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입 열면 계약 끊습니다"..애플의 유별난 '비밀주의'

김성훈 2021. 2. 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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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보안 집착'에서 기인
협력사 물론 내부 직원도 철저히 감시

애플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차 개발 협상이 중단된 이유를 놓고 애플의 유별난 ‘비밀주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은 왜 이토록 기밀 유지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잡스의 신비주의 전략 고수…무덤도 ‘비밀’

애플의 비밀 유지 원칙은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경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는 아이폰, 아이팟, 맥북 등 혁신적인 제품을 발표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전략을 구사해온 ‘마케팅의 귀재’였다.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면서 직원들조차도 행사를 불과 몇 시간 남겨두고 신제품을 맞이할 정도였다. 전세계 소비자와 언론의 시선이 모두 쏠려 있는 시점에 잡스는 특유의 제스쳐와 이목을 끄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신제품을 선보였다. 소비자의 기대 심리를 이용해 제품 구매 욕구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강력한 통제를 수단으로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구축했다.

애플은 신제품은 물론 CEO(최고경영자)였던 잡스의 사생활, 건강 문제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2011년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사회 명의로 간략한 성명을 통해 사망 사실을 밝혔을 뿐 구체적 사인이나 사망 장소, 장례 일정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묘소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알타 메사 메모리얼파크 내 위치해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표지석이 없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비밀 유지 조항 엄수…위반 시 거액 위약금도

애플은 다수 제품을 위탁 생산하지만 알려진 협력사는 손에 꼽힌다. 철저한 비밀 유지 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품·서비스 관련 내용을 유출하거나 협력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계약을 파기하거나 거액의 위약금을 물리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

과거 디스플레이 협력사이던 GT어드밴스드테크놀로지스가 파산 과정에서 애플의 지나친 위약금을 이유로 들며 고소한 일화도 유명하다. 애플은 계약서에 비밀 누설 건당 무려 5000만달러(약 560억원)를 지불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은 모든 내부 상황을 기밀로 유지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과 수년째 협력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 한 업체 관계자는 “애플은 업무를 처리할 때 ‘Secret(비밀)’을 붙여놓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비밀 유지 서약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에 누설한 것이 밝혀지는 순간 강력한 항의와 동시에 입찰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애플이라는 회사명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면서 ‘과일 회사(Fruit Company)’ 등의 코드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애플은 내부 직원들도 강력히 통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중 보안 절차를 거쳐야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실내에서는 CCTV를 통한 감시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밀유지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밀 유출이 발생할 경우 디지털 포렌식 회사까지 동원해 당사자를 잡아낸다는 일화도 있다.

“법보다 우리가 먼저” 과도한 요구도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이나 합작 등 협상 과정에서 비밀을 유지하는 경우는 많다. 회사 구성원이 동요할 수 있고, 공시 전 사실이 알려지면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협력사에 과도한 계약 조건을 강요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심지어 현지 국가의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본인들과의 계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미미한 오차만 발생해도 ‘이건 애플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제기한다”고 성토했다.

애플의 갑질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공정위는 무려 12년간 이어온 애플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해 동의의결을 확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애플은 TV·옥외 등 광고비와 매장 내 전시·진열비, 수리비 등을 이동통신사가 부담하도록 했고, 광고를 제작할 때에도 통신사들로부터 걷은 ‘광고 기금’을 사용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실용적 이미지를 가진 애플이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를 환경보호·고객 정보 보호 등의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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