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년병이 총을 드는가?"..전세계 90개국, 50만명 강제 동원

2021. 2.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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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소년병 반대의 날'
소년병 90개국 50만명 동원
IS, 어린이 납치해 테러 세뇌

한국에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설 연휴를 부모·형제들과 즐겁게 지내지만, 그렇지 않은 최악의 형편에 놓인 곳도 있다. 지금도 지구엔 어린이들이 무장단체에 강제로 이끌려 손에 총을 쥐고 전투를 벌이는 곳이 적지 않다.

소년병 징집에 반대한다는 표시로 붉은 색을 칠한 손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사진 국제인권감시기구]


유엔(UN)은 한창 자라고 교육을 받아야 할 어린이가 전쟁에 동원되지 않도록 2월 12일을 ‘소년병 반대의 날(Red Hand Day or International Day against the Use of Child Soldiers)’로 정했다.

소년병(少年兵)은 만 18세 미만인 미성년의 군인 또는 그들로 이루어진 군대다. 유엔이 2002년 비준 발효한 ‘아동의 무력 충돌 참여에 관한 아동 권리 협약 선택의정서’는 징병 및 참전을 위한 최소 연령을 18세로 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무력 분쟁에 가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16세 미만의 소년은 자원병으로 모집할 수 없고, 전쟁에 참여시키는 행위는 전쟁범죄에 포함하고 있다. 다만 직접적인 적대행위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만 16세 이상 18세 미만의 자원병 모집은 가능하다.

아프리카에서 어린이가 엎드린 채 소총을 겨누고 있다. [사진 DPA]


소년병 출신으로 악명 높은 전범자에 대한 유명한 재판 사례가 있다. 2016년 국제 형사재판소(ICC)에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우간다 무장단체 ‘신의 저항군(LRA)’ 지도자 도미니크 옹그웬에 대한 재판이다. LRA는 우간다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남자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여자아이들은 군 지휘부의 성 노예로 끌고 가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LRA의 소년병에서 최고위 사령관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우간다와 주변국에서 민간인 10만 명을 학살하고 6만 명의 어린이들을 납치한 반인도적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살인과 강간, 고문 등 70개의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도미니크 옹그웬(가운데). 소년병 출신인 옹그웬은 우간다 무장단체 '신의 저항군(LRA)' 지도자로 민간인 10만을 살해하고 6만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소년병으로 만들었다. 지난 4일 ICC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 [사진 연합뉴스]


그런데 재판에서는 LRA의 잔인한 범죄 행각 못지않게 옹그웬의 ‘기구한’ 사연도 쟁점이 됐다. 옹그웬은 자신도 어린 시절 반군에 납치돼 소년병으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재판에서 전쟁범죄의 가해자가 아니고, 오히려 자신도 결국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옹그웬 9살 때 납치돼 고문을 당했고,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전투에 투입된 소년병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그를 동정하는 시각과 10만 명 이상을 살해한 전쟁범죄자라는 시각이 양분됐다.


총으로 사람을 겨누는 법을 배우는 소년 병사들

2019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분쟁연구소는 세계 90여 개 국가에서 무려 30만∼50만 명의 아동이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은 소녀라는 보고서를 냈다. 인터넷으로 세상의 온갖 정보가 실시간에 유통되는 문명시대인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공부 대신 총으로 사람을 겨누는 법을 배우는 18세 미만의 어린 소년 병사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납치하기가 쉽고, 어리지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있다는 점에서 전쟁범죄의 표적이 된다. 더구나 어른보다 식량도 적게 들고, 심리적으로도 순진해 쉽게 전쟁의 희생양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들 중 70%는 폭력이나 고문을 목격하거나 직접 당하고, 60%는 죽음에 내몰렸다. 그리고 77%는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52%는 대량학살의 충격에 노출된다. 더구나 소녀들 경우는 45%가 성적 폭력을 당하고 전쟁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27%에 달한다는 게 보고서 통계다.


어린이를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

2차 세계대전인 1940년 프랑스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을 그린 영화 ‘됭케르크(Dunkirk)’의 한 장면이다. 해안에 투하한 폭탄의 흩날리는 잔해들과 널브러진 시신들 사이에서 모래를 뒤집어쓴 소년병들의 절박한 얼굴이 나온다. 실제 전쟁의 질곡에서 소년병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UN이 검증한 수치를 보면, 분쟁지역에서 소년병으로 징집된 소년·소녀는 2005년 4000여 명에서 2017년엔 7734명으로 늘었다.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에서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최소 135명의 어린이를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봉쇄 지역 어린이들을 인간방패로 몰아넣는 바람에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소말리아에서도 2018년 10월까지 어린이 1740여 명이 무장단체 등에 의해 소년병으로 징집됐다.

무장테러단체 보코하람이 2015년 2월 22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상업중심지 포티스쿰의 시장에서 7세 여자 어린이를 이용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이 테러로 5명이 숨지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AFP=연합]


더구나 IS 등 국제 테러집단은 어린이를 자살폭탄 테러에도 동원하고 있다. 실제 2016년 IS는 심각한 영상을 공개했다. 극단주의 이념을 주입받은 10∼13세 연령대의 어린 학생들이 작은 권총을 건네받아 쿠르드족 포로들을 처형하는 영상이다.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를 상대로 세뇌 교육을 하고, 강력한 지하디스트 전사로 길러낸다는 목표 아래 군사훈련까지 시키고 있다.

전쟁에 참여한 많은 소년병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심리적으로도 몹시 잔혹해진다. 소년병들은 총이 발휘하는 파괴력에 환호해서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덜 성숙한 정신연령에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활동을 한 소년들은 비록 강제로 전쟁에 투입됐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가기가 힘들다. 점차 끔찍한 어린 괴물이 된다.


UN, 소년병 징집 반대 의미 담은 ‘붉은 손의 날(Red Hand Day)’ 캠페인 전개

UN은 매년 2월 12일을 ‘소년병 반대의 날’로 정했다. 어떤 아이도 어른들에 의해 전쟁터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일명 ‘붉은 손의 날(Red Hand Day)’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붉은 손’은 소년병 징집을 중단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의 상징이다.

그들은 종이와 현수막에 붉은 손의 그림을 프린트하고, 그 위에 소년병 징집 중단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넣는다. 또한 '총을 버리고 펜을 잡자(#Drop the Gun Pick Up the Pen)'라는 해시태그를 게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한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에 소년병으로 내몰리고 있다.

2019년 뉴욕에서 열린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파툰 아단이 소말리아의 소년병 문제를 발표하고 있다. 그는 소년병에게 ″총을 버리고 펜을 집어라(Drop the Gun Pick up the Pen)″고 외쳤다.


한국전쟁, 소년병 2만 명 참전

현재 우리 병역법에서는 입대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벌어진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엔 16세 이하의 아직 앳된 소년 병사들이 대거 전장에 투입됐다. 그때 국군이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까지 후퇴한 다급한 상황이어서였다. 적어도 2만 9000여 명의 소년이 학도병으로 참전해 2464명이 전사했다. ‘6ㆍ25 참전 소년병 전우회’ 기록이다.

민족의 비극 속에서 정권이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한 어린 소년들이 희생과 헌신으로 전쟁에 나서야 했다. 북한군 역시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점령지역에서 14~17세의 어린 병사들을 강제로 징집해 부족한 병력을 메웠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이 땅에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과연 전쟁 아닌 평화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전쟁과 평화의 역사는 인류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잔인한 흔적을 남긴다. 이제 다음 시대를 살아갈 아동들에게 앞세대가 겪었던 아픔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 최선이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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