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진영 싸움 온다"..설 밥상머리 민심 챙기는 잠룡들

심새롬 2021. 2.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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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9일에 치러질 차기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예년보다 조용한 설을 맞은 여야 잠룡들은 저마다 정중동(靜中動)의 연휴를 보내고 있다. 과거와 같은 광폭 행보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비공개 일정·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등을 통해 저마다 입지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왼쪽부터). 연합뉴스


신경전 치열한 與
여권 지지율 선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11일 페이스북에 “보건방역과 경제방역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 인사를 적었다. 지난해 모친상 이후 첫 설이지만 정부의 이동 자제 지침에 따라 성묘도 나중으로 미루고 경기도 성남 자택에 머문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필요하면 수원 소재 공관을 오가며 방역 상황을 점검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연휴 동안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등 자신의 ‘기본시리즈’ 구상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집콕’ 중에도 기본소득 찬반 논쟁에는 고삐를 당겨 쥐려는 모습이다. 11일 경기도는 도민 10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가 경기도의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잘했다’고 평가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달 1일부터 도민 1인당 10만원의 2차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반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방송 인터뷰에서 이 지사의 대표상품인 기본소득의
부작용을 꼬집었다. 기본소득으로 1인당 50만원씩 주면 한해 300조원이 든다는 말에 “우리가 한 해 세금으로 거두는 게 300조원쯤 된다. (기본소득을 할 경우) 지금 세금의 두 배를 거둬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하면서다. 그는 “제가 내놓은 신(新) 복지체계도 부담이 늘기는 마찬가지”라며 “‘흑이나 백이냐’ 따지기보다는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후 순천시 덕연동 여순항쟁위령탑을 찾아 참배에 앞서 방명록을 쓰고 있다. “여순특별법으로 과거를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세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연합뉴스


연초부터 지지율 하락을 겪은 이 대표는 광주·전남 방문으로 설 연휴를 시작했다. 10~11일 1박 2일 일정으로 나주 한전공대 부지 방문, 원로 예술인 현장 간담회, 여순항쟁위령탑 참배 등을 했다. “사면론 반발이 거셌던 고향 민심을 끌어올리는 데서부터 지지율 반전을 모색하려는 것”(당대표실 관계자)이란 설명인데, 당 일각에선 “4·7 재보선을 이끌 당대표가 설 연휴에 부산이 아닌 호남을 찾은 건 좀 의외”(지방 재선)라는 반응도 있다.

‘여권의 심장’이라는 광주는 두 명의 대선 예비주자 방문으로 연휴를 시작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 대표와 같은 날(10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빛고을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착수식에 참석해 “광주의 꿈이 대한민국의 꿈이다. 광주가 살아야 호남이 살고, 호남이 살아야 대한민국 국가균형발전의 기틀이 정립될 것”이라고 축사했다. 정 총리는 광주 양동시장, 광주형 일자리(글로벌모터스) 현장도 잇따라 방문했다.

“이낙연·정세균의 호남 쟁탈전이 시동을 걸었다”(광주시당 관계자)는 관측이 나온다.

재보선 격전지인 부산에는 민주당 ‘제 3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광재 의원이 내려간다. 부산지역 선대본부장으로 거론되는 그는 앞서 “나는 부산의 사위다. 노무현의 못 이룬 꿈을 이루겠다”며 부산 공략을 선언했다. 당내 86그룹(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 잠룡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연휴 동안 주로 서울에 머물며 조용히 향후 거취를 고민 중”(임 전 실장 측근)이라고 한다.


“재보선 이후” 벼르는 野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박원순 시정 잃어버린 10년 재도약을 위한 약속'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보수 야권은 정권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기본소득·복지 확대를 운운하는 여권에 경제 위기론을 정면으로 들이대는 모양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IMF 위기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 일자리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며 “지금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니 보편적 기본소득이니, 이런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10일 페이스북에 썼다.

설 밥상머리 민심에 ‘정권 심판’을 화두로 올리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야권 대선 주자 중 하나인 유 전 의원은 지역구가 있는 대구에 연휴 직전(8~10일) 2박 3일간 머물렀다. 유 의원 측은 “설 전날(11일) 서울로 올라와 대선 구상에 매진하고 있다”며 “설 차례는 서울에서 지낸다”고 전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에 머물며 “방역 비상”을 강조 중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이번 설 제주 방문객 규모가 총 14만명에 달한다. 도지사는 연휴 동안 필수인력 비상근무체제를 선포하고 방역상황 특별관리 체계 가동을 점검한다”고 전했다. 다만 이슈 논쟁에는 적극 참전해 주목도 집중을 노리고 있다. 원 지사는 10일 CBS 라디오에 나와 이재명표 기본소득이 “허경영식 선동 정치”라며 나경원 전 의원에겐 “돈 준다고 애 낳는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지난 5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면담이 예정된 상가연합회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야권에서는 4·7 재·보선이 지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대선판이 달궈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지금의 차기 대선판은 민주당 판”이라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주장이 일례다. 홍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직 야당판은 장벽에 가려져 시작되지도 않았다”며 “반문재인 진영이 정비돼야 야당판이 오는데 지금 반쪽의 야당만으로는 야당 대선판이 될 수가 없다”고 적었다.

4월 이후 한 차례 더 지각변동을 거쳐 야권 전열 재정비가 이뤄진다는 전망이다. 홍 의원은 “차기 대선판은 해방 이후 최고로 극심한 진영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87년 체제 이후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11월 외환위기 직후 대선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지난 5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설 민심을 미리 청취하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 들러 성묘를 마쳤다고 한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재·보선이 지나고 7월쯤 대선판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관련 구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3월 초부터 경제·사회 변화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미혼한부모가족 복지시설을 방문,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차분한 명절 행렬에 동참 중이다.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미혼한부모가족 복지시설 ‘애란원’에 들러 “정상적인 엄마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한 발언이 오해를 사 민주당이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윤석열 검찰총장도 설 연휴에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 보고 등 예정된 게 없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연휴를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심새롬·성지원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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