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이 우울증·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이유
[김종성 기자]
최근에는 철종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 많았다. 14일 종방되는 tvN <철인왕후>에서는 철종(김정현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9일 종영된 KBS2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은 시대 배경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김병근(손병호 분)이라는 세도가문 권력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드라마 배경이 철종시대임을 간접적으로 노출시켰다.
나이가 어리거나 기반이 약한 왕을 세워놓고 외척(왕실 사돈)들이 국정을 농단한 세도정치시대에 안동 김씨 가문의 경우에는 3대가 대를 이어 국정 운영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안동 김씨 권력자들의 항렬은 순(淳)-근(根)-병(炳) 순이었다. 김조순-김좌근-김병기가 3대가 각각의 항렬을 대표했다.
드라마 <암행어사>는 김병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시대가 철종시대 후반기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 황동주가 임금을 연기했다. 철종시대를 다룬 드라마이므로 배우 황동주가 연기한 역할은 철종이 된다.
▲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 tvN |
사극에서 보여준 철종 이미지
세 사극에서 나타난 철종의 이미지는 사료(역사 기록물) 속의 철종에 비교적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나 소설에 의해 주로 형성된, 까막눈에다가 안동 김씨에 억눌리기만 하는 왜곡된 철종의 이미지에서 많이 탈피한 편이다.
기존의 철종 이미지를 오로지 영화나 소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영화나 소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역사가들이 매스컴에 기고한 일부 글들도 '까막눈 강화도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의 세 사극은 그런 경향에서 상당부분 탈피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까막눈 강화도령' 이미지를 배제한 점이 인상적이다. 헌종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난 뒤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불려간 만 18세의 철종은 왕실 어른과 대신들 앞에서 겸양의 표시로 "<통감> 2권과 <소학> 1·2권을 읽었지만, 근년에는 읽은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철종은 배운 게 없었다'는 주장을 펴는 역사 집필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세 사극은 전혀 다른 철종을 보여줬다. <바람과 구름과 비>와 <암행어사>의 철종은 '까막눈 강화도령'과 거리가 멀었고, <철인왕후>의 철종은 책과 친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19세기 후반을 풍미한 지식인인 면암 최익현이 과거 시험장에서 목격한 내용이 들어 있는 <면암선생문집> 연보 편에 따르면, 만 24세 때인 1855년 당시의 철종은 수험생들에게 구술시험 문제를 직접 출제하고 채점까지 하는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성균관 유생들만 특별히 응시한 이 시험에서 철종은 응시자들의 답변을 듣고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지식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점은, 머지않아 조선 사상계를 주도할 최익현을 그 시험의 장원급제자로 발탁했다는 사실이다. 임금이 되던 18세 때까지 까막눈이었다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24세 때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최익현의 답변이나 다른 유생들의 답변이나 다 비슷하게 들렸을 것이다. 최익현의 답변을 듣고 감탄사를 발하며 장원급제를 부여했다는 것은 철종이 유생들을 평가할 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근의 세 사극은 철종을 이 정도로까지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는 묘사했다.
지적 능력에 이어 최근 사극에서 조명된 또 다른 측면은 철종이 세도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맞서려 했다는 점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의 철종은 개혁 성향을 띤 최천중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으로, <암행어사> 속의 임금은 어사 파견을 통해 김병근의 기반을 직간접적으로 위축시키는 방법으로, <철인왕후>의 철종은 비밀 조직을 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세도가문의 권세에 도전했다.
그 같은 드라마 장면들은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실제 사실에 부합한다. 철종은 전정·군정·환정(환곡)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과도한 납세와 수탈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자기 가족처럼 안타까워했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방 수령들의 이름을 자기 침실에 적어놓았다며 경고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당시의 지방수령 상당수는 세도가문과 연계돼 있었다. 철종의 경고는 세도가문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안동 김씨는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억눌렀다.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철종은 당연히 사도세자 편이기는 하지만,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한 홍인한을 사면시키느라 안동 김씨와 충돌했다. 철종이 그렇게 한 것은 홍인한을 좋게 봤기 때문이 아니었다. 안동 김씨의 기를 꺾어볼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철종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세도가문을 상대할 힘이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이 세도가문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됐다는 점도 알고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철인왕후>나 <암행어사>에서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맞서지는 못했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처럼 다소 소극적으로 맞서는 데 그쳤을 뿐이다.
힘들었던 철종의 내면세계
한편, 세 사극은 철종의 실제 이미지에 어느 정도 근접하기는 했지만, 시대 상황이나 철종의 내면 심리와 무관치 않은 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철인왕후>의 철종은 꽤 밝은 피부 이미지 때문에 내면 심리와 건강 상태를 함께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철종의 건강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이해웅·김훈 동의대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철종의 질병에 관한 고찰'(<한국 의사학지> 제25권 제2호)이나 한의사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에 따르면, 과도한 고민과 우울증 등으로 인한 '만성 소화불량'과 함께 자녀 출산 및 부부관계를 위한 '지나친 강장제 복용'이 철종의 건강을 반영하는 최대 특징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췄고 서민경제 파탄을 아파했을 정도의 공감 능력을 가졌지만, 그는 세도가문의 위세에 눌려 뜻을 제대로 펼 수 없었다. 그가 과도한 고민과 우울증으로 인한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강장제를 과도 복용한 것이 그의 뜻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날 경우에 정치적으로 손실을 입는 쪽은 안동 김씨였다.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뒤에 안동 김씨의 세도가 막을 내린 사실이 그 점을 웅변한다. 그가 강장제를 지나치게 복용한 사정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장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는 속에서 철종은 철인왕후를 비롯한 여성 8명과 결혼해 딸 여섯과 아들 다섯을 얻었다. 하지만 비교적 오래 생존한 자녀는 영혜옹주뿐이다. 이 옹주는 13세까지 살았다. 이 옹주가 죽기 직전에 결혼한 남자가 갑신정변 때 김옥균과 함께 거사를 일으킨 박영효다.
철종의 건강은 조선 민중의 삶이 극단으로 내몰리는 상태를 지켜본 그의 내면을 반영할 만한 단서다. 마음으로는 백성과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힘이 없어 그러지 못해 속을 끓여야 했던 그의 아픔을 보여줄 만하다. 세도가문의 이해관계 때문에 왕자 출산 문제를 고심해야 했던 그의 스트레스도 반영할 만하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의 건강이 최근 사극들에서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철종을 다룬 최근의 세 사극은 그의 지적 측면 및 세도가문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하게 묘사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시대를 이해하는 도움이 될 만한 그의 내면 심리나 건강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숙제를 남기는 데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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