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노부모만 두고 떠난다..'홍콩판 기러기'의 심란한 설

김홍범 2021. 2.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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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청(52)은 71세의 어머니에게 남편, 두 아들과 함께 홍콩을 떠나 영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노모는 “영국의 이민 확대는 사기”라며 반대했다. 오랜 대화에도 아직 이 가족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의 설)가 다가오고 있지만, 홍콩 내 상당수 가족은 심란하다. 어쩌면 이번이 홍콩에서 지내는 마지막 명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헥시트’(Hong Kong Exit·탈홍콩) 이민을 계획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광복홍콩’(光復香港)이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있는 시위대 앞에서 한 시민이 영국령 홍콩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정부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전 태어난 홍콩인과 그 가족 540만명을 대상으로 한 이주 확대 조치를 시작했다. 중국이 지난해 홍콩 보안법 시행에 들어간 뒤 내놓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해외시민(BNO) 여권을 가진 홍콩인들의 영국 체류 기간을 6개월에서 5년으로 늘리고, 5년 이후엔 정착 지위를 부여한 뒤 시민권 신청도 가능하게 했다. 그동안 금지됐던 취직도 허용된다. 영국 정부는 향후 5년간 최대 100만명이 영국으로 이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어 캐나다 정부도 지난 8일 대졸 이상의 홍콩인을 대상으로 한 3년짜리 개방형 취업비자 특별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취업 1년 후에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이에 현지에선 영국 이민을 준비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도 늘었다. 홍콩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던 개빈 목은 지난해 10월 9살과 11살의 두 딸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뒤 이 과정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집을 구하는 과정, 식료품 구매 방법 등 타지에서의 실제 생활을 위한 소개 영상들이다.

지난해 10월 영국으로 이주한 홍콩인 개빈 목이 영국 식료품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HKFP와의 인터뷰에서 “자유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보안법 시행 이후 심한 압박감을 느껴왔다”며 “저임금 직업을 가질 준비도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민을 문제를 놓고 각 가정 내에서 진통도 일고 있다. 당장 영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부부 중 한 명만 자녀들과 함께 떠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기 어려운 노부모들은 본국에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자녀가 있어 자녀들끼리 갈라지는 일도 생긴다. SCMP 보도에 따르면 홍콩의 은행원 퐁(55)의 가족은 이제 막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23세의 딸을 홍콩에 두고 영국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이민을 떠나기에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BNO 비자 신청을 위해선 영국에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비용에 더해 신청비 2656 홍콩달러(약 38만원)와 3만3000 홍콩달러(약 476만원)의 보건부가비를 납부해야 한다. 이를 두고 베티 류(20‧가명)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아 선택권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며 “일단 홍콩에 남아 10년 안에 떠날 수 있을 만큼 저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영국 비난 성명. “침략의 역사와 식민 통치를 공연히 미화하는 후안무치한 강도의 논리”라며 강하게 영국을 비난했다. 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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