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반란 이끈 그들끼리 살해위협..'게임스톱 대첩' 그 이후

홍지유 2021. 2. 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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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한 회사는 단연코 게임스톱이다. ‘한물간 게임 유통업체’이던 게임스톱은 헤지펀드와의 공매도 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며 월가를 뒤흔든 반란을 이끌었다. 그 덕에 지난달 22일부터 3거래일 연속으로 주식 시장에서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을 뛰어넘는 거래량을 기록했다. 18달러였던 주가는 불과 3주 만에 483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여만인 지난 9일 게임스톱 주가는 50달러대로 곤두박질했다. 망해가던 회사에서 '개미의 반란'을 상징하는 주식으로 우뚝 선 뒤 날개 없는 추락에 빠진 게임스톱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 게임스톱의 운명을 바꾼 순간들을 되짚어봤다.

게임스톱. [로이터]



①라이언 코언, 게임스톱 주식 싹쓸이
게임스톱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여름부터다. 미국의 온라인 반려동물용품 쇼핑몰인 ‘츄이’의 최고경영자(CEO) 라이언 코언이 지난해 8월 게임스탑 주식 900만주를 샀다고 밝히면서다. 4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한 달 만에 10달러가 됐다.

대주주가 된 코언은 지난달 다시 한번 주가에 불을 지폈다. 코언이 게임스톱의 이사진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오프라인 점포를 온라인 유통점으로 바꾸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코언의 말은 주가 상승 기대감의 불쏘시개가 됐다. 개미들이 게임스톱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도 판에 뛰어들었다. 개인투자자들이 망해가는 기업에 거품을 일으켰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미의 ‘사자’에 ‘팔자’로 대응하며 유통물량의 144%를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법)로 확보했다.

‘개미들의 성지’로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SB)'를 중심으로 분노한 개인투자자가 결집했다. 현물 주식뿐만 아니라 파생상품시장에서 콜옵션(만기일 이전에 미리 행사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권리)까지 사들이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개미와 헤지펀드, 한쪽은 죽어야만 하는 제로섬 게임의 막이 올랐다.

게임스톱 주가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뉴욕증권거래소]



②일론 머스크 “게임스통크!”

트위터 한 줄에 게임스톱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CEO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개미들의 성지’로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SB)'의 링크를 올렸다.

그러면서 '게임스통크(gamestonk)'라는 한 줄도 덧붙였다. 스통크(stonk)는 주식을 뜻하는 'stock'의 은어이자 맹폭격이란 의미다. 게임스톱과 맹폭격을 합성한 신조어가 WSB와 개미에 대한 응원 메시지로 여겨지며 주가는 폭등했다. 정규장 마감 이후 머스크가 트윗을 올렸지만 이날 게임스톱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60% 이상 급등하며 300달러를 넘어섰다.

머스크는 지난달 28일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소유하지 않은 집이나 자동차는 팔 수 없지만 소유하지 않은 주식은 팔 수 있다”며 “공매도는 사기”라고 썼다. 공매도와의 일전에 나선 개미들은 머스크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WSB에는 각종 히어로 영화 포스터에 머스크의 얼굴을 합성한 '밈(meme·사진이나 동영상을 재밌게 합성한 것)'이 퍼졌다.

미국 온라인주식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WSB)에 올라온 일론 머스크의 밈(meme). 슈퍼 히어로 영화 '어벤저스' 포스터에 머스크의 얼굴을 합성했다. [WSB]



③헤지펀드의 백기 투항
“존버”(끝까지 버티기)를 외치던 개미들이 승리했다. 지난달 27일 헤지펀드인 멜빈 캐피털이 37억 달러(4조 1325억원)가 넘는 손실을 내고 게임스톱에 대한 공매도 계약을 청산했다. 멜빈 캐피털이 게임스톱에서 손을 뗀 다음 날 주가는 장중 483달러까지 올랐다. 금융분석업체 S3 파트너스에 따르면 멜빈 캐피털을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탑 공매도로 본 손실 규모는 50억 달러(약 5조 5845억원)가 넘는다.

헤지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내며 항복 선언을 한 건 주가가 더 오르기 전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공매도에 나서면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주식을 사들여 갚아야 한다. 하지만 주가가 치솟는 탓에 상황이 반대로 돌아간 것이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는 손실을 줄이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주식을 사들여 공매도 계약을 끝내야 한다. '공매도 쥐어짜기(쇼트 스퀴즈)'에 몰린 것이다. 개인의 집단 매수세에 헤지펀드가 공매도 계약을 청산하기 위해 뿌린 돈까지 가세하면서 게임스톱의 주가에는 제대로 불이 붙었다.

미국 무료 증권트레이딩 플랫폼 로빈후드


④‘구매(BUY)’ 버튼 없앤 로빈후드
개선 장군처럼 득의양양하던 개미의 뒤통수를 친 건 '개미들의 영웅'이던 로빈후드다. 지난달 28일 미국 주식앱 로빈후드가 게임스톱의 매수를 제한하며 주가가 폭락했다. 매수 버튼을 아예 없애버렸다.

게임스톱 주가 폭등으로 금융 당국의 증거금 요구 액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거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며 로빈후드는 해명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주문 정보를 헤지펀드에게 팔아 돈을 버는 로빈후드가 헤지펀드의 편을 든 것이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혹은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다. 오는 18일 미 하원에서는 로빈후드의 거래 중지 조치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다. 일부 투자자는 로빈후드의 자의적 거래 제한 조치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집단소송을 걸었다. 청문회와 소송 과정에서 로빈후드의 해명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로빈후드 공동창업자인 바이주 바트(왼쪽)와 블라디미르 테네브.



⑤“몰래 영화화 추진했다”…WSB 내분
로빈후드 사태 이후 게임스톱 주가는 고전하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게임스톱 종가는 50달러를 기록했다. 한 달 전의 18달러보다는 높지만 장중 최고가(483달러)에서 90%가 증발했다.

주가가 급격하게 주저앉자 공매도대첩을 이끌었던 WSB 운영자 사이에서 자중지란도 일었다. 넷플릭스가 게임스톱 사태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싸움의 불씨가 됐다. 일부 WSB 운영자들이 사건의 영화화를 추진하자 이 과정에서 소외된 다른 운영자가 “개인투자자 전체가 이룬 성과를 왜 특정 집단이 독식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영화 제작을 추진한 이들은 “수익을 자선사업에 기부하려 했다”고 주장했지만 상대방의 분노를 잠재우진 못했다. 영화화를 몰랐던 측은 이를 추진한 쪽에 살해 위협까지 가했다. 헤지펀드를 상대로 했던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반대 운동이 일부 WSB 운영자들의 권력 싸움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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