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물쇠 달린 문'이 간절한 사람들

김수진 2021. 2. 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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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더욱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캐나다 노숙인들

[김수진 기자]

 '집콕' 자료사진.
ⓒ Pixabay
2020년처럼 신조어가 단기간에 급증한 해가 또 있을까. 집에서만 지냄을 의미하는 '집콕'에서부터, 홈(home)과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합쳐 집에서 노는 종족이란 뜻의 '홈루덴스족', 경기장에서 직접 스포츠를 관람하는 '직관'에 '집'을 결합해 '집관' 그리고 '홈트(홈트레이닝)' '홈캠핑'까지. 집과 관련한 신조어만 해도 수없이 많다.

강제집콕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견뎌보고자 사람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400번을 저어야 만들어지는 달고나 커피를 시작으로, 무려 1000번을 저어 만드는 계란 프라이, 역시 1000번을 주물러 만드는 우유 아이스크림 등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메웠다. 종일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막막한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와 놀이하는 모습을 촬영해 공유하는 '아무 놀이 챌린지'도 유행이다. 집에서 즐기는 보드게임, 퍼즐, 프라모델의 판매도 급증했단다. 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집콕으로 일어난 현상들이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겨울 들어 코로나 2차유행이 거세지면서 각 주별로 강력한 폐쇄 및 제재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비필수업종 사업체들이 문을 닫은 것은 물론, 퀘백주는 밤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온타리오주는 식료품을 사거나 병원을 방문하는 일 외에는 외출금지를, 대서양 연안의 주들은 다른 주로부터의 여행 제한령을 실행 중이다. 당연히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일들에 더해, 집에서만 놀고 쉬고 일하고 공부하는 지긋지긋한 집콕생활. 그런데 그 지긋지긋함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도는, 노숙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집에 머물라는 정부의 명령을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다는 것

통계에 따르면, 매년 노숙인 보호소(shelters)를 이용하는 캐나다인의 수는 23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보호소들이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수용인원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문을 닫았고, 팬데믹이 야기한 실직으로 노숙인의 수는 늘어났다. 한 노숙인 지원단체 관계자의 말처럼 "필요는 증가하고 공간은 줄었으며 위협의 정도는 상승"한 것이다.

1월 9일부터 실시된 야간 통행금지 규정을 위반할 경우 1500달러(약 168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퀘백주에서는 노숙인들에게 이 규정을 면제해달라는 요청이 제기돼왔다(온타리오주의 경우 이미 외출금지 규정에서 노숙인들을 제외한 상태다). 쉼터를 찾지 못한 한 노숙인이 공중 화장실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던 중 1월 말 결국 "통행금지는 인간의 평등할 권리에 반해, 집 없는 이들에게 차별적이고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났다.

정부가 노숙인과 관련된 이런 상황들을 손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팬데믹 초기인 지난해 봄부터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임시 보호소를 열기 시작했다. 봉쇄령으로 문을 닫은 커뮤니티센터와 학교 체육관 등에 임시 시설을 마련하거나 호텔방을 내어주는 방식이었다. 한 중소도시의 경우 팬데믹 초기부터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의 재정을 들여 '호텔 룸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0명 넘는 노숙인들이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여름부터 봉쇄가 서서히 풀리면서 임시 보호소가 마련됐던 공간을 원래의 용도로 재사용해야 한다거나, 호텔료 지불을 위해 책정된 재정이 점점 바닥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겼다. '임시' 보호소의 한계였다.

이에 일명 '팝업 셸터(pop-up shelter)'라는 보다 적극적인 비상대응책으로 노숙인들을 지원하는 도시들도 있다. 온타리오주 런던시를 예로 들자면, 230만 달러(약 25억7000만 원)를 들여 건설용 트레일러를 난방시설이 갖춰진 숙박시설과 쉼터로 변경하고 있다. 개별 침대방 외에 샤워시설과 휴게공간이 있고 매일 코로나 진단이 이뤄진다. 양성판정을 받을 경우 머무는 격리공간도 마련됐다. 팝업 셸터를 준비하는 동안 담요, 세면도구, 옷 등 시민들의 기부품도 줄을 이었다. 노숙인 자선단체 임원인 사라 캠벨은 지역신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다는 것, 자신만의 공간에서 물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어요.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측면들이죠.
 
문에 달린 자물쇠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렵게 얻은 기쁨이었다. 사라 캠벨은 팝업 셸터가 "전통적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을 찾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시민들도 나서다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나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에는 나무로 작은 건축물을 지어 노숙인들에게 좀더 따뜻하고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고 있는 토론토 목수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건축물은 편히 앉고 누울 수 있는 크기에 문과 창이 하나씩 있고 이동을 위한 바퀴가 달려 있다. 단열처리를 하고 화재 경보기와 일산화탄소 경보기도 설치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훌쩍 오른 자재값과 단열재, 바퀴 등의 비용을 합치면 한 채의 건축물을 짓는 데 1000달러(약 88만 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이에 더 많은 이들을 돕고자 인터넷 모금운동을 시작했고 단기간에 20만 달러 넘는 돈이 모였다. 미디어에 그의 운동이 소개된 뒤 돈뿐만 아니라 재료를 보내거나 노동력을 더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마음인 건 아니었다. 11월 말 그는 토론토 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시 소유의 땅에 건축물을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며 철거 비용을 그에게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노숙인 캠프에서 화재로 인한 사망사건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들며,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화재의 위험성과 열악한 위생환경을 문제삼고 있다.

그는 건축물을 이용한 이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며 멈추지 않겠다고 맞섰다. 건축물에는 화재 경보기와 이산화탄소 경보기가 설치돼 있으며, 점검을 받아 안전성을 증명하겠다는 것. 관련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비판여론이 일었고 현재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한 청원이 6만2000건을 넘어섰다. 목수는 시 소유의 땅이 아닌 교회 소유의 땅에 건축물을 이동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당장 강제 철거하지는 않겠다고 한 상태다.
 
 캐나다의 익명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할리펙스 뮤추얼 애이드(Halifax Mutual Aid)’가 노숙인들에게 제공한 임시 보호소.
ⓒ 홈페이지캡처
  
할리펙스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때문에 주택난이 악화했고, 2019년 200명가량이었던 하루 노숙인구가 작년 10월 초 493명으로 늘었다. 이에 익명의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할리펙스 뮤추얼 애이드(Halifax Mutual Aid)'는 토론토 목수의 것과 같은 임시 건축물을 만들어 보호소를 찾지 못한 노숙인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곧 지방자치단체의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시민들은 이에 맞서 '주거는 인간의 권리다'라는 푯말을 내세운 집회를 열었다. 임시 건축물을 보호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고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도 이 건축물이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시처방일 뿐이라 해도 이 작은 건축물이 최소한 노숙인들을 비바람과 추위로부터 막아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연방정부는 10억 달러의 예산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3000개의 주거공간을 더 마련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할리펙스시도 재정지원을 받아 노숙인들을 위한 추가 주거계획이 세워진 상태지만 실행을 기다리기엔 당장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의 겨울이 지나치게 혹독하다.

런던시 팝업 셸터 건설에 관계한 한 자선단체 임원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보호소를 이용할 수 있게 돼 기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보호소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정부 지원이 있고, 노숙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집회를 열고 기부를 이어가는 시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충분치는 못한 상황이다. 캐나다의 길고 추운 겨울에 코로나의 위협까지 더해져 노숙인들은 더없이 혹독한 시기를 견디고 있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건 한국 노숙인들도 마찬가지다. 노숙인 자활기관의 입소자 수 제한, 확진자들이 다녀간 무료급식소의 배식 중단에 추위까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노숙인 지원시설 혹은 지하도 등지에서 여러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잠을 잠으로써 감염에 취약한 상황도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최근 서울역 노숙인 지원시설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노숙인들은 더욱 갈 곳을 잃었다. 코로나19는 노숙인들이 의지하던 가느다란 의지처마저 앗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집콕의 지긋지긋함을 하소연하지만, 슬기로운 집콕생활은커녕 지긋지긋한 집콕생활이나마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춥고 위태로운 겨울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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