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까지?..월가에 불어닥친 스팩 열풍

윤상언 2021. 2. 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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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수합병을 목적으로하는 페이퍼컴퍼니 스팩(SPAC)이 인기를 끌면서 대형 헤지펀드부터 정치인과 전직 운동선수까지 스팩 설립에 뛰어들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미국 금융계의 시선이 쏠리는 곳이 있다. 오로지 기업의 인수합병(M&A)만을 위해 만들어진 ‘스팩(SPAC)’이다. 사무실이나 직원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명목 회사(페이퍼컴퍼니)에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90조원 이상의 투자금이 몰려들었다.

스팩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대형 헤지펀드부터 정치인과 스포츠계 인사들까지 스팩 설립에 뛰어들고 있다. 폴 라이언 전 미국 하원의장과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인 빌리 빈도 스팩 설립에 나섰다고 한다. 가장 최근 화제가 된 이들은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다.

지난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엘리엇은 스팩 설립 자금인 10억 달러(약 1조1235억원)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들과 접촉하고 있다. 엘리엇은 과거 한국에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문제 삼으면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기업 인수 목적의 '페이퍼컴퍼니'…우회상장의 통로

스팩(SPAC) 상장 구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팩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약자다. 공모를 거쳐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그 자금으로 비상장사를 M&A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페이퍼컴퍼니다. M&A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그 이득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일종의 ‘특수목적회사(SPC)’로 분류된다.

기업에 스팩이 매력적인 이유는 상장의 지름길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통상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려면 ‘기업공개(IPO)’를 거쳐 투자자를 공모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만큼 상장까지 2~3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반면 스팩과 M&A하면 시간과 절차를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스팩의 작동방식은 일반 기업의 IPO와는 반대다. 상장차익을 노리는 기업(스폰서)이 ‘빈 껍데기’ 역할을 하는 서류상 회사인 스팩을 설립하고 투자자와 자금을 먼저 모은다. 이를 바탕으로 스팩을 증시에 상장한 뒤에 M&A할 기업을 물색한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아닌 스팩의 M&A에 투자하는 셈이다. 자금을 먼저 조달한 뒤 인수합병 기업을 물색하기 때문에 ‘백지수표 회사’로도 불린다.


'사기극 논란' 니콜라도 스팩 합병

지난해 ‘사기극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국의 수소자동차 제조업체 니콜라도 스팩(SPAC)과의 합병을 통해 나스닥에 입성했다. 사진은 니콜라가 세 번째로 선보인 수소전기트럭 콘셉트카 트레(Tre). 사진 니콜라

스팩을 통하면 합병하는 기업은 일반적인 IPO를 거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주식시장에 입성할 수 있다. 상장차익을 노리는 투자자에 매력적이다. 조달금액도 스팩 공모를 통해 이미 결정됐기 때문에 기업의 가치평가 면에서도 유리하다. 만약 미국 증시에서 스팩 상장 후 2년(한국은 3년) 내에 M&A 기업을 찾지 못하면 투자자는 원금과 예금 수준의 이자를 함께 돌려받을 수 있다. 안정성도 확보되는 셈이다.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의 대표 사례가 지난해 ‘사기극 논란’의 중심에 섰던 수소자동차 제조업체 니콜라다. 니콜라는 2014년 설립 이후 단 한 대의 차를 팔지도 않았지만 수소차에 대한 전망과 비전 등에 힘입어 지난해 나스닥에 입성했다. 지난해 6월 스팩인 ‘백토(Vecto) IQ’와 합병으로 우회상장한 덕이다. 스팩 주식공모를 통해 니콜라에게 조달된 금액만 총 7억달러(약 7800억원) 규모다. 서학개미가 많이 산 종목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스팩 자금조달 '사상 최대'…"검증 부족" 우려도

미국 거래소 상장 스팩(SPAC)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장 규모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거래소에 상장된 스팩의 자금조달 규모는 832억 달러(약 92조9344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8년 107억 달러(약 11조 9519억원)에서 677%가 늘어났다. 올해도 연초인 지난달 17일 기준 약 157억 달러(약 17조 5290억원) 규모의 상장이 이뤄지면서 스팩 시장의 성장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스팩 광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으로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을 걸러내지 못하고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되는 등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팩이 대중에게 공개될 경우 빈껍데기 회사만 검증하게 되고, 스팩을 인수합병을 통한 상장은 각종 검증을 거쳐야 하는 IPO와는 다르다”며 “(기업의 가치가 부풀려져서) 투자자가 돈을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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