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축하합니다" 같은 듯 다른 북한의 설 풍경

정영교 2021. 2.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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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봉건주의 잔재로 여겼으나
2003년부터 음력설 휴일로 지정
남과 북 명절 보내는 풍경 비슷
최근 북한도 명절 스트레스 있어
20201년 새해를 맞이하는 평양시내 거리 풍경 [노동신문=뉴스1]

지난 1월 1일 0시.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방송 도중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오후 11시부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신년 축하공연과 국기 게양식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중 0시를 넘기면서 한 새해 인사였다.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주민들에게 보낸 연하장도 같은 표현으로 시작했다. "복 받으세요"가 아닌 "축하합니다"가 북한의 새해 인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복’이나 ‘운’을 미신으로 여기는 까닭에 한국처럼 "새해 복 많으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금시로 여긴다는 게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같은듯 다른 북한의 설 풍경이다.

북한이 음력설을 '가짜설'이라며 인정치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설날(음력설)과 같은 민속명절을 봉건주의의 잔재로 여기고, 1946년부터 양력 설날만 인정했다”며 “이 때문에 각종 행사도 1월 1일 대대적으로 진행했지만, 2000년대 들어 민속명절을 휴일로 지정하면서 주민들도 음력으로 설을 지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정권수립일(9월 9일) 등 주요 정치 일정만 ‘사회주의 명절’로 기념하다 2003년부터 음력설도 민속명절로 지정했다. 대보름, 청명, 한식, 추석 등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1일 신년사를 대신해 주민들에게 보낸 연하장 [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새해를 맞아 경축음악회 등을 열곤 하는데, 최근에는 음력설도 기념하고 있다. 음력설인 지난해 1월 25일 삼지연극장에서 열린 설명절 기념공연엔 김 위원장도 참석했다. 이날 공연에는 국무위원회 연주단, 삼지연관현악단, 공훈국가합창단 등이 출연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 김일성 광장에서 대중음악을 선보였던 양력설 공연과 달리 음력설 기념 공연은 차분하고 격조 있는 음악회 분위기였다.

가족과 친지가 모여 시간을 보내거나 며느리들이 '시월드'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는 남북한에 큰 차이가 없다. 2018년 탈북했다는 김화영 씨(24ㆍ가명)는 “북한에서 명절은 친척들과 가까운 이웃이 모여 시끌벅적한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며 “정치제도나 경제적 차이 때문에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명절 분위기는 남한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북한은 남녀평등을 강조하면서도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봉건사회 분위기가 남아있어 대부분 여성들이 명절준비를 한다”며 “명절에 친척들이 많이 모이고 음식 준비가 힘들다 보니 고부갈등이나 일부 며느리는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설 명절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명절을 보내는 주민들[노동신문=뉴시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동네 어른을 찾아 세배를 하고 용돈을 받는 풍경도 한국과 흡사하다. 주민들은 연날리기ㆍ팽이치기ㆍ널뛰기ㆍ제기차기와 같은 놀이를 즐기고, TV는 휴일 방송 시간을 적용해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윷놀이ㆍ소싸움ㆍ씨름 같은 민속경기를 중계한다. 때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영화를 더빙해 특선외화도 방영한다.

지난해 나쁜 기억을 잊고 한 살 더 먹은 새해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설 명절 음식으로 삼는 것도 남한과 비슷하다. 설날을 전후해 조선중앙TV는 떡국을 끓이는 법을 방영하면서 “육수는 꿩고기로 만드는게 기본이지만 꿩이 없으면 닭으로 육수를 내도 된다”며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떡국 육수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1월 떡국 끓이는 방법을 방영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하지만 90년대 최악의 식량난을 겪으면서 설음식으로 떡국을 먹는 풍습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며 여유가 있는 집안은 떡국이나 전통적인 명절음식을 만들어 먹고 외식도 즐긴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울 경우 따뜻한 밥에 육수를 부어먹는 ‘온반(溫飯)’이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차려 먹는 경우도 많아 떡국을 설음식으로 생각치 않는 주민들도 늘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탓에 귀성문화가 없는 건 남한과 큰 차이다. 탈북자 박지영 씨(41세ㆍ가명)는 “2018년 한국에 온 뒤 명절을 앞두고 주민들이 고향 방문을 준비하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선물은 나누는 모습이 어색했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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