첫 창업을 하면서 스타트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인도 시장의 MZ세대를 위한 큐레이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어. '평범성'에서 조금은 거리가 먼 선택지들을 늘 사랑해왔어."
설아: "나는 1994년생 설아고, 학내에서 발생한 일종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비판의식을 키우다 정치인이라는 드문 진로를 희망하게 됐어. 20살 이후 독립해 살면서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메시지를 내는 일'을 하고 있어. 가장 최근에는 '뮬란 보이콧'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는 일을 해왔어."
진구: "둘이 결혼을 도대체 왜 결심한 거야? 둘 다 평소 알고 지냈지만, 조금 갑작스러웠어."
동현: "결혼을 하면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이 나오잖아(웃음). 나는 평소 결혼상대로 서로를 둘러싼 소득수준이나 학력과 지위, 가정형편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아니라 '이 사회를 같이 살아나갈 수 있는 존재로서 충분한 상대방'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 사람을 봤을 때 나와 지향점을 교류할 수 있고,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이게 결혼의 가장 큰 이유야."
진구: "그러면 '온택트 시민결합선언식'이라는 형식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이유는 뭐야?"
동현: "이 결혼식을 통해서 내가 결혼할 사람과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교류했는지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어. 내가 재정의하고 싶은 결혼, 그리고 내가 재정의하고 싶은 '보통시민'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진구: "보통시민?"
설아: "사회가 말하는 보통시민은 결국 '정상가정을 부양 중이며 서울에 자가를 보유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에 신경을 쓰는 40대 남성'이란 말이지. 하지만 이들도 극소수란 말이야. 그렇다면 결혼은 과연 이와 같은 '보통시민'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취업도, 노후도 마찬가지야. 보통시민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동현: "우리가 코로나라는 고립된 상황에서 결혼을 하게 됐잖아. 그러면서 '보통시민'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거 같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암암리에 묵혀져 있던 갈등과 차별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들부터 줄줄이 끊어져 나가더라고. 예전엔 보통시민에 배제된 사람들도 본인이 배제된 줄 모르고 살았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아.
단적으로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가 난리 났을 때,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식당이나 상점, 심지어 병원들도 출입을 거부 당했어. 그런데 정작 지금 수도권의 코로나 지역감염이 이렇게 심해진 상황에서 수도권 출신이란 이유로 배척당하진 않고 있거든. 누가 보통시민에서 배제되어왔는지, 보통시민의 의미를 확장하고 사람들과 연대, 나아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
설아: "또 다른 관점에서도 이야기 할 수 있어. 우리 사회는 결혼은 많은 것들이 갖춰진 상태여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무엇인가 결핍이 됐다면 결혼할 수 없다고 규정해버리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결핍된 존재로 바라봐. 한국에서 규정하는 (결핍되지 않은) 보통시민이 되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지. 이게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더라고.
우리가 그럼 결혼을 하면서 보통시민에 속한 것인가? 그 프레임에 대해 반발을 하고 싶은 거지. 보통시민이 되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동현: "요즘 200충(월급 200만 원 받는 노동자), 300충(월급 300만 원 받는 노동자)은 애 낳는 것이 죄악이라고 말하더라. 그런데 300충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 공동체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우리가 보통시민에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지금이야말로 보통시민이라는 말을 되돌아볼 때가 아닐까."
진구: "사회가 그런 보통시민성을 강요한다는 것에 대해 예시를 좀 더 들어줘."
▲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2020년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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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 "지난해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때도 공정이니 뭐니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정작 문재인 청년층 지지율은 달라지지 않았어. '공시' 준비 계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 부양가족 한 명이 1년 이상 공부만 할 수 있는 형편의 가정이 그렇게 흔하겠어? 과연 '인국공'에 분노하는 청년이 정말 보통시민인가 의문이 드는 것이지."
동현: "2018년 포항 지진 때 서울에 있었어. 여기선 버스가 흔들린다 정도였지만, 고향 친구들은 대피를 하느냐 마느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어. 심지어 이동권이 제한되는 약자를 가족으로 둔 친구들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되나 고민하면서 계속 찾아오는 여진에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웠어.
집들은 아예 건물 외벽이 갈라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가 돼버렸지. 그런데 서울과 지방 간 온도 차이가 극명했어. 서울에서 공중파 뉴스를 보면 지진이 났다는 단신만 나오고 끝이더라고. 지금은 바뀐 것 같은데, 예전에는 서울에 눈 내릴 때만 카카오톡 대화창에 눈이 내렸어. '이게 수도권 중심주의인가?' 싶더라고.
지방 청년들은 지방 국립대 나와서 적당히 세후 월 200만 원 정도 꽂히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해. 월 250만 원이면 신의 직장이라고 할 정도고. 그런데 서울은 다들 부동산을 이야기하고, '250만 원에 사람이 어떻게 사냐, 애는 어떻게 기르냐'고 말해. 보통시민도 수도권 중심으로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지."
설아: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도 그래. 나랑 1994년생으로 동갑인데, 그가 죽었을 때 평범한 청년이라는 이야기는 없이 하청노동자의 죽음 문제로만 비화되더라고. 그게 이상했어. 그 또한 '그냥 청년' 아니었던가? 왜 김용균의 죽음은 평범한 청년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걸까?"
동현: "급작스러운 죽음은 조명이라도 받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산재로 천천히 죽어가는 수많은 청년의 이야기는 쉽게 주목받기 어려워. '반올림'도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걸."
진구: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어. 둘은 그러면 사회의 보통시민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거잖아. 그런데 보통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결혼은 왜 한 거야? 동거 등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설아: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동거인에 대한 법적 보장장치를 얻기 위해서야. 보통시민에 대한 관례로서의 결혼에 대해 비판적이더라도, 굳이 법적인 보장을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또 결혼으로 보통시민에 포함된 사람들이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유의미하지 않나 생각했어. 서울대 학생이 학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때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듯이.
보통 결혼이라는 관문을 전후로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들 하잖아. 그게 거북하게 들리더라고. 거기서 문제의식이 시작했어. 나는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똑같거든. 가치관이 크게 변화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의 관문이란 무엇인가, 관문을 넘지 못한 사람은 무엇인가 고민한 끝에 '관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의미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 이를 말하기 위해 결혼식을 열게 된 것이고."
진구: "결과적으로 이 결혼식은 '보통시민에 대한 재정의'를 위한 것이구나."
설아: "맞아. 다음에는 '비정상시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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