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미술]대권 꿈에 생태 화두도 속전속결 ..청계천 소라고둥
“이명박 시장이 다슬기국을 엄청 좋아해서 그렇게 했대.”
2005년 연말, 미술계는 분노의 겨울을 보냈다. 마침내 다시 냇물이 흐르게 된 청계천 들머리 광장에 놓을 조각을 제작하기 위해 스웨덴 출신 미국 팝아티스트 클레스 올덴버그(91)와 계약을 맺었다고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발표한 뒤였다. ‘스프링’(Spring)’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알록달록 소라 모양 조형물말이다. 작가에게 제시된 가격은 무려 340만 달러(당시 환율 35억원). 세계적으로도 드문 거액이었다. 금액도 크긴 했지만 우리 경제가 산업화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시대로의 이륙을 선언하는 기념비가 될 그 상징물을 외국인에게 빼앗겼다는 허탈감이 컸었다. 서울시는 다슬기라고 우기지만 바다소라를 닮은 게 분명한 조각의 형태도 생뚱맞았다. 왜 ‘다슬기’ 모양이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미술인들 사이에선 이런 우스개가 돌았던 것이다. 북한 사회도 아닌데도 최고 정책 결정자의 ‘음식 취향’을 들먹거려서라도 쓰린 속을 위로 받고 싶었던 걸까.
바다소라? 다슬기?…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올덴버그는 미국의 주류 미술이던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고 앤디 워홀처럼 상업적인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팝아트 대열에 합류했던 작가다. 특히 그의 나이 40대가 된 1970년대부터는 ‘빨래집게’(1976), ‘벽을 자르는 칼’(1986), ‘셔틀콕’(1994), ‘톱질하는 톱’(1996), ‘떨어뜨린 콘’(2001)에서 보듯, 일상의 물건을 기념비처럼 거대하게 키운 ‘뻥튀기 조각’을 곳곳에 설치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청계천 조형물 수주 당시는 76세가 된 노장이었다.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 옥외에 설치된 ‘건축가의 손수건’(1999)도 그런 뻥튀기 조각의 예다. 남성들이 멋을 내기 위해 슈트 앞주머니에 꽂는 형형색색의 손수건을 비현실적인 크기로 키웠다. 생경함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올덴버그가 아내인 코샤 반 브루겐(1942∼2009)와 공동 제작한 ‘스프링’의 외관은 소라형태다. 20m(흥국생명 ‘해머링맨’ 22m)가 되는 엄청난 높이다. 그럼에도 점점 끝이 좁아지며 뾰족해지는 모양새라서 높이가 주는 위압감은 없다. 형태적 날렵함에 빨강과 파랑의 보색 대비가 주는 강렬함이 더해져 경쾌하다. 우중충한 도심에서 혼자 튀어 꼰대 상사가 밀레니얼 신입사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줄 때도 있다.
영어 단어 'spring(스프링)'이 ‘봄’ ‘샘’ ‘용수철’을 뜻하는 것처럼 스프링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조개 아래쪽 구멍에서 샘의 원천처럼 청계천 원수(沅水)가 흘러내리고, 용수철 같은 나선형 구조를 취하며, 조형물 아래는 불룩하게 잔디를 깔아 봄의 이미지를 담았다.
논란 끝에 1년 뒤인 2006년 10월 설치된 스프링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다슬기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이나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하며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 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한다.”
2016년 올덴버그 부부는 국내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 때 ‘스프링’의 아이디어 진화 과정을 담은 드로잉이 공개됐다. 이 드로잉에선 분명히 ‘바다 조개(Seashell) 형태’라고 명기돼 있다. 하지만 청계천 명판에는 ‘다슬기’로 포현돼 있다. 국내에서의 논란을 의식해 표현을 ‘순화’ 시킨 게 분명하다. 드로잉에 따르면 생명의 원천을 표현하려는 아이디어는 처음엔 물방울이었다가 점차 조개껍데기, DNA 나선구조로 변해갔다.
작가의 이런 의도에 대해 시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10년 전 그 때 있었더라면? 외국에선 공공미술을 할 때 작품이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전문가와 행정가, 시민들이 집중적인 토론과 회의를 하는 이른바 ‘퍼블릭 샤렛’ 과정을 거친다. 스프링 제작 당시에는 이 과정이 쏙 빼졌다.
스프링에 대해 미술계가 가지는 반감 중 하나는 작가가 작품 제작을 위해 청계천을 찾아 걸어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때 미술단체는 “외국 작가의 작품이 선정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공론화의 과정이 빠진 것이 문제”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청계천 복원이 2년 3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처럼, 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 제작 역시 1년 만에 초고속으로 밀실에서 진행되며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슬로우의 녹색 성장을 이야기하면서도 행정은 불도저식으로 하며 엇박자, 파열음을 낸 것이다.
대권 꿈 탓?…생태 화두인데도 속전속결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은 조선시대에는 양반층과 중인층의 거주지를 가르는 분계선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사람이 거주하는 가난한 북촌과 일본 사람이 거주하는 부유한 남촌을 가르는 경계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적과 판자를 지붕삼아 천변에 모여 살았다. 1950년대 들어 그 가난을 콘크리트로 일거에 가리듯 하천은 복개됐다. 1971년에는 그 위로 조국 근대화의 상징, 청계고가도로가 완공됐다.
압축 성장의 무게를 견디는 사이, 고가도로는 노후화됐다. 안전 문제가 제기됐고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은 모든 후보들의 관심사항이었다. 청계천 복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청계천 복원은 ‘성공한 서울 시장’ 이미지를 발판 삼아 대권 가도를 달리고자했던 정치인 이명박의 치적 1호였다. 저서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를 출간할 정도였다. 2007년 대선을 코앞에 앞둔 시점이니 천천히, 제대로 개울을 복원하고 조각물을 세우는 것은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게 뻔했다. ‘빨리빨리!’를 거듭 외쳤을 것이다.
그 결과가 ‘길게 누운 분수대’ ‘거대한 시멘트 어항’ 청계천의 탄생이다. 복원된 청계천은 자연 하천이 아니다. 한강과 지하수를 끌어다 흘려보낸다. 그러니 청계천 초입에 놓인 ‘스프링’(샘)은 허구이자 위장이다.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시민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채 서둘러 공사를 마친 성과 중심 실적주의로 말미암아 청계천이 생태하천이 아니라 인공구조물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역사문화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라고 비판했다. 청계천의 다리 가운데 모전교는 원형이 아닌 ‘가짜 다리’로 복원되고, 일제 때 이전된 수표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등 역사적 유물을 방치, 왜곡, 변형했다는 지적이다.
로비에 신물…“에라이, 외국작가를 쓰자”
다시 스프링 얘기다. 이 조형물이 외국인에게 돌아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다. 명품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 외국 유명 작가 작품이 서울 한복판에 설치됨으로써 명품 가방을 들었을 때 으쓱해지는 것과 비슷한 신분상승감 말이다.
그런데 ‘외국인 어부지리’ 효과도 있었다. 스프링은 통신회사인 KT가 서울시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작가 선정 과정을 지켜본 미술계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청계천 조형물을 KT에서 맡아서 제작한다는 게 소문나니까 행세께나 하는 조각가들이 온갖 백을 동원해 로비를 했어요. 압력이 내려오니 KT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 됐지. 이럴 바엔 잡음 없게 에라이, 외국 작가를 쓰자며 돌아선 거죠.”
그렇게 해서 외국 거장에게 맡겨졌지만 작품성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청계천이라고 해서 다슬기나 소라 모양을 내세우는 것은 해석이 표피적이다”(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 “좁은 청계천 광장에 세운 피뢰침”(최태만 국민대 교수) 등의 혹평이 있다. 반면 홍익대 정현 교수는 “청계천이 좁은 구조라서 치솟는 수직적인 구조가 자연스럽다. 꼬여 올라가는 형태감도 시각적인 변화가 있어 좋다”고 호평했다.
‘스프링’은 설치된 지 14년이 흘렀다. 이제 청계천 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곳 풍경이 됐다. 광화문의 랜드마크가 되어가는 중이다.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공공조각의 상징으로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하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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