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면 살해당한다, 내 집은 인천공항 43번 게이트"
“이달 16일은 제가 공항에서 노숙한지 1년째 되는 날입니다.”
아프리카 난민 A씨의 얘기다. 그는 올해 설 명절을 공항에서 보낸다. 그의 집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43번 게이트 앞 소파 위다. 지난해 2월 16일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인천국제공항에 환승객 자격으로 입국한 A씨는 1년째 인천공항에서 살고 있다. 그는 혼자다. 고향에서 정치적 박해로 지인 15명이 사망하면서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같이 살던 남동생과 5명의 자녀와도 현재는 연락이 끊긴 상태다.
━
난민심사 '신청’도 하지 못해 1년째 공항생활 중
A씨가 환승 구역을 1년째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난민 신청을 할 수 없어서다.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심사서는 입국 심사를 받을 때 제출할 수 있다. A씨는 한국을 '경유'하는 동남아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왔다. 이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는 A씨의 난민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A씨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인권단체가 나섰다. 이 단체는 난민 심사 접수 거부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6월 인천지법에서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입국심사대'라는 특정 장소로 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묵살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법무부가 항소했고, 2심이 진행되면서 A씨의 공항 생활은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10일 A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현재 정확히 공항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나.
"2020년 2월 16일 서울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당시의 환승센터 내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43번 게이트 근처의 공항 의자에서 목 베개와 몇 벌의 옷과 배낭을 두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Q. 1년의 공항 생활, 어떻게 버티고 있나.
"최근엔 추위로 체력이 떨어져 복부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추워서 잠도 잘못 자는 상태죠. 공항 생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영향으로 더 악화했습니다. 코로나19로 샤워실이 닫혀서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에서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최대한 피해를 안 끼치는 선에서 씻고 있습니다."
━
“본국으로 돌아가면 전 살해당할 겁니다”
A씨는 공익변호인단의 모금을 통해 숙식을 지원받고 있다. A씨의 변호를 맡은 사단법인 두루의 이한재 공익변호사는 “접견 시에 생필품들을 모두 다 가지고 갈 수 없어 모금액을 전달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 A씨가 오랜 공항 생활에 몸이 너무 안 좋다고 얘기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공항 노숙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졌지만,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Q. 생필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
"공익 변호인단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지원해주고 샴푸, 비누, 약품, 방역 마스크와 같은 생필품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공항 내에선 음식이 너무 비싸서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밀가루(주식)가 필요해요."
Q.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한국 정부에서 저의 고통을 봐주고 도와주길 간청합니다. 저는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살해당할 겁니다.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제 쌍둥이 동생을 죽였어요. 5명의 제 아이들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살아있다면 감옥에 있거나, 아니면 죽었을 겁니다."
━
난민 지원 15배 이상 늘렸다지만 사각지대 여전
2012년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 매년 세계 각지의 난민이 한국을 찾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G20 정상회의와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이 5년간 난민 지원 규모를 15배 확대했고, 앞으로도 전 세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19년 한국에서 1만5452건의 난민 신청 가운데 79명에게만 난민 지위가 부여됐다. 난민 인정률은 0.4%에 불과하다.
법무부의 대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변호사는 "환승객이라고 난민신청 접수조차 거부하는 것은 한국뿐"이라며 "그동안 법무부 측에서도 환승으로 입국한 난민에 대해서 주먹구구식 대처를 해온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A씨는 난민인지 아닌지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한 상황”이라며 “법에 명시된 절차가 보장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마존도 겁낸 김범석의 '10년꿈'…쿠팡, 뉴욕증시 상장한다
- 남미 마약왕이 남긴 골칫거리…마을 쏘다니는 '1.8t 괴물'
- "명절 선물도 정치적이냐" 소리도 들은 文선물 수취인 보니
- 허리둘레 남성 35, 여성 31인치…이 숫자 넘기면 '이 병' 의심
- 뉴욕 사교계 흔든 가짜 상속녀…가석방뒤 진짜 돈방석 앉을판
- 연예인 되고픈 관종이었나···"엄마가 누드 유포" 딸의 반전(영상)
- 60세 어린 레이디가가와 앨범…미국 울린 베넷 치매 투병기
- "화웨이 빈자리 잡아라" 중저가폰도 5G·고성능 카메라 단다
- 中실험실 4시간, 시장 1시간 조사뒤 여긴 아니라는 WHO
- [이코노미스트] 저축 월 30만원도 안한다…최악의 고용률, 20대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