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초보가 돈다발 들고 투자 시작할 때 벌어지는 일
한 이코노미스트의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물 위에 잘만 떠 있으면 언젠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더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다 무리하여 중간에 빠진다고. 무리하지 않는데 나의 처절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말>
[남희한 기자]
주식 시장에도 테마파크가 있는지 몰랐다. 이 테마 저 테마 그 테마. 수많은 테마가 극도의 스릴을 제공할 롤러코스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난 그저 선택해서 타기만 하면 끝. 당연한 얘기지만,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다.
계좌 잔고를 불리는 방법
주식에 심신을 다해 매진할수록 계좌 잔고는 대체로 불어나게 된다. 모두가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아, 참고로 계좌 잔고를 불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평가 이익을 늘리거나 예수금을 더 넣거나. 아쉽게도 나는 후자였다.
느긋하지 못하고 조바심에 시세를 쫓던 생각 없는 개미는, 다행히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테마주 때문에 큰 곤경에 빠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진정으로 나를 위험에 빠트렸던 것은 감당할 수 없이 커졌던 투자금이었다. 수백만 원의 -10%와 수천만 원의 -10%는 태생부터 다른 충격 강도를 지녔음을 겪어보고서야 실감했던 탓이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보단 수익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다. 그리고 현재의 손실을 작게 보이게 하는 효과로 물타기는 상당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줬다. 이 두 가지 조합은 보통 동시에 일어나는데, 이런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어? 많이 떨어졌네. 평단가를 낮춰서 빨리 수익으로 바꿔야지."
테마파크 입장
▲ 돈을 더 내면 위험을 제공하는 테마파크 감당할 수 없는 투자금은 위험을 만들어 낸다 |
ⓒ 남희한 |
처음엔 200만 원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 관계가 있던, 안다고 착각했던 회사의 주식을 샀다. 운 좋게도 초심자의 행운이 이어졌다. 20만 원가량의 수익에 기뻤지만 알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그래서 그 돈을 하루 10% 안팎의 변동쯤이야 우스웠던 대선 테마주에 옮겨 담았다.
여론 조사가 나오거나 누군가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면 이내 반응하는 종목들.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변동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믿었다'. 사람이 몰릴 것이고 내가 더 비싼 가격에 팔고 나올 수 있을 거라고.
그중 한 명이었던 나의 계좌는 어느새 8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약간의 수익과 더 큰 수익을 기대한 '불'타기의 결과였다. 이때부터 가격의 등락이 이전에 느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회의 시작 전 믿기지 않았던 120만 원의 수익이 30분 회의 후 믿고 싶지 않은 -20만 원의 손실로 변해 있었다. 겪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경험은 손 떨리게 할 만큼 아찔했다.
어째서 내가 본 최고점이 본전이라고 여기는 것인지, 나는 손실을 봤다는 생각에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상쇄하고자 돈을 채워 넣었다. 조금 이상한 흐름이지만, 당시엔 그럴싸한 핑계가 있었다. 셋째 아이의 출산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압박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라는 판단이 내게 '무리'를 요구했다.
때마침 대출도 쉬웠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투자금을 늘렸다. 아주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별다른 수를 낼 수 없는 직장인에게 주식과 대출은 너무 가까웠고, 운을 실력이라 믿었던 주식 초보는 아직 제대로 잃어보질 않았으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만충 상태였다. 그리고 이 테마 저 테마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돈다발을 든 주식 초보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것이 무슨 문제이겠냐마는 조급함으로 인해 핀트가 많이 틀어져 있었다. 큰 금액으로 빠르게 한탕(?)하고 싶었던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스릴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은 마치 주머니에 다 넣지 못한 돈다발을 손에 쥐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았다. 안전바를 잡아야 할 손에 돈다발을 들고 앉아 있으니,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모두가 쉽지 않다고 해도 나만은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돈다발을 든 주린이 오르락 내리락. 돈이 그냥 허공으로 사라졌다. |
ⓒ 남희한 |
테마가 미래가 되기도 한다는 걸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러했고 반도체와 핀테크가 그랬음에도, 긴 기간 꾸준하게 올랐던 5G나 전기차 테마에서도 큰 수익을 얻지 못했다. 테마의 의미를 지나치게 가볍게 일축해버린 정치 테마의 경험 덕에, 테마라는 것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는 '환상' 특급 열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한 돈다발에 진득이 앉아 있질 못했다.
돈을 더 내면 스릴이 배가 되는 곳
그 옛날 월미도 바이킹을 탈 때면 스릴을 극대화하기 위해 맨 뒤에 앉아 반쯤 일어나곤 했다. 당시 월미도 바이킹은 각도도 각도지만 외관상으로도 불안한 무언가가 있었고 심지어 안전바가 들리기도 했다. 사람이 빠지기에 충분한 공간. 그 공간 안에서 나는, 엉덩이를 들어 올림으로써 스릴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스릴을 즐기던 어린이는 주식 초보가 되어 주식 투자라는 360도 회전 열차를 안전바도 하지 않고 탔다. 아찔했다. 바이킹의 그것과는 다른, 아픔을 동반한 스릴에 몇 번이고 정신을 놓을 뻔했다.
죽을 줄 모르고 하는 행동에서 항상 사고가 난다. 적어도 놀이기구처럼 키가 100cm가 되지 않으면 입장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주식 시장엔 100cm를 재는 측정대가 없다. 제재하는 안전 요원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가짐만으로 이를 검열해야 하는데, 환장할 노릇은 이 100cm 기준이 사람마다 시기마다 제각각이란 거다.
▲ 주식투자 자체통과 시스템 주식시장.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무제한'의 공간. |
ⓒ 남희한 |
그리고 독특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돈을 더 내면 안전바를 치워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안전바 사이로 쑥 빠질 만큼 작은 주식 초보가 안전바까지 치워 버리고 기세 등등하게 앉아 있는 모습. 생각만 해도 불안한 이 모습을 참 많이도 연출했었다.
누구도 막지 않는 동시에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버젓이 적혀 있는 안전 문구에 콧방귀를 뀌며 안전바도 하지 않은 채 돈다발을 들고 앉았다. 애가 탄 누군가가 안전바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가벼운 주식 초보의 귀에 무거운 투자 철학 읊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릴의 극한을 맛보지 못한 주식 초보는 눈까지 반짝였다. 자신은 마치 관람 열차를 탄 듯 설레는 마음으로 더 높이 올라가기만을 바라면서.
고통으로 비중을 다스리는 주식 초보
요즘 나는 100cm를 재는 방법으로 시도와 고통 회피를 반복하고 있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한데 내겐 이만한 방법이 또 없다. 사람은 고통에 취약하다. 나 역시 취약한 인간이기에 고통이 싫다. 도망치고 싶다. 그래서 도망치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수도 없이.
떨어질까 무서워 팔았다는 얘기다. 깊은 이해 없이 투자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 선택을 확신할 수 없기에 불확신의 불안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무서워서 팔다 보면 가지고 있어도 무섭지 않은 정도만 남게 된달까. 그러다 보니 안전바를 꼭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 마지막으로"가 아닌 "이번에도 무사히"라는 마음으로.
'쪼가리 대박'이라고 있다. 동향만 살피기 위해 소액으로 매수한 종목이 아주 큰 수익을 낸 경우를 말한다. 작은 비중에 동요하지 않아서 볼 수 있는 '기 현상'이다. 조금만 비중이 실렸어도 쉽지 않은 수익률을 한두 주의 보유로 마음 편하게 만들어 낸다. 이런 쪼가리 대박처럼, 마음 편한 덩어리 소박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주식 시장에서의 지나침은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가슴 철렁 내려앉는 수준이 아니라, 털썩 주저앉게 되는 일이다. 자주 한눈팔다 보면 돌아올 수 없는 어디론가에 가 있는 것. 그게 주식투자였다.
셋째 아이 때문에 무리했던 그 주식 초보는 지금 넷째를 낳아 잘 지내고 있다. 주식으로 번 돈은 아직도 얼마 되지 않지만, 지내다 보니 월급만으로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크게 여유가 없어 욕심을 버려서인지 네 아이를 거느리는 것이 생각보다 '답이 없는' 지경에는 이르진 않았다. 이렇게 될 거, 조급해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멋모르고 빨리 가려다 오래 헤맸고, 한 번에 많이 들고 가려다 크게도 다쳤다.
오늘도 신나게 솟아오르는 놀이기구를 보며 "와~" 하다가도, 간간히 들리는"악~"하는 비명 소리에 마음을 추스른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놀길. 조급해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않길. 그런 쉽지 않은 마음이 오늘도 지켜지길 바라며 자유이용권 대신 입장권을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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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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