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이성윤도 리스트 올렸다..'프로 고발러' 된 이종배

하준호 2021. 2.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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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법세련 대표는
왜 '프로 고발러' 됐나

서울 신림동에 사는 대리운전 기사 이종배(43)씨는 거의 매일 밤 글을 쓴다. 오후 7~8시쯤 일을 나가 새벽녘에 돌아오면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글을 쓰기도 한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날에는 아예 일을 쉬기도 하지만, 썩 좋아서 쓰는 글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고발인 조사를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며 자신의 입장을 취재진에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는 “쓰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고 한편으론 착잡한 글”이라고 했다. 글감은 장관·국회의원·판·검사 등 권력자의 범죄혐의, 받는 이는 검찰. 그의 글은 고발장이다.

“국회의원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병가를 낸 건 사기다.” 지난 10일 설을 맞아 귀성길에 오르면서도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밤새 작성한 고발장을 온라인으로 접수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의 고발 리스트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새롭게 올랐다.

이씨가 처음 고발장을 쓴 건 2019년 6월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며 연가 시위를 벌였을 때다. 그해 5월 대입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학부모들과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던 그는 현직 교사들의 연가 시위가 불법이기 때문에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교육부에선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 그는 유은혜 사회부총리를 직무유기 혐의로 처벌해 달라고 고발했다. 유 부총리가 할 일을 안 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부모단체가 고소·고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를 새로 만들었다.


"'좌파 저격수'요? 우파도 권력 잡으면 고발 대상"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지난해 5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관 앞에서 윤미향 당선인(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여권 편향적이란 생각에 요즘엔 서울중앙지검보다는 대검찰청을 찾아 고발한다"고 말했다. 뉴스1

그 뒤 1년 반 동안 법세련 명의로 작성한 고발장만 70여건, 피고발인은 30여명이다. 그중 실제 재판에 넘겨진 건 8건, 각하·무혐의 처리된 건 9건, 나머지 53건은 12일 현재 여전히 수사 중이다. 혐의는 직권남용부터 직무유기·명예훼손까지 다양하다. 피고발인 대다수가 추미애·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낙연·이탄희·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 여권 정치인이다. 최근엔 김명수 대법원장(지난 9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지난 8일)도 고발했다. 언론은 그를 ‘좌파 저격수’라고 소개했다.

Q : 고발장을 남발하는 거 아닌가.
A : “고발을 남발한다는 세간의 비난을 의식해 해야 할 고발을 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Q : 왜 하필 고발인가.
A : “권력이 불법을 저지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불법 행위는 처벌해야 한다.”

Q : 보수 성향 인사를 고발한 적도 있나.
A : “없다.”

Q : 편향적인 거 같다.
A : “지금 권력을 잡고 국가를 운영하는 세력이 소위 좌파 또는 진보다. 난 시민단체 활동가로, 권력층을 감시·견제할 뿐이다.”

Q : 보수 우파가 권력을 잡으면.
A : “지금도 진영을 구분해 고발하지 않는다. 권력자가 불법을 저지르면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고발한다.”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지난해 5울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와 황희석 최고위원 등을 이른바 채널A '검언유착' 의혹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지난달 이 사건과 관련해 최강욱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뉴스1

이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가 지난달 무혐의 처분을 받은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5월 페이스북을 통해 “법세련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뭐하는 단체인지는 모르지만 (중략) 아마도 고소·고발 전문단체로 보이고 뒷단에는 이들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Q : 후원을 받나.
A : “안 받는다. 돈벌이를 위해 고발을 남발한다는 비아냥을 받고 싶진 않다.”

Q : 그럼 활동비는 어떻게 감당하나.
A : “고발에 특별한 비용이 들진 않는다.”

Q : 혹자는 배후를 의심한다.
A : “그런 거 없다. 대부분 언론 기사를 보고 사건을 인지한다. 혐의가 명확하면 고발한다.”

Q : 고발한 사건이 기소로 이어지면 뿌듯한가.
A : “씁쓸하다. 권력자들이 법을 지키고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국민의 피해도 없고, 나도 더 가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

2017년 5월 4일 서울 양화대교 아치 교량 위에서 사법시험 존치 대선 공약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종배씨. 중앙포토
이종배씨가 2016년 7월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대표로 경남 양산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당 상임고문) 자택 앞에서 사시 존치 공약 촉구를 위한 농성을 벌일 때 문 대통령은 이 텐트를 찾아 2시간가량 면담했다. 문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가 이종배씨. 유튜브 캡처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이씨는 영남대 공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법률 조언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돕는 국선변호인이 꿈이었다. 2010년부터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렇게 사시 폐지가 예정된 2017년이 다가왔다. 이씨는 사시 존치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든 게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이다. 2016년 6월부터 이 단체 대표를 맡고 있다. 그해 7월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혔던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의 경남 양산 자택 앞에서 텐트 농성을 하다 그곳을 찾은 문 대통령과 2시간가량 면담하며 사시 존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2017년 대선 직전엔 양화대교 아치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설득으로 내려왔다. 단식 같은 극단적인 방법도 써봤지만, 사시는 그해 말 예정대로 폐지됐다. 그 무렵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대입 수시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학부모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정부가 수능 개편안으로 전 과목 절대평가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학부모들과 삭발 투쟁도 불사했다.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지난해 9월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과 관련, 추 장관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Q : 삶이 평범하진 않다.
A : “땀 흘려 노력한 사람이 보상받고, 특권과 반칙으로 얻은 이익은 결국 박탈당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Q : 로스쿨을 통해 꿈을 이룰 수도 있잖나.
A : “로스쿨은 특권층만 혜택을 보는 모순적인 제도라 오래가지 못한다.”

Q : 사시 부활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A : “이제는 포기하자는 회원들도 있다. 하지만 나라가 정상이면 부활할 거다.”
이씨가 사는 월세 27만원짜리 고시원 책상엔 여전히 형법 책과 판례집이 놓여 있다. 이젠 공부보다는 고발장을 쓸 때 법리 검토를 위해 펼친다고 했다. 그래도 부족하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거나 아는 변호사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월 100만원 정도의 대리운전 수입으론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하지만, 고발장 쓰는 일은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고발 행위가 “법치·공정·정의를 위한 마중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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