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보육원..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인터뷰]
“보육원에서 나와 어렵게 집을 구했지만, 집주인에게 속아 보증금 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억울했지만 당시 내 편에서 싸워줄 사람은 없었다.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점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4년 전 보육원을 떠나 홀로서기 중인 ‘보호종료아동’ 강한(23) 선수는 보호조치 종료 직후 닥쳤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998년 1월 1일 부산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미혼모였던 어머니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지냈던 그는 2017년 20세(만 19세)에 보육원을 퇴소했다. 강 선수는 단거리 육상선수부터 카바디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2019년 봅슬레이 선수로 전향, 다음 달에 열리는 2021-2022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 중이다.
강 선수는 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한 규율 속에서 단체 생활을 했던 양육시설 아이들에게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은 낯설다”며 “더군다나 주변에 자기 일처럼 삶에 개입해주는 누군가가 없으니, 외로움을 자주 느끼고 혼자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이 정한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이나 위탁가정의 보호로 받았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 보호 기간이 끝나 시설을 떠나는 아이들을 ‘보호종료 아동’이라 부른다. 이들은 400~500만원의 자립정착금을 받고, 3년 동안 자립수당 월 30만원을 받는다. 특이 사유로 20세 미만자에 한해 1년 이내 보호를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강 선수는 운동 중 입은 부상으로 보호 기간을 연장,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보육원에서 지냈다.
강 선수는 “초등학교 때 육상 시합에 나가면서 나에게 부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다른 학교 선수들은 부모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시합을 뛰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선수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가족이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강 선수는 보육원의 삶에 대해 ‘힘듦’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다.
강 선수는 “단체 생활이다 보니 규율은 많고, 자유는 없었다. 또 하나하나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보육원 시절,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운동부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훈련 중 코치들에게 ‘너는 부모가 없어서 그 정도 실력이다’ 등의 말을 들었다”면서 “하루는 코치와 다툰 적이 있었다. 보육원 선생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모두 다 내 잘못이라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 선수는 보육원 생활 내내 퇴소 날 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에 산다고 잘못된 게 아닌데, 왠지 잘못한 것 같고 무슨 일만 있으면 ’보육원 출신이라고 그렇다’, ‘부모님이 없어서 그렇다’ 등의 말을 들었다. 하루빨리 보육원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강 선수는 2017년 2월 보육원을 퇴소했다. 그는 “보육원에 있는 짐을 싸니 우체국 상자 하나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20년간 살았는데 ‘내 것’이라 할만한 것은 그 정도 뿐이었다”며 “정착금 500만원을 들고 서둘러 집을 구했다. 냄새가 나는 8평짜리 원룸이었지만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육원을 나온 강 선수에게 사회는 냉혹했다. 그는 “갑자기 집주인이 공사를 해야 한다며 방을 빼라고 했다. 집주인은 보증금도 돌려주지 않고 나를 쫓아냈다. 그때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와 많이 힘들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점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떨거진 느낌이었다”며 “시설에서 배웠던 자립교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 하는 삶은 외롭고 힘들었다”고 했다.
강 선수는 보호종료 이후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몸이 아플 때나 운동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는 집을 보면 공허함과 쓸쓸함에 우울해진다. 그게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이어 “보호종료아동 중에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다. 나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강 선수는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 소속 ‘청춘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겠습니다’(청포도)로 활동하며 보호 종료 아동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과 같이 외로움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청춘’이라는 노래를 제작했다. 강 선수는 “스스로 보호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처 많은 청춘이 있다”며 “누군가 옆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을 때 이 노래를 듣고 다시 한번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아직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보육원 친구들이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거다. 꿈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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