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심판 어떤 선택할까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헌법재판소가 국내 첫 법관 탄핵 사건인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헌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지난해 5월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여당의 탄핵 추진 상황을 고려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헌재가 언제 최종 결정을 선고할지,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정치권은 물론 김 대법원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판사 출신 아닌 이석태 재판관 주심으로… 민변 회장·참여연대 대표 거쳐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4일 사건을 접수한 헌재는 2015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석태 헌법재판관(68·사법연수원 14기)을 주심 재판관으로 지정하고, 피청구인인 임 부장판사와 청구인 양측에 접수통지·사실조회를 발신하는 등 심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이 재판관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진보 성향의 변호사 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회장을 역임했고, 2011년부터 3년 동안 역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민변과 참여연대 두 단체는 모두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을 주장해왔다.
게다가 이 재판관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3년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을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재판관이 9명의 헌법재판관 중 유일하게 판사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주심 선정 과정에서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임 부장판사 입장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직접 지명한 인물인데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에 목소리를 높여온 단체 출신이라는 점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각하·기각·파면 모든 가능성 열려 있어… 28일 임 부장판사 퇴직 전 결정 나오긴 어려울 듯법관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은 임 부장판사는 오는 28일 임기가 만료돼 퇴임한다.
헌재가 그 전에 서둘러 심리를 종료하고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에 따라 헌재의 이번 탄핵심판 사건 주문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헌재의 일반적인 심판절차를 정한 헌재법 제38조(심판기간)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언상으로는 강제력이 있는 강행규정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무상 심판기간에 관한 위 규정은 훈시규정으로 해석되고 있어 실제 6개월을 훨씬 지나도록 심리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첫 번째 가능성 있는 주문은 ‘각하’ 결정이다.
통상적인 심판기간을 고려할 때 28일까지 헌재가 종국 결정을 내리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임 부장판사가 이미 퇴임한 이후에는 헌재가 탄핵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어차피 ‘판사 임성근을 파면한다’는 탄핵 인용 결정 주문을 낼 수가 없는 만큼 심판의 이익이 없어 ‘각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다만 이 경우 헌재가 ‘사법권 독립’이라는 중요한 헌법상 가치를 수호하는데 너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야당이 가장 바라는 결과로 여당이 실익도 없는 탄핵소추를 법원을 압박하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수는 헌재가 어쩔 수 없이 ‘각하’ 주문을 내면서 결정이유에서 탄핵소추 사유가 된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등 행위의 사법권 독립 침해, 재판 침해 등 위헌성을 지적할 가능성이다.
헌재는 헌법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쟁점이 포함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공권력의 기본권 침해를 인정하더라도 헌법소원을 청구한 청구인의 침해당한 기본권이 구제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주관적 권리보호이익은 없으나 객관적인 권리보호이익’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본안심판을 거쳐 헌재의 입장을 결정으로 남긴 적이 있다.
임 부장판사는 정치적으로 예민했던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결과를 미리 보고받고 판결이유에 특정한 내용을 명시할 것을 권유하거나,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유명 프로야구 선구들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하려는 판사를 회유해 벌금형(약식명령)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결정이유에서 이 같은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였음을 지적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법관을 탄핵할만한 중대한 헌법위반이라고 명시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헌재 결정의 기속력이 주문 이외에 결정이유, 특히 중요한 결정이유에까지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이 결정문에 담길 경우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여당은 물론,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한 김 대법원장도 단순한 정치적 목적의 행위가 아니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헌재가 임 부장판사가 퇴직하는 28일 전에 신속하게 변론 등 절차를 마무리한 뒤 인용(파면)이나 기각 등 종국결정을 선고할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 제62조의2(피청구인에 대한 신문) 1항은 탄핵소추를 당한 피청구인이 변론기일에 출석한 경우 재판장이 신문하거나 소추위원 또는 피청구인의 대리인에게 신문할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두 번의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한 바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사건접수일로부터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92일 만에 종국결정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 사건에 비해서는 탄핵소추 사유가 단순해 심리기간이 상대적으로 덜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임 부장판사 측이 막강한 변호인단을 구성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름 안에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탄핵소추사유 ‘3건의 재판 개입’… ‘중대한 법위반’ 인정될까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서 “피소추자는 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사건 판결문의 양형이유를 수정하라는 취지의 언급을 함으로써, 계속 중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불가변경력이 있는 판결문 원본의 수정을 요청하는 등 재판관여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헌법상 국민주권주의(헌법 제1조), 직업공무원제도(헌법 제7조), 적법절차원칙(헌법 제12조), 법원의 사법권 행사(헌법 제101조), 법관의 독립(헌법 제103조) 조항 및 형사소송법상 재판의 불가변경력(형사소송법 제38조) 조항을 위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의원 등은 “재판업무는 사법행정사무가 아니라 당해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에 속하는 것이므로,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업무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구체적 지시를 하거나, 특정한 방향이나 방법으로 직무를 처리하도록 요구 내지 요청, 권고하는 것은 직무감독권의 범위를 벗어나는 재판관여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임 부장판사는 모두 3건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보도를 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재판부의 판결 방향을 미리 파악한 뒤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판결이유에서 꼭 박 전 대통령이 정윤회씨를 만났다는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밝혀줄 것을 지시하는 등 개입한 혐의다.
임 부장판사는 또 2016년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오승환과 임창용 두 선수의 사건을 담당 판사가 정식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하자,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주변에 있는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는 게 좋겠다”고 압박해 약식명령으로 종결하도록 한 혐의도 있다.
세 번째는 쌍용차 집회에서 경찰과 질서유지선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남대문서 경비과장의 팔을 잡고 20m를 끌고 가 체포치상 혐의로 기소된 4명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형사공보관으로부터 판결문 내용을 보고받고 판결문 등록과 설명자료 배포를 보류시킨 뒤 담당 재판부에 양형 이유 중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표현들이 있으니 톤 다운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는 것. 이후 담당 재판부는 실제 판결문 원문에 있던 양형이유 중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내용이나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 속 피고인들의 행동과 표정에는 피해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적 태도가 나타나 있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임 부장판사의 이 같은 행위들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충분한 건 사실이다.
다만 탄핵심판이 인용되기 위한 기준으로 헌재가 제시한 ‘중대한 법위반’에 해당될지가 관건이다.
헌재는 2004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실정법(공직선거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의 ‘중대한 법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헌재법을 문리적으로 해석하면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파면결정을 해야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는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헌재법 제53조 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임 부장판사는 형사재판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 징계위원회에서는 단지 견책의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견책은 정직이나 감봉보다도 훨씬 약한 수위의 징계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를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판단할지, 또 법관을 파면시킬 만큼 헌법 내지 법률의 ‘중대한 위반’으로 볼 것인지는 현 단계에서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명령·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과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 등을 둘러싸고 법원과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는 헌재가 이번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을 통해 정치적 사법작용을 담당하는 헌재의 위상과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드러낼지도 관전 포인트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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